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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상잔의 비극 65년 되다 _ 기자수첩
 

나이가 들은 분들은 6.25동란, 6.25사변이라고 부르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올해가 65주년 되는 해다. 그 때 부모 등에 업혀 피난 갔던 핏덩이들이 올해부터 노년연금을 받으니 정말 세월은 화살처럼 빨리 흐른다는 게 실감 난다.
북한이 6월25일 새벽 38도선을 넘어 전면침공 했을 때 3년씩이나 끌 줄 알았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을 시작한 김일성도 3년 걸릴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말 대신 사변, 동란이라고 말한다. 북괴라는 불법 단체가 일으킨 난동을 무력을 사용해서 막아야 할 난리이지 국가와 국가간에 전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유행인데 이것은 외국에서 Korea war라고 부르는 것을 직역한 것이다. 다양한 용어만큼 이 동족상잔의 비극은 성격도 다양하다. 국지전이면서도 16개국이 참전한 국제전이고 동, 서 냉전의 성격을 띤 실전이자 미, 소의 대리전쟁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해방공간을 비집고 들어 온 외세
해방이 되자 38선을 경계로 소련군과 미군이 진주한 것은 3살짜리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다. 이들의 본질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고 외세에 의한 분단의 해답을 타력에 의한 해방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타력에 의한 해방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국권을 강탈 당한 후 일어났던 각종 의병활동, 무저항 반식민투쟁인 3.1운동,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 중국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일어난 무장투쟁, 하와이를 중심으로 일어난 외교적 노력, 6.10 만세, 광주학생 의거 등등의 자주적 독립투쟁이 과소평가 되는 것은 사대주의 발상이자 결과지상주의 산물이다.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가들 중에 자력으로 독립한 나라들이 있는가? 신생국가는 아니지만 프랑스 같은 강국도 타력으로 해방을 얻었지 자력으로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다. 드골이 이끄는 망명정부 ‘자유 프랑스’는 연합국의 인정을 못 받는 상해임시정부 못지 않게 국제적 ‘찬밥’ 신세로 나치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부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해방이 되자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 독립국가를 세웠다. 물론 프랑스와 한국은 환경과 조건이 다르긴 했지만 프랑스 정치세력들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조국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할 의사도 능력도 없이 외세를 이용해 권력을 잡을 궁리를 했다.
이승만이야 원래 기회주의자이고 독립운동한다면서도 잿밥에만 마음이 있어 온갖 말썽을 부린 사람이니 그런 사람이라고 쳐도 명색이 항일무장독립운동 했다는 김일성마져 반쪽 권력이라도 유지하려고 소련이라는 외세를 이용했고 ‘조국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무력분쟁을 일으켜 남 북한 군인 민간인 사망자만 120만명이 넘는 막대한 피해를 주었고 양쪽의 갈등과 불신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마약
원래 초대정부는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 물망에 오른 이승만은 내각 책임제 대통령보다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이 하고 싶어 고집을 부렸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고 이승만의 억지가 통해 그는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승만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6.25가 일어나기 약 한달 전 5월30일에 실시된 2대 총선 결과가 이승만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주고 있다. 2년전 실시된 제헌국회와 달리 2대 총선에서는 친일부역자에게도 갱생의 기회를 주어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이승만은 선거를 12월로 연기하려 했으나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경제, 군사 원조의 목적은 한국내에 민주주의 수립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서 “선거를 예정대로 치르지 않으면 원조 계획을 재고 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강권에 못 이겨 울며 겨자먹기로 선거를 실시한 이승만은 반대파의 당선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단발마적인 발악을 했다.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고 선거를 코 앞에 둔 5월22일 성시백 간첩 사건을 발표하며 중도파 인물들이 포섭 대상이었다고 발표했다. 지금도 전가의 보도처럼 써 먹는 색갈론, 종북, 선거를 앞두고 간첩단 일망타진이 그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발버둥에도 독립운동 경험이 있는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210석 중 이승만 지지 세력은 아무리 많게 잡아도 70명을 밑돌았고 무소속 중도파가 126명이 당선되었다. 이승만의 발악에도 유권자들은 민족주의자에게 표를 주고 친일파를 비호하는 당에는 표를 주지 않았으니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당시의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이 지금 유권자들보다 훨씬 높고 현명했다.
이승만을 도와준 김일성
이대로 간다면 2년 후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낙선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6.25는 모든 것을 뒤집었다. 이승만이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거짓말 하고 대전으로 도망가며 한강 다리를 파괴해 피난을 못 간 정치인들이 대거 북한으로 끌려갔다. 일명 ‘모시기 작전’으로 조소앙, 김규식, 안재홍, 윤기섭, 원세훈, 오하영등 민족주의자들이 북한으로 모셔졌다.
북한으로서도 계획이 있고 생각이 있어 모셔갔겠지만 ‘모시기 작전’으로 남한 정국은 극우반공세력들이 창궐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일성은 조국을 해방 시키겠다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조국을 해방 시키기는커녕 무너져 가는 이승만 독재권력 구축을 도와주는 결과가 되었다. 6.25가 없었으면 2/3가 이승만 반대파인 국회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전무했으니 결과적으로 김일성은 본의 아니게 이승만 독재정권 수립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후에도 남 북의 독재정권은 민심이반으로 기반이 흔들릴 때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용해 지지기반 결속에 이용하고 있다.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에 적을 만들라”는 오기의 병법을 따르는 것이다.
미수에 그친 이승만 제거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이승만과 집권층은 여차하면 일본으로 망명할 계획을 세우면서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했다.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로는 당선될 가능성이 없자 직선제 개헌을 시도했다. 이승만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의원을 집단으로 납치 감금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부 의원들을 국제공산당으로 몰아 구속했다.
그런 와중에 이승만 암살이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52년 6월25일 멸공통일의 날 기념시장에서 이승만이 훈시를 하는데 뒷자리 귀빈석에 앉아있던 사람이 튀어나와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탕” 소리 대신 “철컥” 소리가 났다.
국부는 그렇게 해서 살아났고 암살 미수사건을 계기로 국부를 지지하는 관제데모는 절정에 달했다. 의열단 출신 독립투사 유시태가 제헌국회의원이자 같은 의열단 출신인 김시현과 같이 일을 꾸민 이승만 암살 사건은 미수에 그쳤다. 두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로 감형되어 수형 생활을 하다 4.19 나던 해 석방 되었다.
유시태는 석방 당시 “그 때 총알이 발사 되었으면 수많은 학생들이 죽지 않았어도 될 텐데 그게 한이라면 한이다”라고 말했으나 그 때 총알이 발사 되지 않은 것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불의를 보면 권총부터 찾는 열혈 의열단원들의 순수한 우국충정이 실패로 돌아 갔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뒤에 음모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란 인간의 삶을 모두 합해 놓은 것이지만 역사는 인간의 의도대로 흐르지 않고 계산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로 위안 받아야 할까?
나라를 망친 뻥쟁이들
남북이 서로 ‘북한 괴뢰’ ‘남조선 괴뢰’라고 비방할 때, 지금도 비방은 그치지 않고 있지만, 신성모 채병덕은 걸핏하면 북진통일을 읊어댔다.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이 창자가 맞닿아 읊어대는 북진통일을 이승만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그 때 남한은 북진 통일할 무기도 병력도 없었는데 작대기 들고 북진통일 한다 말인가? 이들은 북진 통일할 능력도 의사도 없으면서 뻥만 치며 사회불안을 야기해 이승만 체제를 공고히 했다. 그러니 미국에 입장에서는 남한을 무장 시켜 공산당 침입을 막아야 하는데 “저 친구들 손에 무기 쥐어 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무기를 줄 수 없었다.
막으라고 무기 주니 그걸 들고 북진통일한다고 불장난이라도 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말 그대로 산통 깨지는 것이니 어린아이 손에 칼을 들려줄망정 남한에 무기를 줄 수는 없었다. 6.25 비화를 읽다 의문이 생겼다. 채병덕이 병과가 뭐길래 입만 열면 허풍과 뻥을 칠까, 혹시 포병 출신인가? 그러나 채병덕은 공병출신이었다.
신성모 채병덕 등이 이승만의 의중을 읽고 북진통일 한다고 허풍과 뻥을 쳤겠지만 그 허풍 때문에 무장할 걸 못하고 준비를 철저히 한 김일성에게 선제공격을 당한 것인데 국가의 장래보다 권력자 눈에 잘 보이려는 신성모 채병덕 같은 간신배들이 지금도 권력에 빌붙어 있다.
올해가 해방 70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동족상잔이 일어난 지 65년 되는 해인데 이제라도 남 북한에 양심적이고 민족을 우선 생각하는 정부가 들어서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뤄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사 등록일: 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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