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보은(報恩)
이글은 저의 바로 아래 남동생이 쓴 글입니다.
============================================================

저는 1948년 5월에 출생을 하였읍니다. 그러니까 제가 만 두살이 되던 해에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읍니다. 이북에서 남하하신 부모님과 형님들과 누님, 그리고 친척분들의 뒷잔등에 번갈아
엎혀가며 남으로, 남으로 피란을 내려와 김해라는 곳에서 피란생활을 했읍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서울로 올라와서 서소문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읍니다.

저는 6.25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희미하게나마 육이오 전쟁을 기억할 수있는 마지막 세대인 것 같읍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인물은 실존인물도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도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먹고 살기 힘든 중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도와 주는 인정어린 손길들이 많았
읍니다. 은혜를 입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강조하려다 보니 줄거리가 너무 과장된 듯도 합니다. 인터넷에 올리기에는 글이 너무 긴 것같은 느낌도 들지만 단편 소설(?)이라고 생각하
시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보 은

“1234 번 면회!”
차디 찬 감방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찬돌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읍니다.사형수에게는 면회라는 간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이젠 끝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하였읍니다. 사형을 집행할 때에는 면회라는 말로 죄수를 불러 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형을 집행할 때는 항상 오전에 집행한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초초하게 안절 부절 못하다가도 점심 식사가 배식이 되면 “오늘 하루는 무사히 지나가는구나!” 하며 안도의 숨을 내 쉬곤 하였읍니다.

사형수들에게는 토요일 점심 식사 시간이 제일 즐겁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말에는 사형 집행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날 일요일,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일 수가 있으니까요. 간수에게 이끌리어 면회실에 들어선 찬돌이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면회석에 앉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욕설이 터져 나왔읍니다.
“ 내래 널 어드케 키웠는데 네래 이 에미 가슴에 모다구(못)를박아 놓구 ….어디 말 좀 해보라우. 사람을 죽인 댐(다음) 부턴 버버리(벙어리)가 된네?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엉 ..엉..”

찬돌이 어머니가 면회를 오는 날에는 면회실에 있는 간수들도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읍니다. 죄 없는 내 아들 살려 내라고 고함을 지르며 퍼질러 앉아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간수들에게 질질 끌려 나가기가 일쑤였읍니다. 정말로 어머니 말씀대로 살인 사건 이 후에는 찬돌이는 벙어리가 되어버렸는 지도 모르겠 읍니다. 사건 취조를 받을 때도 ‘잘못 했읍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 그 외에는 일 체 다른 말을 하지 않았읍니다. 훈훈한 면회실을 떠나 으실으실한 감방으로 돌아 온 찬돌이는 눈을 감고 지나온 날들을 회상해 보았읍니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남대문 시장을 옆으로 돌아 남산 쪽으로 올라 가노라면 양동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는데, 그 일대는 몽땅 사창가 였읍니다. 남산 밑에서 오른 쪽으로 돌아서 얼마를 가면 언덕 내리막 길이 나오는데, 그 일대가 도동이라고 하는 동네였읍니다. 서울역 광장 오른 쪽 길 건너 편에는 동자동이었읍니다. 그리고 서울역 광장에서 왼 쪽으로 아현동 쪽으로 가노라면 염천교가 있고 염천교 다리를 지나면서 부터는 염천동입니다. 염천교 다리 맞은 편쪽으로는 순화동입니다.

1950 년대 …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어수선 할 때의 그 당시 그 곳은 법이 미치지 못하는 무법 지대(?)같았읍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런 곳이 많았읍니다. 서울역에는 하루에도 수 많은 인파들이 서울로 쏟아져 들어 왔읍니다. 먹을 것이 없어 시골에서 가출한 여자 아이들을 잡아다가 사창가에다 팔아 먹고 남자 아이들은 잡아다가 쓰리꾼(소매치기)을만들거나 아니면 양아치 집단에 넘기기도 했읍니다.

거지들도 많았고 문둥이들도 많았고 아편장이(마약중독자)들도 많았읍니다. 좀도둑들도 많았읍니다. 마루 밑에 벗어 놓은 구두를 눈 깜짝할 새에 훔쳐 갔읍니다. 깡패들도 많았지만 깡패들 보다도 상의 용사들의 행패가 더욱 심했읍니다. 삼삼 오오 떼를 지어 다니면서 시장점포는 물론 동네 가게 음식점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들어가서 돈을 요구 했읍니다. 그러다가 돈을 안 주거나 주는 돈이 많지 않을 때는 난리 법석을 떱니다.
“이거 왜? 이래! 당신들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편안하게 장사하는 줄 알아?”
“이르디 덜 말라우! 나라를 구하갔다구 인민군 덜 하구 쌈질하다가 내 다리가 이르케 되서! 자! 눈이 있으믄 보라우!”
소리를 지르며 헐렁한 바지 가랭이를 치켜 올리고 흉칙한 몽당 다리를 내어 놓고 바닥에 벌렁 드러 눕기가 일쑤였읍니다.

전쟁 통에 부모와 함께 피난을 내려 오던 찬돌이는 부모가 돌아 가셨는지 아니면 도중에 부모를 잃어버렸는지… 아무튼 족보에도 없는 것 같은 먼 친척 삼촌 뻘이 된다는 집에 언쳐 살고 있었읍니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갖은 구박을 다 받으며 같이 살고 있는 형들에게 허구한 날 얻어 터지기가 일쑤였읍니다. 물론 먹을 것이 귀하던 때인지라 천대 받던 찬돌이에게는 끼니 거르는 것이 보통이었읍니다.

가끔 어른들이 모여서 하는 말을 들었읍니다.
“서울에 가몬 일자리도 많고 여기보다 억쑤로 살기 좋다 카드라.”
찬돌이는 형들에게 매를 맞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만 했지만 배고픈 것은 참기가 힘이 들었읍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잠이 안 올 때면 부억으로 가서 바가지로 냉수를 떠서 벌컥 벌컥 들이키기도 했읍니다. 하얀 쌀 밥에 배추 김치를 언져서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읍니다. 어린 찬돌이는 서울로 가기로 결심을 했읍니다.

부산역 끄트머리에 가시 철망을 뚫고 기어 들어가서 기차에 올라 탔읍니다. 검표원에게 붙잡히면 따귀를 몇 대 맞고 다음 역에서 내리고 그 곳에서 구걸하며 밥 한 술 얻어 먹고 아무 데서나 잠을 자고 또 기차를 훔쳐 타고…이렇게 몇 날 몇 일을 걸려서 서울에 도착하였읍니다. 참으로 서울에는 사람들도 많고 자동차도 많고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읍니다. 서울에서는 시골에서 올라 온 아이들을 잡아다가 팔아 먹은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찬돌이를 잡아 가는 사람이 없었읍니다.

찬돌이는 누가 빨리 자기를 잡아가기를 바라면서 서울역 근처를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도 하고 이리 저리 돌아 다니다가 남대문 시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늦은 가을 김장 철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배추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국밥 집 앞을 지날 때에 풍기는 고기 국 냄새는 찬돌이의 발 걸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읍니다.그 때에 누군가가 찬돌이의 오른 팔을 움켜 잡았읍니다. 체격이 크고 남자처럼 생긴아주머니였읍니다. 이제야 잡혀가는구나! 찬돌이는 반가왔읍니다. 그러나 무섭게 생긴 여자였기 때문에 겁도 났읍니다.
“너 집이 어디가?”
“……….”
“너 말 못하는 버버리(벙어리)가?”
“저 …집이 없어요.”
”기래? 고롬 날 따라 오라우!”

무섭게 생긴 아주머니는 한참을 걸어 남산 밑 어느 대문도 없는 판자집에 들어서자마자 찬돌이를 발가 벗기더니 싸늘한 날씨인데도 찬물을 끼얹고 쑤세미에다 빨래 비누를 칠해서 머리 부터 발 끝까지 목욕을 시켰읍니다. 찬돌이는 너무 추워서 사시나무 떨듯이 와들 와들 떨었읍니다. 낡은 옷이었지만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읍니다. 찬돌이는 궁금했읍니다. 잡아다가 팔아먹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읍니다. 아주머니는 찬돌이에게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읍니다.

저녁 때가 되어 밖에 나갔던 아이들이 들어왔읍니다. 아주머니는 밥상에 둘러 앉게 했읍니다.
“이름이 뭐이가?”
“김 찬돌이예요.”
“나이는?”
“아홉 살이예요.”
“너희덜 잘 들으라우. 오늘 부터 야래 너네덜 오래비구 형이야. 알가서? 그르카구 찬돌이 넌 오늘부터 날 오마니라구 부르라우. 아니디. 이남 사람덜은 어머니라구 부르야디. 야는 선숙이구, 야는 선자구, 야는 선철이야. 찬돌이 네래 이제부터는 우리 집안에 기둥이니까니 앞으루 동생덜 잘 봐 주야되! 알간? 자! 식갔다. 날래 먹자.”

멀건 콩나물 국에다 깡 보리 밥이었읍니다. 어머니께서는 찬돌이가 배가 많이 고플 것이라고 생각하고 밥 그릇에다 보리 밥을 고봉으로 높게 담아 주었읍니다. 참으로 얼마만에 먹어 보는 따뜻한 밥에 따끈한 국물인지 몰랐읍니다. 너무 맛있게 먹느라고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 조차도 잊어 버렸읍니다. 밤이 되었읍니다. 단 칸 방에 차디 찬 바닥에 이불 한 채를 깔았읍니다.
“오늘부터는 식구 하나가 더 늘었으니까니 이부자리가 좁을꺼이야. 그르니까니 바루 눕디 말구 모(옆으로)루 자야 되갔다. 이불이 생길 때까지만 참으라우.”

어머니는 문 쪽에 누우시고 선숙이 선자 선철이 그리고 찬돌이가 누었읍니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모두들 옷을 입고 자야만 했읍니다. 동생들이 쌔큰 쌔큰 잠이들자 어머니께서 찬돌이를 부르셨읍니다.
“찬돌이 자네?”
“아니 안 자요. 어..어머.. 어..”
“오마니 소리 안 나오믄 오마니라구 안불러두 돼. 내래 널 와? 데리구 왔는지 궁금하디? 내래 니북(이북)에서 피난 내리 오다가 큰 아들 선동이를 니지삐래서(잃어버렸어). 진남포 역에서 조꼬맹이덜은 바쌔 기차에 다 올래 놨는데 그 많은 사람덜이 이켄으루 밀리구 데켄으루 밀리군 하는 데 날 부테 잡구있던 갸래 어드메루 없어 덴는 지 알 재간이 있나. 기차는 곧 떠나갔다구 빽 빽거리디 그르니 내래 어드케 하간. 할 수없이 갸를 포기하구 기차를 탔디. 바쌔(벌써) 죽었을꺼야. 전쟁 통에 무슨 재간으루 조꼬만게 살아 있간. 널 보니까니 선동이 생각이 나디 않았간네. 갸두 살았으믄 키두 너만 하구 너 같이 시장 바닥에서 먹을께 없어서 굶구 댕기 갔디 하구 생각하니까니 네래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내래 데리구 왔디. 너두 봐서 알갔디만 학교댕길 생각은 하디두 말구 어드케 하믄 밥 굶디 않구 살 수 있간나? 하는 생각만 하멘서 눈알 발가차구 일 할 생각만 하라우. 내일 부턴 일찌가니 일어나서 나하구 일하러 같이 가야 되니까니 날래 자라우.”
이렇게 해서 어머니와 동생들과 한 식구가 되어 살기 시작했읍다.

찬돌이는 추운 감방에 쭈구리고 앉아 있으려니 손과 발이 시려 왔읍니다. 찬돌이는일어 서서 제자리에서 두 손을 비비며 껑충 껑충 뛰었읍니다. 그러면서 형무소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어 보았읍니다.

“형! 어머니가 몸이 아프셔서 꼼짝두 못해. 소화가 안되는 것 같다구 그래서 약방에서 활명수를 사다 드렸는데 소용이 없어. 어떻게 하지?”
철공소에서 오늘 따라 용접을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 일을 끝내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드러 누워서 끙끙 앓고 계시는 어머니를 들여다 보며 선숙이와 선자는 훌쩍 훌쩍 울고 있었고 선철이는 막 들어오는 찬돌이를 보더니 구원병을 만난 듯이 반색을 하며 말 했읍니다.
“그래? 그럼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다. 자! 어머니 제 등에 엎히세요.”
“야! 거 쓸데 없는 소리 하디 말라. 이르카구 두어 시간 엎데 있으믄 날 껄 개지구 뭘그르케 벅짝 고네(시끄럽게 떠든다는 말)?”

고집을 부리시는 어머니를 거의 강제로 등에 엎고 밤 길에 저 쪽 언덕 밑에 있는 x x 의원으로 갔읍니다. 어머니를 진찰해 본 의사는 급성 맹장염이니 빨리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읍니다. 시간을 끌면 맹장이 터져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서둘러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읍니다. 어머니 찬돌이 선철이 모두 눈앞이 캄캄 했읍니다. 무슨 수로 그 큰 돈을 마련할 수가 있읍니까? 그렇다고 어머니를 돌아 가시게 할 수는 없었읍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머니를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 봐야 거절 당할 것이 뻔 했읍니다.

병원에 입원을 해 있는 환자들도 제 때에 입원비를 내지 않으면 아무리 중환자라고 할 지라도 병원 문 밖에다 내어 놓는 세상이었읍니다. 그렇게 야박하게 굴어도 병원 측을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무슨 수로 그 많고 많은 어려운 형편의 환자들을 사정 봐 주어 가며 치료를 해 줄 수가 있겠읍니까? 어머니 곁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찬돌이는 동이 트자마자 철공소로 달려 가서 오늘 급한 볼 일이 있어 결근을 하겠노라는 쪽지를 철문에 끼워 놓고 알만한 사람들을 찿아 다니며 사정을 해 보았지만 허사였읍니다.

끼니 때도 잊어 버리고 쏘다니다보니 날이 어둑 어둑해지기 시작했읍니다. 축 처진 어깨에 퀭한 눈으로 마지막으로 자린고비라고 소문난 철공소 사장님에게 매 달려 볼 생각으로 철공소로 발 길을 옮겼읍니다. 길 건너 편에 철공소를 바라보며 무슨 말 부터 꺼내야 할 지를 생각하며 궁리를 할 때에 갑자기 철공소 문이 열리며 선철이가 황급히 뛰쳐 나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읍니다.
“아니? 선철이가 무슨 일로 이렇케 늦게 까지 철공소에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철공소 안으로 들어 갔읍니다. 사무실 안에 전등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읍니다.

“사장님! 저 찬돌입니다. 안에 계세요?”
사장님을 부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 섰을 때 사장님은 흉기로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져 있었고 붉은 피가 마루에 흥건했읍니다. 책상 위에는 장부와 전표들이 널려 있었고 철재로 된 금고도 열려져 있었고 그리고 사무실 문 앞에 선철이의 장갑이 떨어져 있었읍니다. 찬돌이의 부탁으로 사장님의 허락을 받아 선철이에게 용접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용접할 때 끼던 장갑을 선철이는 언제나 바지 뒷 주머니에다가 절반은 집어 넣고 손가락이 있는 부분은 항상 밖에 내 놓고 다니곤 했읍니다.
“이 녀석이 이렇케 끔찍한 일을….. 이 일을 …이 일을 어찌하나!”
찬돌이는 순간 적으로 무슨 판단을 했는 지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서 여기 저기 몇 군 대 피를 묻혀서 철공소 구석에 있는 드럼 통으로 된 쓰레기 통에다 버렸읍니다.
그리고 선철이의 장갑을 집어서 주머니에 쑤셔 넣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떴읍니다.

찬돌이는 근래에 와서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읍니다. 재판을 받을 때도 더우기 사형 언도를 받을 때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담담했읍니다. 그러나 사형이 확정이 되고서도 자꾸만 날짜가 지나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두려운 생각이 들었읍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한 시도 잊어 본적이 없었고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보답을 이렇게 갚는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해 보았읍니다.

“1234 번 면회!”
찬돌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읍니다. 어제 오셨던 어머니께서 오늘 오실리 가 없었읍니다. 면회실로 불려 갈 때는 간수가 한 명인 데 오늘은 수갑을 채운 찬돌이의 팔에 간수 두 명이 양 쪽에서 팔 짱을 끼었읍니다. 지금 걸어가는 복도는 면회실과 정 반대 방향이었읍니다. 걸을 때마다 발을 헛 디디는 것 처럼 힘이 없었읍니다. 간수들의 표정도 여느 때와는 달리 굳어져 있었읍니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건물 밖으로 나왔읍니다. 맑은 하늘,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 잠시 후에 나의 영혼이 저 창공을 훨훨 날아 어디론가 떠나 가겠지. 하고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았읍니다.

찬돌이는 숨을 쉴 때마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쉬었읍니다. 그 이유는 신선한 공기로 인하여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맑고 깨끗해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읍니다. 찬돌이는 사형대위에 세워졌읍니다. 사형대 맞은 편에 형무소장과 서기가 앉아 있고 그 옆으로 찬돌이를 인솔했던 간수들이 뒷 짐을 쥐고 서 있었읍니다. 찬돌이는 눈을 감았읍니다. 지금까지 찬돌이를 사랑해 주셨던 어머니를 생각했읍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아홉 살된 저를 데려다가 친 자식처럼 길러 주셨읍니다. 보리 쌀 한 솥에다 흰 쌀 한 줌을 넣고 밥을 하시고 주걱으로 이리 저리 골고루 섞으셔서 식구 수 대로 밥을 푸시고 마지막에는 제 밥그릇에다 흰 밥알을 조금이라도 더 언져 주시던 어머니! 행여나 동생들의 밥 그릇 보다 흰 쌀이 덜 들어 있으면 데려다 기른 자식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제가 서운해 할까봐서 항상 동생들 보다 저를 먼저 생각하시던 어머니.그 렇기에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며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었읍니다.”

형무소장이 무엇인가를 계속 읽고 있었지만 찬돌이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읍니다. 아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어머니의 사랑을 마음 속에 담아 가고 싶었읍니다.
“어머니! 동네 아이들이 길에서 주어다 기른 자식이라고 저를 놀려 대곤 하였을 때, 변소에서 오물을 깡통에다 담아서 놀리던 아이들 집을 찿아 다니시며 한 번만 더 놀려 댔다가는 똥물을 뒤집어 씌우겠다며 아이들에게 겁을 주시던 어머니! 그러시면서 놀림 당하고 울고 있던 저에게 절대로 기 죽고 살지 말라고 하시던 어머니! 그 때는 몰랐지만 커가면서 그 말씀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읍니다. 그렇기에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었읍니다.”
찬돌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읍니다.

“어머니! 추운 겨울 밤 창호지가 찢어져 찬 바람이 방 안으로 몰아 쳐 들어 올 때 저희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서 다 해진 담요를 뒤집어 쓰시고 뒷 잔등으로 바람 구멍을 막아 주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 이셨기에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고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었읍니다.”
찬돌이는 아홉 살 때 부터 오직 한 가지 희망은 자기를 거두어 주신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보답, 그 것 뿐이었읍니다.

“어머니! 배고픈 거지가 동냥을 하러 오면 한 번도 거절치 않으시고 밥 그릇을 들고 나가셔서 깡통에다 밥을 덜어 주시던 어머니! 저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들 만이 할수 있는 일인 줄 알았읍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배우지 못한 무식한 여편네라고 흉을 보면서도 모두들 마음 착한 어머니를 칭찬 하셨지요. 저도 어머니처럼 불쌍한 이웃을 도우며 어머니와 함께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었읍니다. 어머니! 제가 용접기술을 배운 후로 제가 받아 오는 월급이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저에게 늘 고마와 하셨지요. 제가 18세에 용접공 면허 시험에 합격하였을 때 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니! 여동생 선숙이와 선자의 몸이 점점 어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시며 좁디 좁은 삭월세 단 칸방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자며 생활해야 하는 것을 늘 안스럽게 생각하시던 어머니! 그렇기에 어머니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저축을 해 놓았던 돈으로 방 두칸 짜리 전세를 계약해 놓고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을 때 제 손을 붙잡고 소리내어 우셨던 어머니!”

그 때에 제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은 손(?)이 아니라 말라 비틀어진 나무 조각같았읍니다. 이사하기 전 날 밤에 남대문 시장에서 헌 신문지를 한 보따리 사다가 풀을 쑤어서 밤을 새우며 도배를 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행복해하던 우리 식구들 이었읍니다. 이사를 마친 저녁 때에 어머니께서는 닭 한마리를 잡으시고 참으로 오랫 만에 닭 국물에다 하얀 쌀 밥을 말아서 맛있게 먹던 도중에 어머니께서 우시는 바람에 우리 모두가 같이 울었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그 때에 그 일을 한 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었읍니다. 어머니께서는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웃음 보다는 눈물을 먼저 흘리셨읍니다. 그런 어머니이기에 항상 웃으실 수 있도록 어머니께 효도하며 오래 오래 같이 살고 싶었는 데…흑…흑. 그리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동생들과 .지금처럼 ..화목하게..지내고…싶었는데…어머니…사랑해..요..오…흑..”

형무소장이 찬돌이에게 무엇인가를 물었지만 흐느껴 울기만하는 찬돌이를 바라보던 형무소장은 간수에게 머리를 끄떡였읍니다. 찬돌이에게 다가간 간수는 들고 있던 흰 두건을 찬돌이 머리에 씌웠읍니다. 그리고 동그란 원형의 밧 줄을 찬돌이 목 에 걸었읍니다. 찬돌이는 떨리고 두려웠읍니다.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읍니다.

“어머니! 저는 갑니다.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선택한 이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잘못된 길인지 알 수는 없지만은 어머님께 진 사랑의 빚을 갚는 최선의 길이 이 길이었다고 생각 되었기에 이 길을 선택했읍니다. 저를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제가 가지 않으면 어머니께서는 지금 보다도 더 큰 고통, 더 큰 아픔, 그리고 더 큰 슬픔을 안고 살아 가실 겁니다. 언젠가 어머니와 제가 만나는 날, 어머니께서 저의 진실을 아시면 “네가 그래서..그랬었구나!” 하시며 저를 부둥켜 안으시고 지금보다 더 큰 소리로 우실 날이 꼭 있을 겁니다. 어머니! 만수무강 하세요.”

“선철이가 잘 모실거예요. 어머니를 위해서 살인도 서슴치 않은 선철이가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 들 못하겠읍니까? 13년 동안 저를 맏아들로 키워 주셨던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님의 그사랑! 제마음 속에 간직하고…가겠읍니다….어..머..니~ 안녕히…안..녕히…계십시….요.흑..흑…어머니~~~ 정말로 고마왔 읍니…다…”

이윽고 무겁고 침울한 형무소장의 명령이 떨어졌읍니다.
“집행!”
“덜커덩!”
찬돌이는 덜커덩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떨어지던 몸이 급하게 정지하면서 숨이 콱 막히는 굉장한 답답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몸이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찬돌이는 빠르게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도, 가물 가물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아까와는 달리 자신의 몸과 마음이 평안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읍니다.

기사 등록일: 2005-09-29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웨스트젯 캘거리 직항 대한항공서..
  성매매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 한..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5
  캘거리 의사, 허위 청구서로 2.. +1
  캘거리 고급주택 진입 가격 10..
  주정부,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
  미 달러 강세로 원화 환율 7%..
  캘거리 부동산 시장, 2024년..
  연방치과보험 드디어 5월 1일 ..
  “주택정책 너무 이민자에 맞추지..
댓글 달린 뉴스
  트랜스 마운틴 파이프라인 마침내.. +1
  캐나다 동부 여행-뉴욕 - 마지.. +1
  동화작가가 읽은 책_59 《목판.. +1
  버스타고 밴프 가자 - 레이크 .. +5
  캘거리 초미의 관심사, 존 Zo.. +1
  캘거리 존 Zone 개편 공청회..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