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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의 불길_간략한 기독교 역사 28
마르틴 루터 (1)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해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처럼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 인물은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리켜 교회의 통일을 파괴한 반란자요, 주님의 포도원을 짓밟은 산돼지요, 수도원주의의 기초를 파괴한 반항심에 가득 찬 수도사로 묘사하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순수한 복음의 전파를 다시 가능하게 한 위대한 영웅이며, 성경적 진리의 수호자요, 부패했던 교회의 개혁가로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 그에 관하여 점차 상호 이해가 증가하고 있다. 루터에 관한 연구가 보다 진지하게 실행된 결과, 프로테스탄트들 뿐만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도 이제까지 역사 연구가 아닌 논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오해를 바로잡게 되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일단 하나님이 그에게 어떤 특정한 행동을원하신다고 확신하기만 하면 그 결말을 보기까지 복종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일단 쟁기를 손에 잡으면 뒤돌아보는 인물이아니었다. 일단 자기의 주장이 진리라고 확신하면 그 시대의 가장 강력한 세력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신념의 깊이, 진리를 위한 열광적 투쟁, 그리고 분명한 표현을 위한 과정에는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나중에 후회할 소지도 있었다. 반면 루터가 남긴 영향의 대부분은 그가 창조하지도 않았고 혹은 억제할 수도 없었던 상황에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인쇄술의발명으로 그의 저술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루터야 말로 인쇄술을 선전과 홍보의 수단으로가장 처음 본격적으로 사용했던 인물이었으며, 인쇄술의 활자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였다. 루터의 생애와 사역을 연구해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즉 그토록 필요하였던 종교 개혁은 루터 개인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때가 찼으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루터와 아울러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인물들이 기꺼이 자기들이 역사적 책임을 완수하고자 했으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루터의 생애(1) - 수도원 생활 루터는 1483년 독일의 아이슬레벤(Eislebe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한스는 원래 빈농 출신으로 광부로 전업하였으며, 후에는 광주(鑛主)까지 되었다. 루터의 소년 시절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들은 매우 엄격했으며, 그는 장성한 후에도 그가 받았던 혹독한 처벌에 관해 언급하곤 하였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우울증과 신경 불안증에 시달리곤 하였는데, 일부 학자들은 그 이유를 그의 소년 시절에서 찾고 있다. 어쨌든, 소년 시절의 경험들은 그의 성격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루터의 아버지는 루터가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였으며, 이를 위한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루터는 법률가가 되고 싶은마음이 없었다. 1505년 7월, 루터는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어거스틴파 수도원에 들어갔다. 루터는 2주전에 번개와 폭풍 속에서 죽음과 지옥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는데, 그는 바로 그 때 수도사가 되겠다고 성 안나(St. Anne)에게 맹세한 바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루터를 수도원으로 이끌어간 것은 '자신의 구원에 관한 관심' 때문이었다. 구원과 저주의 주제는 그가 살고 있었던 상황 속에 깊이 젖어 들어 있었다. 당시에 많은 신자들은 이승에서의 생활은 단지 내세를 위한 준비와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내세를 위한 준비를 제쳐두고 이승에서 법률가가 되어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게 생각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루터는 당시 교회의 성실한 아들로 교회가 제시하였던 구원의 방법들을 최대한 활용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수도원에 들어선 것이었다. 교회가 제시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물론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수도사의 생활이었다. 수도사 수련 기간 동안 루터는 자기가 지혜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하였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마음 속의 행복과 하나님과의 평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상급자들도 그의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곧 알아보고 루터야말로 사제가 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루터는 후에 그가 처음으로 집전한 미사에서 느꼈던 경험을 기록하였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리스도의 몸 자체를 받들고 있으며 이를 바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감은 그 정도와 빈도를 더해갔다. 왜냐하면 자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지 못한 존재라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구원받기에 충분한 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마치 그가 소년 시절에 경험한 교사와 아버지처럼 가혹한 재판관으로 생각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최우의 심판 때에 그가 한 일을 판단하여 부족함을 발견하실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인간은 교회가 제시한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들은 루터처럼 종교심이 깊고 진지하고 열정적인 인물에게는 충분치 못하였다.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선생과 고행이야말로 젊은 수도사 루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기에 충분해야만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루터는 항상 자기 자신의 죄악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그가 이를 극복하고자 하면 할수록 오히려 죄의식은 더욱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8/5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5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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