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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과 어거스틴_간략한 기독교 역사 14
1. 제롬(Jerome)
제롬은 4세기의 인물 가운데 독특한 존재이다. 신학적인 통찰이나 뛰어난 인격을 보여 주지 못하고, 오히려 다툼의 사람이었다.
348년에 태어난 그는 고전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애착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성경을 당시에 그리스어를 대신하여 가장 중요한 언어로 자리잡은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다른 번역판이 있었지만, 이것들은 히브리 원어의 헬라어 번역판인 70인역(이스라엘의 멸망 후에 그리스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B.C. 100년 경에 각 지파별로 6명씩 모두 72명이 히브리 원어를 헬라어로 번역하였다)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롬은 히브리어로부터의 직접적인 번역에 착수하였다. 흔히 벌게이트(Vulgate)라고 알려진 제롬의 번역판은
결국 전체 라틴어 사용 교회에서 표준 성경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2. 힙포의 어거스틴(Augustine)
개신교(Protestants)와 로마 카톨릭을 막론하고 전체 서방 교회(Western Church)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신학자가 어거스틴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서 먼저 그의 생애에 관하여, 그리고 다음에는 그의 신학 사상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에서 서기 354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 제국의 하급관리로서 전통적인 이교도였다.
그러나 열성적인 기독교인인 어머니 모니카(Monica)의 끊임없는 기도가 열매를 맺어 결국 어거스틴은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어거스틴의 부모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최고의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17세가 되던 해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의 중심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비록 공부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지만 도시가 제공하는 각종 쾌락을 추구하였다. 그는 첩을 통해 아들을 얻고 그를 '아데오다투스(Adeodatus)', 즉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어거스틴은 고급 관리가 되기 위해서 웅변학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당시 웅변술을 공부하던 학생들은 수많은 고전 작품들을 읽어야 했는데, 이 가운데는 고대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인 키케로(Cicero)의 작품이 들어 있었다. 키케로는 언어의 구사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키케로를 읽던 중에 뛰어난 언변과 문체만으로는 미흡하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즉 그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진리의 추구를 위해 어거스틴은 마니교(Manicheism)을 찾았다. 페르시아의 마니에 의해서 만들어진 마니교는 어거스틴 당시에 지중해 연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 마니교의 가장 큰 매력은 우선 보기에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마니교는 당시 어거스틴이 기독교에 관해 가지고 있던 두 가지 문제들을 해소시켜 주는 듯했다. 먼저, 수사학적으로 볼 때 성경은 세련되지 못한 문체와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둘째로 악의 근원에 관한 문제였다.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는 마니교는 성경이 실제로는 광명의 영원한 원칙의 말씀이 아니며, 악(惡)도 광명의 원칙의 피조물이 아니라, 오히려 암흑의 원칙의 소산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어거스틴은 마니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의문들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플라톤주의자"가 되었다.
마니교의 이원론과는 달리 신플라톤주의는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의 원칙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치 돌멩이 하나가 잔잔한 수면에 떨어질 때에 많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듯, 모든 존재는 궁극적인 존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궁극적인 존재에 보다 가까운 실체들은 보다 우수하며 멀리 떨어질수록 열등한 것으로, 악이란 것도 사실은 근본적으로 다른 근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단지 궁극적인 존재로부터 멀리 벗어남으로써 생기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한히 선한 유일의 존재가 모든 다른 사물들의 근원이며, 동시에 피조 세계 안에 존재하는 악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었다.
악이란 것은 비록 실재하지만 사물이 아니라 궁극적인 존재의 선(善)으로부터 어긋나버린 하나의 방향에 불과하다. 이런 이론은 악의 근원에 대한 어거스틴의 물음에 답을 제공하는 듯싶었다. 그래서 신플라톤주의는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영혼을 마니교도들로부터 배운 것과는 달리 보다 덜 물질주의적인 용어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조잡한 언어와 폭력의 사건으로 가득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암브로즈"로부터 얻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에게 암브로즈의 설교를 들어보라고 재촉하였다.
웅변술을 공부한 어거스틴은 암브로즈의 설교 내용이 아니라 설교 방법을 관찰하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거스틴은 점차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모습으로 설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암브로즈의 설교를 통해서 어거스틴은 기독교에 관해 가졌던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해소하였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지만, 아직도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였다. 그가 어머니의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수도원주의의 이상과 신플라톤주의적 경향 때문에 육체적 정욕과 욕망, 자신의 직업조차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는 전투가 일어났다.
이 때, 로마의 유명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인 마리우스 빅토리누스(Marius Victorius)가 교회에 출석하여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했다는 소식과, 두명의 고위 관리가 아타나시우스가 저술한 '성 안토니의 생애'를 읽고 세상의 관직과 명예를 버리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이때,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책을 들고 읽어라"라는 소리를 듣고 마침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펴서 읽었을 때, 로마서 10:12-14을 말씀을 발견하고 바울과 같은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회심 후에 그는 새로운 생애를 시작하였다. 아들인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암브로즈에게 세례를 받았고, 교수직도 사임하였다. 남은 생애를 수도사로 살기 위해 북아프리카를 향해 떠났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4/1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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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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