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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종교개혁_1 (간략한 기독교 역사)
글 : 캘거리 성결교회 한호 목사 17세기 초까지도 대영제국은 잉글랜드의 튜더(Tudor)가와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Stuart)가로 분리되어 있었다. 양가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결국 두 왕국은 연합하게 된다. 그러나 16세기까지만 해도 양측의 관계는 적의와 전쟁으로 얼룩져 있었으니 종교개혁 역시 양국에서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먼저 영국의 종교 개혁을 살펴본 후 스코틀랜드의 개혁을 알아보자. 헨리8세 16세기초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 동맹 관계에 있었으며, 잉글랜드는 스페인과 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7세는 스페인과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자기의 태자인 아더(Arthur)를 스페인의 페르디난드(Ferdinand)와 이사벨라(Isabella) 사이에 태어난 딸 가운데 하나였던 아라곤의 캐더린(Catherine)과 혼인시켰다. 그런데 아더는 결혼 4개월만에 사망하였다. 이때 스페인은 이 젊은 과부와 아더의 동생, 즉 이제 왕의 계승자가 된 헨리와 다시 결혼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스페인과의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온 지참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잉글랜드의 국왕은 이러한 혼인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교회법은 형수와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로마에 파견되어 있던 영국 대사는 특별한 교황의 사면령을 얻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헨리는 철이 들자마자 캐더린과 결혼하였다. 그들의 결혼 생활을 행복하지 못하였다. 많은 이들은 과연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유보시킬 만한 권한이 교황에게 있는지를 계속 의심하였다. 따라서 결혼의 합법성 자체가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헨리와 캐더린 사이에 남자 아이 소생이 없었던 사실 역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라 해석되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소생은 공주 메리 튜더(Mary Tudor) 뿐이었다. 당시 잉글랜드는 처참한 왕위 계승 전쟁을 막 경험한 뒤였으므로 왕에게 왕자가 절실히 필요하였다. 그러나 결혼 생활 수년 만에 헨리와 캐더린 사이엔 더 이상 소생이 없을 것이 확실하게 되었다. 헨리는 로마에 청원하여 자기와 캐더린 사이의 결혼을 취소, 즉 무효화 해 달라고 하였다. 그 후에 다른 여성과 자유스럽게 결혼하여 필요한 왕위 계승자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헨리가 처음에 결혼 무효 요청을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아직 앤 볼린(Anne Boleyn)과 사랑에 빠지기 전이었으므로,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연애 감정 때문이 아니라 국가를 걱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실 교황의 사면령에도 불구하고 헨리와 그의 형수 사이의 결혼은 이미 불법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진정한 결혼 관계가 성립하지 못했다고 주장되었다. 그러나 교회법과 전혀 무관한 다른 요소들이 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캐더린이 찰스 5세의 숙모였다는 사실이다. 찰스 5세는 당시 교황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있었던 때이었으며, 캐더린은 조카에게 결혼이 무효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교황 클레멘트 7세는 찰스 5세를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결정을 차일피일 지연시켰고, 교황의 대표들은 헨리에게 첫째 아내를 버리는 대신 비밀리에 두 번째 아내를 택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왕의 입장으로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을 왕위 계승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헨리 8세는 마침내 로마와의 결별을 불러올 정책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로마에의 항소를 제한하였던 옛 법령들을 부활시킴으로써 성직자들을 보다 직접적인 국왕의 권위 아래 두었다. 그는 또한 로마로 흘러 들어가던 각종 자금들을 봉쇄해 버릴 것도 고려하였다. 그러나 그가 교황청과 충돌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 그가 프로테스탄트주의에 동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그는 몇 년 전에는 루터에 대항하는 논문들을 출판함으로써 레오 10세로부터 찬양을 받았고, 교황은 그에게 "신앙의 수호자"라는 칭호까지 수여하였다. 헨리는 당시 대륙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지나친 교황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는 국왕의 권리를 강화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루터의 사상이 그전부터 영국 내에 남아 있었던 위클리프 사상과 연합하게 되었고, 이를 좇는 이들은 자기들의 통치자와 교황청의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밖에 없었다. 위클리프는 원래 세속 통치자의 감독을 받는 국교의 설립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헨리의 정책은 바로 이러한 방향을 좇고 있었다. 특히 토마스 크렌머 같은 인물은 왕실의 주도 아래거행되는 교회의 개혁을 소망하고 있었다. 로마와의 최종적인 결렬은 1534년에 발생하였다. 의회는 국왕의 명령에 따라 로마 교황청으로 흘러가던 각종 헌금들을 봉쇄시켰으며, 헨리와 캐더린의 결혼은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따라 메리(Mary Tudor)는 정당한 왕위 계승자로서의 위치를 박탈당했으며, 의회는 또한 국왕을 "영국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지명하였다. 이 마지막 결정을 보다 확고하게 하기 위해 의회는, 또한 누구든 국왕을 가리켜 분파주의자, 혹은 이단이라 하는 자는 반역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그때까지 발생한 사건들은 단지 교회의 분열에 불과하였다. 종교의 개혁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으며, 분열 자체를 정당화하고자 하는이상의 이론적 배경도 조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잉글랜드 내에는 보다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인사들이 많이 있었으며, 이들은 당시 성황의 전개야말로 이를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태도를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인물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개혁을 희망했기 때문에 왕의 정책을 지원하였다. 토마스 크렌머(Thomas Cranmer)였다. 헨리 8세는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보수적 인물이었다. 물론 그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 인물이지만, 대부분의 전통적 교리에 관해서는 그대로 신봉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종교 문제에 관한 법률들은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함께 변화하였다. 따라서 헨리는 교회의 수장(首長)이 되자마자 캐더린과의 결혼을 무효라고 선언하고 이미 비밀리에 결혼하였던 앤 볼린과의 혼사를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앤 볼린에게서도 왕자는 태어나지 못했으며 단지 딸 엘리자벳 하나만을 얻었을 뿐이다. 결국 앤 역시 간음의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게 된다. 그후 왕은 다시 제인 세이모(Jane Seymour)에게 장가들어 마침내 아들을 얻게 되었다. 헨리의 재위 기간 전체를 통하여 어떤 때는 왕이 원했던 것처럼, 어떤 때는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종교개혁의 사상이 국가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크렌머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도록 명령하고, 왕의 이름 아래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각 교회마다 커다란 영어 성경책을 비치하도록 하였다. 이는 종교 개혁 지지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유리한 조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하여 자기들의 교리와 뜻하는 목표를 보다 강하게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도원의 폐쇄로 말미암아 보수파의 중추부가 그 힘을 잃게 되었다. 또한 그 숫자와 세력에 있어서 막강하였던 인문주의자들은 왕실의 정책 속에서 그들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였던 독일 프로테스탄트들의 실수라고 여겼던 일들 답습하지 않고서 종교 개혁의 기회를 발견하였다. 그 결과 헨리가 사망했을 때 종교 개혁 지도자들은 왕국 전체로부터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10/1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5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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