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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관 – ‘일상적 자아 부정’의 변증법..불교컬럼2
글 : 캘거리 서래사 법사 정진형(혜국)

1. 불교는 무신론이다. 왜 신을 부정하는가?

불교는 강명(强名)하자면, 즉 억지로 이름하자면, 무신론(無神論)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신이라는 존재가 부정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불완전한 인격적 요소, 즉 희로애락의 변화와 차별을 보이는 존재라면, 그것이 신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는 최고의 가치 혹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불교 무신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무신론적 근거를 통해서 불교의 구원론에서는 자칫 오해될 수도 있는 신적인 존재에 대해 단순히 복만을 빌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최상의 행복을 찾을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힘이 부족한 자들에게는 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타력문(他力門)이라고 하는 구원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임시방편에 불구한 것이며, 자기 자신의 노랙, 즉 자력문(自力門)을 통하여 성취되어지는 삶만이 최상의 행복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2. 부정의 철학 – 불교사상과 서구의 해체론 (deconstructionism)

최상의 행복을 위한 그 근본적인 교설은 바로 자기 자신의 육체(色), 느낌(受), 생각(想), 행동(行), 의식(識)과 관련된 허상을 부정하고, 깨드리는 것을 강조하는 초기불교의 ‘무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부정의 실천원리’ 즉 무아론(無我論)은 후대의 대승불교에 의해서 보다 체계화된 공(空)사상이라는 절대 부정의 철학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흔히, 불교의 무아사상, 혹은 공사상을 반이성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과 연관하여 설명하고 이해하는 경향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데리다의 해체론은 서구 사상의 잘못된 근거들을 하나하나씩 ‘해체’ (deconstruction)함으로써, 그 내면에 있는 보다 참된 의미를 파악해야 함을 역설하는 최근래의 철학적 사조로서, 모든 실체적 사상의 이면을 간파하고 그 본질을 들여다 보라고 하는 불교의 공사상과 매우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시대적 상황과 사상적 배경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절대주의’에 대한 비판만은 공사상과 해체철학의 양자가 공유하는 가장 큰 사조적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가 서구 해체주의와 공유하지 않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단순히 이론적으로 어떤 것을 해체하는 것만이 그 목적이 아니라, ‘잘못된 나를 부수고 올바름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실천론’의 측면이다. 또한, 바로 이점이 불교를 철학이 아닌 종교로 규정지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무아설의 ‘없음’이라고 하는 결과만을 취해서 이 세상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부정하는 단편적인 ‘허무주의’나, 이 세상의 모든 도덕과 윤리를 부정하는 ‘도덕부정론’을 편협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그 보다 양극에 있는 언어의 한계성을 간파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실천을 보다 중요시 하는 것이다.

3. ‘무아’의 수행론

희로애락만을 추구하거나 탐(貪)하고-화(瞋)내고-어리석음(痴)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삶은 불교에서 인생의 독(毒)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독에 의해서 비롯된 우리의 삶은 ‘좋고-싫음’, ‘이것-저것’, ‘내것-너의 것’으로 양분되는 일시적이고, 무상한 허상인 것이며, 이 허상으로서의 나의 모습이 바로 망아(忘我)라고 불리우는 가장 부정적인 대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분법에 의해서 점철되는 나의 모습이라는 것은 항상 일정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으며,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부유하고 모든 것이 부족하지 않은 풍족한 ‘있는 자’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그 삶이 반대편에 서 있는 ‘없는 자’를 고려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참된 인생의 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불교의 중도(中道)적 수행실천의 핵심 원리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모든 수행론은 양극단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심원리로 하여,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치우침 없이 화합할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참선-명상-기도수행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불교는 무아사상의 근본취지로 미루어 볼 때, 단순히 복을 비는 기복의 사상이라거나, 잘못된 신적 존재를 쫓아다니는 미신적인 종교는 결코 아니며,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잘못된 관념과 선입견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실천 수행론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07-11-23
bruceom | 2007-11-29 2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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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비는 기복신앙은 사이비 종교라 할 수 있겠군요.
참된 종교인 불교가 그릇된 인간의 욕심으로 수십세기동안 샤머니즘 요소로 오염되어 불교를 사이비종교로 인식하는 일반인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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