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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힘든 나무 (12번째)
1982년 8월

먼저 있던 회사는 온태리오 정부와 관계되는 일을 많이 했고,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많이 있어서 인지, 어딘가 모르게 좀 딱딱한 분위기에 권위주의가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직장은 미국계 회사라서 그런지 몰라도 훨씬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또 새로이 건물을 신축하고 활기있게 연구하는 분위기였고 재정상에도 큰 어려움 없이 풍요러워 보였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필요한 화학품이나 기구를 살려면 몇명의 결제를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결제로 해결이 됐다. 일하는 분위기도 자기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누가 뭐라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자기가 맡은 일에만 충실했고 문제가 생기면 Meeting을 해서 서로 머리를 맛대고 지혜를 짰다. 정말 직장을 옮기길 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직장이나 100점 짜리는 없게 마련이었다. 다 좋은데 한 가지 신경을 건드리는게 있었다. 군대에 가면 꼭 일등병이나 상병 중에는 곱창(?)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엔 무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못되게 노는 보기 싫은 고참들을 “곱창”이라고 불렀다.

생긴지가 얼마되지 않는 회사여서 많은 사람들은 일한지 1~2년 되었다. 그 중에 4년을 일했다는 P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친구가 더러운(?) 곱창이었다. 별로 실력도 좋은 것 같지 않았는데, 짬밥수를 따져서 텃세를 맘껏 부리고 있었다. P를 볼 때마다 한국 군대생활을 생각나게 했다. 군에 가면 좀 덜 배우고 덜 떨어진 고참 중에서 대학을 다니다 온 신참이 들어오면 시간이 날 때마다 들들 복고 두들겨 패는 곱창들이 있었다. P는 꼭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수불길하려니까 나와 P가 실험실을 같이 쓰게 되었다. P는별것 아닌 걸 가지고 사사건건이 트집을 잡았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Coffee break time이나 점심 시간이 되면 다른 동료들에게 내 험담을 하는 것 같았다. 꼴에 실력이라도 있으면 그런대로 봐 주겠는데……
‘이 시끼를 그냥 콰~악’ 하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들었다.
‘그러면 안되는데…’ 내 자신을 달랬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도 웬간히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P는 내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했다.
‘뭐 좋은 수가 없을까? 그렇다고 줘 팰 수도 없고……’ 난감했다.

힘든 사람을 매일 같이 봐야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P와 나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연치고는 정말 묘한 인연이었다. P의 할아버지는 인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 사람들은 곳곳에 널려 있는 그 많은 식민지를 착취하기 위해서 인도 사람들을 데려다가 밑의 사람들을 다루는 일을 시켰다. 결국은 식민지 사람들을 쥐어 짜서 영국 사람들에게 갔다 바치는 일을 인도 사람들이 했다. P의 할아버지도 그 당시 아프리카에 있는 우간다에 가서 살았단다. P는 우간다에서 태어난 인도 이민자의 3세였다. 우간다에서 살만 했었는지 영국에서 대학을 마쳤다고 했다.

1970년대에 우간다에 Idi Amin이라는 괴물(?)이 나타나서 영국과 맛서더니 1970년대 후반부터 우간다에 사는 외국인들을 탄압하며 내쫓기 시작했다. 더우기 우간다인들을 착취하던 영국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인도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했다. 그래서 P의 가족들도 1978년에 카나다로 이민을 오게 됐단다. P는 1978년 11월 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가만이 시간을 따져보니 내가 Xerox와 인터뷰를 한 후 Offer를 받은 때와 같은 시기가 아닌가! 아~~~! 감이 잡혔다!!!

P는 내가 Offer를 거절했기 때문에 나대신 그 자리에 들어 온 사람이었다. 참~ 인생살이라는게 묘했다. 내가 Offer를 거절했기 때문에 직장을 잡은 녀석한테 그렇게 텃세를 당하다니!
‘에이 씨~양,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들어오는건데……’ 후회를 해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참고 사는 수 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아니면 직장을 바꾸던가.

어느날 P는 낑낑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았다. 곁눈으로 힐끗 쳐다보니, 그가 하는 방법으로 는 아무리 해도 일이 안되게 돼 있었다. 나는 그 비슷한 일을 황박사와 많이 해 봐서 훤~히 눈에 보이는데, 경험이 없는 P의 눈에는 그게 보일리가 없었다.
‘쨔샤, 백날을 해 봐라! 일이 되나!ㅎㅎㅎ’
‘아~ 고거 참 고소~하다! 깨가 말로 쏟아지는구나!’ 보기에 애처로웠지만 꾹 참고 모르는척 했다. 주위에 있는 동료들에게 물어 보는 것 같았지만 신통치 못했다. Deadline(마감일)은 닥아오는데, 일은 안되고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쨔~식 꼴 쪼~오타!’ 나에게 물어 보면 가르쳐 줄텐데…… 자존심은 있어서 물어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또 그의 생각엔 ‘네 까짓게 뭘알아?’ 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한수 가르쳐 줘? 말아?’
‘밉지만 안됐으니 도와 주자!’
“뭐가 잘 안되냐?”
“……” P는 힐끗 쳐다보더니 좀 챙피하기도 하고 ‘네가 뭘 알겠니?’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이~이구 이시끼~, 아직도 자존심은 있어서……’
‘안 가르쳐 주고 말까부다~! 어진아, 참아라 참아!’

“이런 상황 일수록 사람은 겸손해야 돼!”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듯 했다.
‘그래, 밉지만 차근차근 가르쳐 주자!’
내겐 빤~한 것이었지만, 너무 쉽게 가르쳐주면 그의 자존심도 상하겠고, 교육(?)의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왜 일이 안됐고, 어떻게 하면 될 것인지. P는 놀라는 눈치였다!
“너 어떻게 이걸 알았니?”
‘쨔~식 놀래긴!’
“나 이와 비슷한 일 많이 해 봤어”
“그랬었구나! 일찍 너한테 물어 볼껄…”

P의 도도하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녀석은 서서히 꼬랑지를 내리고 있었다.


꼬리글: P는 내가 가르쳐준대로 해서 일을 마감일 전에 잘 끝마쳤다. P는 석달 후에 건물을 더 신축해서, 다른 실험실로 옮겼다. P는 이제 27년을 일했고 나는 23년을 일했다. P는 요즘도 가끔 내 실험실로 Sample을 가져와서 내게 분석을 부탁하곤 한다. 내가 분석을 안 해주면 녀석은 꼼짝도 못한다. 내가 해주는 분석 결과가 있어야지만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적에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나도 좀 곱창을 부릴까?’생각도 해 보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일도 머리에 남는 추억이다. 녀석도 이젠 많이 늙었다!


기사 등록일: 200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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