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지구적인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불안과 고통에 빠져있다. 이런 위기에서 과학자들은 물리적 세계의 성격을 탐구하면서,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과정, 관찰 가능한 현상들을 정직하게 설명한다. 이와함께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가장 적절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절대적인 주장을 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자연세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도록 격려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21세기의 종교와 정치의 기능과 목적은 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에서 밝히는 자연세계의 모습과 현상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들이 온전한 삶을 살도록 협력하고 지혜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종교가 습관성 중독이나 자아도취와 같은 정신이상이나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망상의 집단이 되면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대단히 해롭고 위험하다. 또한 부족주의-민족주의-국가주의로 국민들을 선동하는 얄팍한 정치는 자국민들은 물론 이웃 나라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그 좋은 예로, 북한을 멸망시켜야 우리가 안전하게 번영하고 잘 살 수 있다는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차별적으로 무시하고 미국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혼돈 속에 빠트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로버트 피어시그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하며,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고 고백했다. 망상(delusion)이란 말에 대한 여러 사전들의 정의를 살펴보면, 잘못된 믿음이나 인상을 뜻하며, 모순되는 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정신장애의 한 증상이라고 한다. 오늘 우주진화 세계관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첨단과학시대의 종교와 정치는 정신이상이나 망상이 될 수 없다.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현대 종교인들에게 경고하기를, 삼층 세계관에서 만들어진 망상의 하나님(The God Delusion)을 떠나 보내고, 우주진화 세계관을 발견한 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 인류는 현대과학이 발견한 138억 년의 우주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 우주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팽창하고 있다. 또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따로따로 개별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하나의 통합적인 몸으로 상호의존관계를 이루고 있다. 21세기에 과학은 새로운 세계관 즉 우주진화 세계관을 상식적이고 설득력있게 공개적으로 계시하고 있으며,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현대인들의 종교, 정치, 경제, 문화는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을 기초로 삼고 있으며, 3천5백 년 전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삼층 세계관과 이것에 기초한 내세적인 종교와 플라톤주의 철학은 더 이상 설득력과 영향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용도폐기될 상태에 놓였다.
2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한 현대 인간의 조상인 이성적 인간 호모싸피엔스는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생물종이다. 인간은 이 우주 세계에서 살면서 자신의 자아의식으로 이성의 눈이 뜨여지고, 삼라만상으로부터 영적,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인식했다. 대표적으로 쏘크라테스, 노자, 장자, 석가모니, 예수가 인간의 본성인 자율성과 창조성을 깨달았다. 또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인간의 이성이 성숙해지고, 과학적 사고가 깊어져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톤, 다윈, 아인슈타인이 우주진화 세계관을 발견했다. 그리고 흄, 칸트, 스피노자, 헤겔, 하이데거, 프로이드, 프롬, 융, 키에르코르, 윌버는 과학적 사실로부터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 즉 우주, 자연, 생명, 인간의 통합적인 실제(實際 Reality)를 발견했다. 이렇게 인류역사가 밝혀주듯이 인간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협력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마치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어느 한 쪽을 무시하면 인간의 정체성은 온전하지 못한 반쪽이 될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은 하찮은 것으로 무시되고, 인류사회는 분열과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절망적인 위기에 빠진다. 인류역사가 분명하게 밝히듯이, 과학과 분리된 종교가 신봉하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삼층 세계관의 내세적이고, 이분법적이고, 물질적이고, 인격적이고, 배타적이고, 우월적이다. 따라서 인종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계급차별, 종교차별, 생태계파괴, 황금만능주의 등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과학에 기초한 종교의 하느님은 우주진화 세계관의 현세적이고, 우주적이고, 통합적이고, 포월적이고, 비인격적이고, 현실적인 실제(實際 Reality)이다. 따라서 과학이 발견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는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들이 지금 여기에서 경계 넘어 평등하게 존엄성을 잃지 않고 온전함을 살아내는 삶의 요청이고 방식이다.
인류 조상들은 우주적인 자연과 인간의 삶의 현장으로부터 지혜를 얻었다. 그리고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평화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목적과 의미임을 인식하고, 이 깨달음을 후손들을 위해 시적이고 은유적이고 신화적인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이 후대에 전통적인 종교들의 경전이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종교와 경전은 원초적으로 신(神)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온전함(wholeness)에 대한 것이었다. 현대과학은 자연과 생명과 인간과 하느님의 상호관계에 대해 이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세론과 부족적인 삼층 세계관을 떠나보내고, 오직 하나의 세계와 현세적 영원함과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우주진화 세계관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안한다. 과학이 우주진화를 발견한 것은 인류에게 기쁜 소식(복음)이다. 왜냐하면 인종과 종교와 문화의 장벽 넘어 온 인류가 화합을 이루어 평화롭게 사는 길은 우주진화 이야기를 공통의 경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아직도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히브리인들의 초기 역사를 인간과 생명과 자연의 기원 역사로 착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주 세계와 생명체들과 인간은 6천 년 전에 초자연적인 하느님에 의해 완성품으로 창조되었다고 맹신한다. 2천5백 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성서가 기록되기 전에 이미 오랜 세월동안 세계는 활발하게 운행되고 있었다. 우주 세계의 출현과 시작은 성서가 기록된 곳이 아니다. 인간이 속해 있는 세계의 시작은 하느님의 예정된 설계와 창조가 아니라, 138억 년 전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빅뱅의 순간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세계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성서에 기록되기 몇십만 년 전에 이미 이성적인 호모싸피엔스 인간의 본성에 창조성과 자율성이 있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서 세계를 창조했고, 거기에 하느님-하나님-야훼-브라만-도-위대한 영 등등의 말을 만들어 자신들의 경험세계를 은유적으로 즉 신화적으로 표현했다.
고대인들은 만물이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엇이 소중한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과 문화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먼저 구전(口傳:입으로 전하다)으로 전했고, 후대에 문자를 사용하면서부터 전승들을 은유적으로 즉 신화적으로 기록했다. 특히 기독교 구약성서의 창세기 처음 몇 장들은 세계의 다른 문화들의 창조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부족들과 민족들과 경쟁적으로 자신들이 전체 우주의 역사를 대표하고 있는듯이 기록되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기록들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성스러운 경전은 배타적이고 부족적인 옹졸한 책으로 전락하게 된다. 21세기 현대인들은 종교인-무종교, 유신론자-무신론자의 경계 넘어 과학의 발견 즉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광대한 우주의 출현과 불확실성의 천체학적 발견, 지구는 살아있다는 지질학적 발견, 우리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들이 진화하고 있다는 생물학적 발견, 그리고 인간은 내면적으로 창조성, 자율성, 가능성,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참 인간의 본성에 대한 뇌과학적 발견 등의 과학적인 발견들에서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는 교회가 문자적으로 믿는 창조론에 근거한 지구 중심설을 반박하고, 태양 중심설, 즉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지동설(地動說)을 발표했다. 계속해서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주변을 배회하는 위성을 발견하고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기존 관념을 확실하게 깨부수었다.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자연현상 관측에 있어서 정밀한 측정을 기초로 경험적 관측 형태를 확립하기 시작했으며, 1687년 뉴톤이 중력의 법칙을 통해서 현대적 관점의 우주론을 설명함으로써 과학의 시대가 열렸다. 1859년 다윈이 발표한 자연선택에 의한 생명의 진화론은 오늘까지 삼층 세계관의 신학과 신앙이 영항력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한 획기적인 동기가 되었다. 더욱이 이때부터 교회 기독교가 통제하던 서구사회는 경험적인 과학과 성서근본주의의 대결이 심화되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문자적 직역주의는 설득력을 상실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인류 역사를 선도해왔으며, 오늘날 과학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상식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이야기는 종교에게 대단히 값진 선물이고, 종교가 우주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과학에게 좋은 선물이다. 종교들이 과학에 근거한 우주진화 역사를 인식하고, 새로운 하느님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각 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이전보다 더욱 폭넓고 현실적이고 현세적이 될 것이다.
필자는 극단적으로 과학과 종교 어느 한 쪽을 절대적인 진리로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질학자에서 신학자로 전향한 필자의 실제적인 경험에 의하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보완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는 공동으로 우리의 삶을 심층적으로 성숙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정치는 종교의 노예가 되기보다 과학을 존중하고 발전시켜야 인류사회의 미래가 밝다. 우리는 수십만 년의 인류역사에서 인간의 자아의식이 생동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광범위한 개혁의 초기 단계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과학이 종교와 정치와 충돌하는 시간낭비를 중단해야 한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을 사멸시키는 일은 없다. 과학과 종교와 정치는 조화를 이루어 통합적인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종교와 정치는 과학이 발견한 138억 년의 우주진화 역사에서 참된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찾지 못한다면 그 종교와 정치는 인류사회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며, 위험할뿐만 아니라 자멸하고 만다. 다시 말해, 종교와 정치가 과학을 포기하거나 무시하면 설득력과 효력을 잃고 사이비 종교와 선동주의적인 정치가 되고 용도페기되는 비참한 운명이 된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