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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행 _ 신금재 (캘거리 문협)
보우 강변을 걸어가 본다.
얼마 전까지도 노란 단풍을 드리우고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어느새 모든 이파리들을 떨어뜨리고 덩그러니 겨울 강바람을 맞고 서 있다.
지난 여름, 나무 이파리 무성하던 이 길을 걸어가노라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는 나무 바람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한데 나는 어느새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마치 보너스를 받은 느낌으로 다녀온 가을 여행을 나만의 추억 앨범 속에 넣어 반추하고 있다.
“저런 현상은 왜 나타나는 걸까요?”
“저것은 빛의 굴절이지요.”
마치 과학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나누는듯한 이 대화를 은사님 두 분이 노을빛 지는 부여 부소산 아래에서 나누고 있었다. 여고졸업 30주년 행사를 맞아 잠시 고국을 찾았던 나는 뜻밖의 가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내가 도착하던 10월 중순만 하여도 동생의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다보이는 연경산에는 여름의 푸르름이 제법 남아있었는데 캐나다로 돌아오는 그 주말부터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산 아래로 예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여고 시절 은사님이셨던 두 분 교수님의 안내로 우리는 공주와 부여 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 분은 국어 선생님이셨고, 다른 한 분은 지학 선생님이셨다.
백제의 수도로 옛 향기가 젖어있는 도시, 공주와 부여는 작지만 아늑하였다.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물색은 아주 푸르렀고, 가뭄 때문인지 백사장 위 모래는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선생님, 기억나세요? 어느 목사님 설교집 주시면서 교정을 보라고 하셨지요?”
“그랬었지...” 선생님은 아득한 기억들을 힘겹게 꺼내시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금강을 끼고 돌아가는 도로 위를 달려가며 30년 전의 까마득한 기억들을 꺼내어 눈부신 햇살에 헹구어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국어를 가르치실 때에도 소리 한번 안 지르시고 수업을 하셨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서정주님의 시들과 낙엽을 태우면서 느끼는 어느 수필가의 글 등을 기억하면 늘 부드럽고 자상한 선생님의 모습이 배경처럼 드리워지곤 한다.
선생님은 여전히 부드러운 감성과 자상함을 간직하고 계셨지만 등이 조금은 굽어져보여 세월의 흔적이 그 분의 뒷 목 줄기를 따라 내려간 듯하였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지나갔는데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야만 하였다.
공주대학교 주차장에 들어서자 우리의 동기이며 두 분 은사님들과 함께 근무하는 친구가 미리 나와있었고 두 분 교수님께서 바로 도착하셨다. 다리 건너에서 사온 양란 화분을 건네자 두 분은 활짝 핀 그 꽃들처럼 웃으셨다.
은사님께서 차를 주차하고자 공주사대부고 근처로 가셨는데 식당으로 걸어가는 동안 마치 이웃 동네 사람들을 만나시는 듯 정겨운 인사를 여러 차례 건네곤 하셨다.
우리는 금강의 지류인 듯한 작은 개천이 흐르는 길가 옆으로 늘어선 한옥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는데 만두가 얼마나 큰지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불러왔다.
마당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잉어들이 노닐게 하고 철지난 포도나무는 아직도 그늘을 만들어서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부여로 향하면서 화살을 쏘는 국궁지에 잠깐 내리게 되었다. 마침, 은사님 사모님께서 싸 주신 과일이 있어서 우리는 잔디밭 위에 비닐을 깔고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부드럽게 스치는 가을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30년 전의 또 다른 추억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공주와 부여의 모습은 얼른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의 모습이지만 군데군데 유적지를 표시해 놓은 것을 보면서 역사도시임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길옆으로 5층 정림사지석탑이 보였지만 공사를 하는 중인지 푸른 색 비닐로 덮어 놓은 것이 담 밖으로 보였다.
우리가 처음에 간 곳은 무령왕릉 유적지였다. 입구에서 올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이제 막 단풍이 물들고 있는 나무들이 부끄러운 듯 가볍게 일렁거리고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적기도 하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다보이는 산은 그저 시골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경사가 완만하고 구릉이 있는 시골 야산처럼 보였다. 이곳에는 공동묘지들이 많았는데 어느 해인가 하수도 공사를 하던 근로자들이 이상한 울림을 듣고 조사를 하던 중 엄청난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다고한다.
유물이 발견되기 전 근처 학교에 근무하던 일본인 교사가 있었는데 많은 양의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린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머리를 숙이고 무덤 입구를 들어가니 넓은 동굴처럼 생긴 방이 나타나고 사방 벽에는 이상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말로만 듣던 좌청룡, 우백호, 남 주작, 그리고 북 현무의 그림들이었다. 사자처럼 생긴 동물이 무덤 안의 또 다른 무덤 입구에 놓여있었고 부스러질 것 같은 각종 장신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그 옛날 백제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왕을 무덤에 묻기 전에 지신(땅의 신)과 계약을 맺은 문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 일대에서는 더 많은 유적이 발견될 것이라는데, 백제문화의 아름다운 유물이 많이 발견되어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무령왕릉을 본 후에 우리는 부여 부소산에 올랐다. 가을이 깊어가는 부소산에는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가을날의 오후를 한가로이 즐기고 있었다.
군데군데 아름드리 나무들이 마치 백제의 옛 이야기를 아는한 알고 있는듯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하얀 나무 속 껍질들이 길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딱다구리 였다. 아마도 겨울준비를 하는걸까 우리 일행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딱다구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무껍질을 쪼아내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낙화암에 이르고 있었다. 왠지 3천 궁녀가 떨어졌다는 그곳은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곳에는 작지만 험한 바위들이 많이 있었다.
저녁노을 지는 금강을 배경으로 농촌의 한적한 마을에서는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나는 아득한 들판 너머로 한 무더기의 분홍 진달래 같은 꽃 무리가 넘실대는 환상을 보고 있었다.
두 분 선생님은 강물을 보며 예전의 강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것을 아쉬워하셨지만 우리는 저녁 바람 산들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마냥 좋기만 하였다. 우리는 정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어느 시인이 썼다는 시도 읽어보았다.
3천 궁녀를 죽게 만든 의자왕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낙화암에서 내려다보이는 금강은 물이 많이 말라있어서 더욱 작게만 보였다.
금강의 다른 이름이 백마강이라는 것을 알았고 유람선을 안내하는 방송에서는 어느 가수의 간드러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마강 달밤에 ...”
이제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연꽃이 많이 피어있다는 궁남지에 들러서 우리는 백제 무왕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서동요를 듣고 있었다.
‘선화공주님, 선화공주님은 사랑하는 서동을 따라서 도망갔대요“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시골마을 어느 골목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서동요를 부르며 달려가는 듯 돌아오는 길의 마을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내게 남아있다.


기사 등록일: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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