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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군 한국전 참전 역사
본 내용은 CN드림 16호 (4/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기고 : Young (캘거리 교민)
캐나다군 한국전 참전 역사
1. 개요
올해는 한국과 캐나다간 수교 40주년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캐나다군의 한국전 참전 역사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역사적으로 캐나다사람들이 한국에 가장 많이 갔던것은 한국전쟁당시이다.
6.25동란 기간중 50년 7/30일 해군 참전을 시작으로 53년 휴전시까지 총 26,791명을 파병하여 UN 깃발아래 참전한 16개국중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대를 파병한 나라가 되었고 휴전후 55년까지는 약 7000명이 추가 파병되었다.
2. 전사자 516명
캐나다는 한국전에서 516명의 희생자를 냈다. 전사자 중 378명은 부산의 UN묘지, 16명은 U.N묘지내 무명용사묘역 그리고 24명은 일본 오끼나와의 영연방 전쟁묘지에, 93명은 캐나다 전역에 묻혀있으며 나머지 5명은 해상에서 실종된것으로 종결되었다. 캐나다군은 해군. 공군. 육군순으로 파병됐다.
해군은 7/4일 유럽순방을 준비중인 함대에서 구축함 3척을 선발, 극동으로 출동시켰다. 이플함정은 긴 항해끝에 진주만을 경유해 7월 30일 한국해역으로 진입. 미 극동해군에 배속되었다.
캐나다 구축함이 한국으로 항해하고 있을 무렵인 7월 중순경 캐나다정부는 UN사무총장의 추가파병 요청을 수락했다.
이에 따라 공군은 7/21일 제 426항공 수송대를 파병. 미국과 일본사이를 왕래하면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도록 했으며, 공중전 경험이 있는 조종사 22명을 선발해 미공군에 파견했다.
그러나 캐나다는 7/20일 미국으로 부터 1개여단 규모의 지상군 파병요청을 받고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캐나다는 3개보병 연대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실제 각연대의 병력은 1개대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는 8/7일 지상군 파병을 결정하고 다음날부터 지원자를 모병한 결과, 11월 초순 3개연대에서 각각 1개대대를 차출하여 11월21일 25여단이 창설됐다. 제25여단이 출동준비에 바쁠무렵, 북진중인 유엔군이 한.중 국경선 부근까지 진격하자 종전을 예상하고 참전을 보류했다.
그러나 이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어 11/25일 PPCLI (Princess Patricia Canadian Light Unfantry) 제 2대대의 참전을 결정했다. PPCLI 제2대대는 파병결정과 동시 씨애틀항을 출발, 23일간의 긴 항해끝에 12/18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캐나다는 비록 소규모이지만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세번째로 육해공 삼군을 한국전쟁에 파견한 나라가 됐다. 사실 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미국과 UN이 북한의 남침을 막기위한 조치를 강구하자 UN회원국중 가장 먼저 이를 적극지지하고 나선 나라가 캐나다였다.
3. 캐나다군 전투상황
1951년 4월 하순 서울을 향해 진격하던 중공군은 가평강 양쪽 가파른 고지를 방어하던 캐나다군과 호주군을 공격했다. 미군탱크와 뉴질랜드 포대의 지원을 받은 호주군은 용감히 싸웠으나 워낙수적으로 열세, 4/24일 저녁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자 중공군은 캐나다 PPCLI 제2대대를 공격목표로 삼았다. 24,25일 저녁 중공군 약 6천명이 캐나다군을 공격해왔다. 캐나다군은 박격포와 포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진지를 사수했으나 10명의 전사자와 23명의 부상자를 냈다.
캐나다군은 한때 적군에 완전히 포위당해 비행기가 낙하산으로 떨어뜨린 식양과 탄약으로 버티며 싸움을 계속했다. 26일 미군이 위기직전의 캐나다군을 구했다. 캐나다군은 중공군의 주요공세(춘계대공세)를 막는데 기여했다.
오타와의 전쟁박물관(Canadian War Museum)내 한국관(Korea Gallery)과 한국용산 전 육군본부 부지에 소재한 전쟁박물관의 가평전투 설명에 의하면 가평은 캐나다 육군이 밀려오는 중공군과의 격전을 벌인 여러 중서부 지역중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군전사와 UN군전사에 의하면 캐나다군은 이 전투로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를 저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이 공로로 부대표창을 받았고 가평에 세워진 참전비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박정희 전대통령 집권당시 6.25동란기념 16개국 참전기념 유적비 건립사업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오타와에 소재한 전쟁박물관 3층에 설치된 한국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가평 전투부스(booth)다. 이곳에는 당시 소총이 진열되어 있고 벽에는 위생병이 부상병을 치료하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다.
한국관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전시물 중 하나는 중공군이 사용하던 소련제 OSHK 중기관총 (heavy machine gun) 이다. 50년 11월 노획된 이 기관총을 솜누비옷 군복을 입은 중공군이 손질하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4. 잊혀진 전쟁을 기념 캐나다에서 흔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으로 표현되는 한국전과 캐나다군의 활약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연방정부는 근년 들어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박물관의 한국전시관을 확장한 것이다.
박물관측은 확장공사 준공기념식을 한국전 발발 50주년을 맞아 2000년 6/24일 가졌다. 기념식에는 오타와 한국대사와 무관, 전국에서 온 한국전 참전용사회(KVA) 회원등이 참석했다. 참전용사들은 전국대회와 6.25추모행사 참석차 오타와에 모였었다.
캐나다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모임인 는 전캐나다 전 군소도시에 소재한 The Royal Canadian Legion 에 회원들이 소속되어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Remembrance Day (11/11일)에 6.25참전 동란당시 가평전투를 기리기위 해 Kap'yong 이라는 마크를 어깨(부대마크 옆)에 달고 매년 퍼레이드를 벌리고 있는 것을 Remembrance Day TV를 통해 볼 수있다.
캐나다에 퍼져있는 The Royal Canadian Legion에는 캐나다군 전쟁참전기록을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으로 크게 분류하여 기념비를 세워둔곳이 많이있다.
한국전에 참여했던 K.V.A는 Born Canadian중에서도 누구보다도 한국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에 관심이 많고 한국과 가까운 마음을 갖고있다. 내가 알고있는 한국전 참여용사중 18세에 육군으로 한국전에 참여한 Smithy 라는 노인은 부산. 인천. 서울. 수원등의 한국지명을 이야기하며 흘러간 세월과 산화한 전우들을 생각하며 두 눈을 적시는 경우를 목격할 경우가 가끔 있었다.

끝으로 6.25동란으로 인한 피해는 다음과 같다.
1) 한국군 전사자 14만 1000여명
2) 한국군 부상자 19만 4000여명
3) UN군 전사자 12만 3000여명
4) 북한군 전사자 29만 4000여명
5) 중공군 전사자 18만 4000여명
6) 민간인 사망자 24만 4000여명
7) 행방 불명자 36만 3000여명
8) 민간인 부상자 22만 9000여명
9) 피학살자 12만 8000여명
10) 납북자 8만 4000여명
11) 전쟁고아 5만 9000여명
12) 피난민 720만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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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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