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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그 전혀 다른 나라 _6
거대한 빌딩 숲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대개 부루클린 다리나 뉴저지 쪽에서 앵글을 잡은 것이다. 다시 맨하튼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 시. 뉴욕의 늦가을 날씨 치고는 청명하고 따뜻했다. 플러싱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뉴욕에서 가장 큰 한인타운이 있는 곳이었다. 가서 점심이나 먹고 올 요량으로 업타운행 지하철을 탔다. 타임스퀘어에서 다시 플러싱으로 가는 7호선으로 갈아탔다. 이스트 강을 건너 퀸스에 들어서자마자 7호선은 지하에서 나와 지상을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에 펼쳐지는 퀸스의 모습은 오래된 대도시답게 복잡하고 황량했다. 샌프란시스코나 밴쿠버 같은 서부도시들이 풍기는 산뜻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7, 80년대 서울의 모습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정오쯤 플러싱에 도착했다. 역을 나오자 뜻밖에도 거대한 중국인 거리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플러싱이 있는 퀸스의 인구는 대략 2백50만 명 정도. 그 중 중국, 인도, 필리핀 계 등 아시아계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를 말해 주듯 중심지인 플러싱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아시아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만히 보니 이곳은 중국인 거리라기 보다는 마치 상하이 와 뭄바이 와 호치민 의 촐롱거리를 뒤섞어 놓은듯한 잡탕거리인 것 같았다. 인도식당도 보였다. 직장동료 중에 인도 펀잡주의 수도 찬디가르에서 회계사를 하던 친구가 있는데 언젠가 그에게서 얻어먹은 인도음식이 생각났다. 로티 (힌디어로는 차파티라고 한다)라는 만두피를 닮은 밀가루 떡 위에 카레로 양념을 한 감자와 갖은 야채를 얹어 먹는 것인데 생각보다 맛이 썩 훌륭했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식사대접은 일종의 화해 턱 이었는데, 그것은 그 얼마 전 인도의 역사-정치 문제에 대한 대화 중 그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힌두교도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인도의 사회 경제적 지배구조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 자화할랄 네루 조차도 그에게는 젋었을 때 약간 진보적인 체 했던 브라만 출신 귀공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수상 재임 당시 시크교도들의 성지 골든탬플을 유린하고 교도들을 학살한 사건은 20년이 넘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비극으로 그에게 남아 있는 듯 했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갔지만, 어쨌든 플러싱의 한 인도식당에서 로티 와 차로 식사를 마친 뒤 한인타운을 찾아 나섰다. 한인타운은 플러싱역 종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 초반의 서울 변두리의 한 동네에 도착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90년대 이후 투자이민, 독립이민을 온 이른바 이민 신세대가 태반을 차지하는 서부 캐나다의 한인들과는 풍기는 이미지부터가 판이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뒷짐을 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거리를 걸어가는 남자들, 퉁명스러운 가게 아줌마, 무슨 유니폼처럼 들고 다니는 버버리 핸드백. 한마디로 순진무구한 시골스러음이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듯한 동네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유니온 가에 있는 한 한국식 중국식당에서 잊을 수 없는 맛의 자장면을 먹었다. 아무래도 로티 두 개로는 양이 차지 않은 것 같아 간단하게 요기를 할 양으로 근처 중국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단무지 와 양파를 먼저 가져다 놓고 1 분도 안돼 자장면이 날라져 왔다. 손님에게는 한국말로 자기들끼리는 중국말로 이야기를 하는 걸로 보아 한국에서 이민 온 화교인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즐겨 먹었던 종로경찰서 부근 중국집의 자장면 맛을 이직도 기억하고 있다. 안국동에 살면서 안동유치원 재동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꼬마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그 때는 내가 자장면을 아주 좋아했는지 거의 매주 토요일 오후 마다 이 집에서 시켜먹었다. 어린 입맛에 길들여진 이 집 자장면 맛은 이 후에도 ‘명품 자장면’의 기준으로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40년 가까이 지난 이 날 뉴욕의 한 귀퉁이에서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는 명품 자장면의 옛 맛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왜 내가 이 식당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오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플러싱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7호선을 타고 다시 맨하튼으로 들어갔다.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내려 업타운 행 지하철로 갈아탄 뒤 다시 86 번가에서 내려 센츠럴파크 쪽으로 걸어갔다. 거리는 여전히 붐비고 있었다. 행인들 중 아프리카 계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남쪽보다 높아진 것 같았다. 이마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닥터 마틴 루터 킹 블리바드 라 이름 지어진 125 번가와 그 북쪽 구역은 거의 완전한 그들만의 구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하게 될 업타운 행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만 하는 필수 코스가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우선 월요일이라 개관하지는 않지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겉모습 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박물관은 건물 외장공사를 하느라고 거대한 거적떼기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 지역의 예술작품 3천여 만점을 소장하고 있는 이 장엄하리만치 규모가 어마 어마한 박물관은 대충 둘러 보는 데만 1 주일이 걸린다는 곳이다. 센트럴파크를 끼고 내려 오는 길은 다름아닌 5th Avenue였다. 오후 3 시. 5th Avenue의 그 넓은 대로가 모두 일방통행인데도 차량이 밀리고 있었다. 여기서 1 번부터 4 번까지 아무 버스나 타도 다운타운까지 내려갈 수 있었지만 이런 속도라면 유니온 스퀘어를 거쳐 그리니치 빌리지 까지 내려가는데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시간이 러시아워에 가까워질수록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교통체증은 더 심해질 것이었다. 맨하튼 지역은 어디를 가든 사람과 자동차가 들끓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시내를 관통하면서 거리 구경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번만은 지하철을 타지 않기로 했다. (다음 호에 마지막편 계속)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13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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