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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천도(天道)의 움직임에는 어김이 없다
75년 8월 장준하 선생이 포천 약사봉 등산길에 실족해 사망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을 장준하 선생 죽음에 의혹을 나타냈다. 사람들은 저녁에 마당에 멍석 펴고 모깃불 들쑤시며, 소주집에서친구들과 한잔 걸치며, 다방에서 레지 옆자리에 앉혀놓고 커피잔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박정희가 죽였다’고 수군거렸으나 벽에도 귀가 있던 무서웠던 시절이라 모두들 쉬쉬했을 다름이다.
언론에서는 ‘실족사’로 낙착되었다.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들은 조용히 ‘철창’으로 모셨다. 데모하는 대학생들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던 시절에 의혹제기는 화약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라 몸 보신 차원에서 입 다물고 있었으나 어둠이 진실을 덮을 수는 있으나 진실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박정희를 장준하 살해의 사주나 배후로 보는 민중들은 장준하가 반 박정희에 선두주자가 된 것을 이유로 들었다. 장준하는“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으나 박정희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사람이다.
5.16 초기에 잠시 쿠데타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던 장준하가 노골적인 박정희 반대파가 된 것은 군사정권의 부정부패, 민정이양 약속위반, 3선개헌, 유신으로 이어지는 박정희의 부패, 반민주적 독재성 때문이었다. 사상계 발행인으로 유명한 장준하는 쿠데타가 본색을 드러내자 쿠데타 정권을 비판하고 유신철폐와 민주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박정희 정권과 싸웠다.
장준하와 박정희는 일제시대 청년기를 살아온 사람이다. 나이는 장준하가 한살 아래로 두 사람은 모두 일본군 출신이나 그 후의 삶의 궤적은 크게 달라 빛과 어둠만큼이나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장준하는 지원해서 학병에 나갔고 박정희는 잘 알려진 대로 혈서 쓰고 군관학교 입학해 장교가 되었다.
장준하 선생뿐 아니라 우리 아버지 세대는 대부분 자원해서 학병에 나갔다. 그것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넘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제가 자원을 가장한 강제징집을 했기 때문이다.
자원을 안 하면 우선 학교에서 잘린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불이익이 돌아온다. 우리 집안 어른 한 분은 여동생을 정신대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학병에 지원했다. 그 어른은 여동생을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자신이 남양군도에 총알받이를 자원한 것이다. 다행히 살아서 돌아오셨지만.
전 고대총장 김준엽 선생은 학병에 지원한 이유가 탈영해서 독립군에 합류하기 위해서였으니 그분은 독립군이 되기 위해 학병에 자원한 것이다. 친일파를 분류하는 데는 당시 여러 가지 현실을 복합적으로 판단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지 처삼촌 묘 벌초하듯 대충대충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지 전시 탈영은 총살이다. 그러나 김준엽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은 총살 당할 각오하고 탈영해 6,000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중경을 찾아가 독립군이 되었다. 이분들이 독립군으로 활동한 기간이 짧고 독립군으로서 눈에 띄는 공을 세운 것은 없지만 독립에 몸을 바치겠다고 일본군을 탈영해 임시정부를 찾아간 열성 하나만으로도 만인의 귀감이 되는 것이다.
박정희는 관동군 장교로 팔로군과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연합국이 일본을 적국으로 선포했고 임시정부도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으므로 박정희는 엄연히 적국의 장교다. 더구나 조선의 많은 청년들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팔로군에서 활동했으므로 박정희는 간접적으로나마 독립운동을 박해한 적국의 장교다.
일제가 항복해 부대가 없어지자 박정희는 동료들과 북경 쪽으로 가 독립군에 편입된다. 그는 별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시류에 따라 행동해 어제는 일본군 오늘은 독립군이 된 것이다. 당시 독립군 3지대장 김학규는 우선 독립군을 인솔해 귀국할 장교가 부족하니 박정희를 독립군에 편입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박정희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한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추대(?)될 즈음에 장준하 선생 의문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묘지를 이장 중에 둔기로 맞아 함몰된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이 발견된 것이다. 유족들은 재조사 해서 진상규명 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선생 유족들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내는 셋방살이 하며 선생이 독립유공자이기에 나오는 연금 60만원에 의지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반대자들에게 연좌제를 철저히 적용해 장준하 가족들 사업도 취직도 못하게 막았다. 장준하 장남 장호권씨는 “삼족을 멸하지는 않았지만 온 가족을 거지 아닌 거지로 만들었다”고 혹독했던 시절을 말했다.
그러나 박정희 후손들은 정수장학회, 영남학원, 육영재단의 실지 소유주이다. 시가로 따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바지사장 내세우고 “우리하고는 상관없다”고 시치미 때는 이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일까?
일부에서는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재조사에 대해 “하필 이때” 불거져 나오냐고 반문하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정치적 의도가 있어 인위적으로 장준하 선생 의문사 재조사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치적 의도가 있어 시키는 것이다.
천도의 운행에는 어김이 없어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영원히 감추어져 있을 것 같아도 때가 되면 비밀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신은 말이 없다. 더구나 죽은 지 37년이 지나 백골만 남은 시신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백골은 많은 말을 한다.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할 것이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속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리라” (창세기 4장 10절)

기사 등록일: 201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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