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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와 삼위일체 논쟁의 종결
간략한 기독교 역사_12 글 : 캘거리 성결교회 한호목사 니케아 정통 신학의 수호자인 아타나시우스는 사막의 수도사들로부터 엄격한 규율을 배워 이를 스스로 지켜나가는 엄격함 때문에 친구들뿐만 아니라 적수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았다. 그는 아리우스파에 대항하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두려운 존재 였는데, 그 이유는 치밀한 논리의 전개나 정치적 술수 때문이 아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다른 감독들이탐닉했던 사치에 빠지는 일 없이 자기의 신앙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신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사건이다. 역사 속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가 아타나시우스의 신앙의 초점이었다. '아리우스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온 존재는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이보다 낮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이런 주장에 대하여 철저하게 반대하였다.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에 382년에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콘스탄틴은 아리우스에 대한 유배령이철회하였기 때문에 다시 아리우스파의 세력이 회복되게 되었다. 결국, 아리우스파인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의 모략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의 사망 이후로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로 귀환하였다. 하지만, 귀환은 시련의 끝이 아니라, 기나긴 고난과 거듭되는 유배 생활의 시작이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아리우스파들은 한동안 자리를 비웠던 아타나시우스가 합법적인 감독이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무력으로 교회 건물을 탈취하려는 아리우스파의 시도 때문에 알렉산드리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는 더 큰 혼란 상태를 막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서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파의 입장을 대변하여 로마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결국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정당한 감독이며그레고리는 강탈자(强奪者, usurper)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다' 라는 주장은 곧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차이(distinction)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니케아 신경을 반대했다고 아타나시우스는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어떤 사람들은 "동일 본질(호모우시오스, homoousios)"이라는 표현보다는 "유사(類似) 본질(호모이우시오스, homoiousio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성자가 성부와 동일본질"이라고 선언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성자가 성부와 유사 본질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처음에는 "유사 본질"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아리우스파와 마찬가지로 이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보다 원숙해진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를 배격하는 동시에,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을 하기를 원하는 많은 기독교 신자들의 정당한 우려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기 362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소집된 종교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구별을 무시하지 않은 한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가르켜 "동일 본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동시에마치 세 신들을 주장하는 것처럼 이해되지 않는 한 "세 본질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이해의 기반위에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니케아 종교회의를 지지하게 되었고, 결국 381년 콘스탄티노플에 소집된 제2차 세계 종교회의에서 이 교리는 정식으로 인정되었다. 물론, 아타나시우스는 373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에서의 결정된 정통 교리의 마지막 승리를 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저술들을 보면 결국 아리우스주의가 패배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노령에 접어들면서 그와 동일한 신념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신학자들이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들이 "위대한 갑바도기아 사람들(Great Cappadocians)"이라고 불리우는데, 다음시간에 이들에 대하여 알아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4/1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5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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