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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과 Remembrance Day _ 기자수첩
 


1차대전은 1914년 시작되어 1918년11월11일 끝난 전쟁이다. 1차대전 발발일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계승자 프란트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 된 1914년 6월28일을 대전 발발일로 보는 견해와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한 7월28일을 대전 발발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날은 1918년 11월11일로서 캐나다를 비롯한 영연방이나 유럽 연합국에서는 11월11일을 종전 기념일로 기념한다. 캐나다는 1930년까지 11월11일에 가장 가까운 월요일을 'Armistice Day'로 지키다 1931년부터 11월11일을 Remembrance Day지키고 있다. 11월11일 11시에는 1차대전 희생자뿐 아니라 모든 전장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위해 2분간 묵념을 드리고 있다.
폴 바우어는 참호 속에서 10월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눈이 시리로록 푸르렀다. 야생화 한 송이가 미풍에 살랑거렸다. 포연 속에서 피어난 야생화, 폴은 몸을 일으켰다. 전선은 조용했다. 폴이 손을 뻗었으나 야생화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참호 밖으로 철모를 쓴 폴 바우어의 머리가 나왔다. 야생화를 바라보던 폴이 손을 뻗었다. 폴의 손이 야생화에 닿으려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폴의 몸이 참호 안으로 주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그날 전선사령부 상황보고서 “서부전선 이상 없음”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전쟁-
1차대전이나 프랑스 대혁명 같은 커다란 사건은 한 두가지 이유로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원인과 우연과 변수가 얽히고 겹쳐 일어난다. 원인이 어디 있던 간에 전쟁이 갖고 있는 야만성 폭력성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도로, 교량, 건물 등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무수한 생명이 죽었고 인간의 존엄성마져 파괴 되었다. 그러나 파괴된 폐허 속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가치가 꿈틀거리며 생겨났다.
1차대전을 계기로 인류가 바뀐 것을 생각나는대로 쓴다면 여성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것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 되었다. 지금은 남녀가 사회 모든 방면에서 거의 동등하게 취급 받는다. 그러나 20세기 초기만 해도 여자들의 역할을 제한되어 있었다.
고전 중에서도 고전이 된 영화 자이언트(Giant)에 나오는 장면인데 남자들이 모여 정치 이야기 하는 동안 여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조신하게 앉아 뜨게질을 하고 있다. 여자들이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치 이야기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1차대전은 여성의 지위를 단숨에 바꿔 놓았다.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이 1차대전 직후에 일이다.
민주주의, 평등, 인권의 개념이 보편적 가치가 된 것도 1차대전 이후의 일로 세계가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프란츠 대공 부부에게 총알을 날린 세르비아 열혈 민족주의자 프린치프는 자신의 행동이 인류역사에 커다란 변환점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제국주의 해체-
제국주의는 1차대전의 원인 중에 하나로 꼽히지만 전쟁의 결과 제국주의가 해체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는 때로 누구도 예측 못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이. 전쟁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터기 제국, 독일제국, 러시아 제국이 해체되었다.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고 보불 전쟁 때 프랑스에서 할양 받은 알사스 로렌 지방을 다시 프랑스로 돌려 주었다. 영토의 일부를 폴란드에 할양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전쟁 배상금은 2차대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인생유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복잡한 역사를 지닌 다민족 제국이었다. 1차대전 때 징병 공고를 15개 국어로 발표해야 할 만큼 인적 구성 영토구성이 복잡한 제국이나 합스부르크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지낸 뼈대 있는 가문으로 프랑스 왕가를 제외하고 전 유럽 왕실과 혈연으로 연결되는 왕가다.
1차대전 패전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며 수 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생겼다. 헝가리, 체코, 서부 우크라이나, 폴란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이탈리아에 땅을 모두 떼어주어 독립했다. 그러나 신생국의 탄생, 독립은 민족자결주의 보다 1차대전 패전이 제국해체의 근본 원인이다.
유럽 중남부의 광활한 영토를 빼앗긴 오스트리아는 독일 옆에 맹장처럼 붙어 있는 약소국으로 전락했고 마지막 황제 카알1세가 퇴위하고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39년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냉큼 점령해 나치 치아에서 신음을 해야 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이 통일할 때 프러시아를 이류국가 취급해 말도 못 붙이게 했는데 역전 된 것이다. 나치 점령하에 오스트리아가 신음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 유명한 “Sound of music”이다.
2차대전 후 연합국은 약소국 오스트리아를 동서로 분단했다. 마치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 하듯이. 더 비극은 수도 비엔나조차 4개로 분할해 연합국이 공통 관리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외세에 의한 분단을 민족의 지혜로 극복하고 1955년 통일을 이뤘다. 이승만처럼 외세를 등에 업고 단독정부 고집하며 민족 분단을 고착화 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1차대전과 캐나다-
1차대전이 동북아 나라들, 특히 한국과 직접 관련이 없어 관심이 덜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중요한 역사의 부분으로 에드몬톤 일간지 ‘Edmonton Journal’에서는 6월28일부터 1차대전에 관한 특집을 싣고 있다.
1차대전이 캐나다에 끼친 영향이라면 우선 ‘하나의 캐나다’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주마다 연방에 가입한 역사와 배경이 다르고 지방 분권적 요소가 강했던 캐나다는 1차대전에 캐나다 군이라는 기치 아래 참전해 일체감 조성에 이바지 했다
영국군 일원으로 참전한 캐나다군은 ‘온타리오 파병군’ ‘매니토바 파병군’ 등 주 별로 구별 되었는데 비미 릿지(Vimy Ridge)전투에서 ‘캐나다군’이라는 일체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비미 릿지 전투는 캐나다군의 능력으로 승리를 거둔 전투로 캐나다 역사상 길이 남을 전과다. ‘캐나다인’이라는 일체감은 캐나다가 영국의 그늘을 벗어나 독립을 하는데 밑바탕이 되었다.
1차대전 연합국 승리에 헌신과 희생으로 캐나다는 종전 회담인 파리강화회담에 영국 식민지가 아닌 당당한 전승국 일원으로 참가해 위상을 높였다. 파리강화회담 참가로 캐나다는 독립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1차대전의 징병제 실시는 퀘벡의 반대를 가져왔다. 영국 식민지로서 영국계 이민자는 영국군 기치아래 참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프랑스계 이민자들이 영국군 이름으로 참전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국계와 프랑스계가 반목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 프랑스어를 공용어를 채택한 것은 피에르 트뤼도 총리의 결단이었다.
-1차대전이 주는 교훈-
1차대전이 일어날 무렵 세계는 민족주의 광풍이 일었다. 민족주의 광풍은 제국주의, 군국주의와 함께 토네이도처럼 세계를 휩쓸었다. 민족주의를 영어로 Nationalism이라고 하는데 우리말의 민족과는 다른 개념이다. 우리말의 민족주의는 ethnic group이나 ethnic nationalism이 적합 할 것이다.
국민국가 개념의 민족주의는 국민이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구성하여 타자와 구분되는 정체성을 국민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이익이 최우선이고 내 공동체가 지고 지선이라는 그릇된 민족주의는 황제, 총리 등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똑 같아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을 심어줘 전쟁을 반대하면 반역자 겁쟁이 취급을 받고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마치 남한 사회에서 평화통일 이야기하면 ‘종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반드시 이긴다는 필승의 신념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모든 이들의 판단을 뒤엎고 전쟁은 4년을 끌며 인류에 엄청난 재앙을 안겼다. 민족주의 광풍은 국제적 연대와 단합을 다짐했던 노동자들에게도 예외가 없어 지배자와 자본계급이 시작하는 전쟁에 휘말리지 말자던 다짐을 잊고 전쟁이 시작되자 지배자,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동지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비극이 일어났다.
100년 전처럼 민족주의 광풍이 다시 불고 있다. 일본과 차이나 우크라이나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하며 과거 민족주의의 잘못을 되풀이 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2차대전 패전국으로 책임이 있는 나라로 과거의 잘못을 잊고 재무장하여 군군주의화 하려고 하고 있다. 인류는 과연 100년 전에 일어난 전쟁에서 교훈을 찾을 것인지.

기사 등록일: 20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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