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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보 라 _ 유인형 컬럼 26
잔디밭에 물을 뿌리다 보니 무지개가 피어난다. 바람이 불자 물보라를 뿌려댄다. 영롱한 일곱빛깔의 프리즘을 통과시키다 보니 순간적으로 모래시계를 돌리게 된다. 공중으로 뿌리자 물보라가 상쾌하다.
문득 바닷가의 우엥티 첸양이 스친다. 그때 빈릉 바닷가에 해저음처럼 물보라가 피어났다. 남지나해 전운이 한참이던 무렵이다. 모래톱 바위사이로 장엄한 해저음이 들려오고 물보라 저녁노을이 장미빛처럼 비취었다.

-우리도 어쩜 저 물보라처럼 살아질까요?
-우리?

눈망울이 큰 아오자이 아가씨는 민사심리전의 첩자였다. 그녀는 혼바산기슭의 어부들 속에서 중요 첩보를 물어왔다.
반대로 한국군 동향과 작전형태를 혼바산으로 알려주는 이중첩자일 수도 있다. 혼바산 깊은 정글속에 17B 연대가 준동하고 큰 오빠는 주 보급로에 브비츄랩을 매설하는 월맹군 공병장교였다. 한 가정 속에 적과 아군이 함께 사는 복잡한 싸움터이다.

-우리도 저 물보라처럼 날려 가겠죠?
-또 우리?

한국군이 촉각을 세우는 건 혼바산속의 월맹군 특수 공병에 관한 첩보였다. 최근들어 철도를 끊거나 중요다리를 폭파하는 대담성에 놀랐다. 하지만 사이공 대학에 재학중인 첸양의 관심은 사랑과 평화였다.

-융단폭격을 보신일이 있어요?

바다속에는 해파리가 떠내려 간다. 해저음 앞에 물보라처럼 날려가는 목숨들이다. 마른 번개가 치자 씨애스타가 쏴와 쏟아지고 물새처럼 떨자 꼬옥 안아 주었다.
첸양의 말대로 ‘우리’는 사랑에 눈을 뜨고 있는지 모른다. 중국계와 프랑스계의 혼혈녀에게 점점 빠지고 있었다.

-달아나요. 아주 멀리 도망가요. 모든 속박으로부터. 우리 떠나요!

황홀한 속삭임이었다. 계속 헬기의 건쉽과 포성이 들려오는 방파제에선 전쟁까지도 오색 프리즘 같은 아름다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민사심리전의 눈초리와 첩보부대 두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적군장교의 누이동생에게 포로가 되어가는 걸 지켜보며 혼바산 기슭의 어촌에서 물어오는 첩보에만 신경을 썼다. 전쟁도 밑지는 장사는 안한다. 이용가치에 따라 활용한다. 낚시밥의 미끼처럼 ‘우리의 사랑’은 이용당했다. 몇 달 후에 혼바산 17B 연대의 소탕작전이 천둥번개처럼 치러졌다.

-달아나요. 멀리..아주 멀리.. ‘우리’ 떠나요!

첸양의 떨리는 음성과 눈물을 볼 것은 깍러이 방파제에서 마지막이 되었다. 그때도 물보라는 휘뿌렸다.

-사랑했구나. 탈출구를 찾으려던 작은 물새처럼!

잔디밭의 고무호수를 머리위로 뿌리며 헛된 꿈에서 깬다. 깨고나면 실체를 알 수 없는 허망스런 젊은날의 꿈이 된다. 우엥티 첸양은 물보라치는 해안선 그 어디에서 사라져야 했을 것이다. 이용가치가 없어진 첩자는 소모품이 되니까.

-물보라!

망연자실한 채 물보라에 젖는다. 해저음이 아스라히 들려온다.
-달아나요. 아주 멀리!

바람은 볼 수가 없다. 사랑도 볼 수가 없다. 인생이란 언제나 물보라 같은 것이고 미완성의 아름다움이다. 기억의 회로를 따라 아른아른해진 한숨을 토해낸다. 젊은날의 쓸쓸한 시(詩)가 되어…


지난해 9월 17일 이후로 잠시 휴식을 가졌던 유인형님(에드몬톤 거주)께서 본지에 다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본지에 보내주시는 유인형님께 독자를 대신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6/2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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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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