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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의 정통_간략한 기독교 역사 46
17세기에 개혁주의는 나중에 정통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신학을 정립하는 시기였다. 특히 이것은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을 2개의 종교회의인 '도르트 종교회의'와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알미니우스주의"의 등장 "야코부스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는 네덜란드의 뛰어난 목회자이자 교수로서 칼빈주의에 입각한 신학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후계자인 '테오도레 베자'(Theodore Beza)에게서도 교육을 받았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 암스테르담의 강단에서 행한 설교를 통해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이러한 그의 명성과 성경과 신학에 관한 그의 조예 때문에 당시의 암스테르담의 교회 지도자들은 그에게 "드릭크 쿠른헤르트"(Drick Koornhert)의 이론을 반박해주도록 부탁했다. 쿠른헤르트는 칼빈이 주장한 신조들 가운데 일부, 특히 예정론을 부인한 자였다. 알미니우스는 쿠른헤르트를 반박하기 위해 그의 저술들을 성경, 초대 기독교 신학, 그리고 몇몇 중요한 개혁가들의 가르침들과 비교했다. 결국 알미니우스는 상당한 양심의 갈등 끝에 쿠른헤르트의 주장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1603년에 라이덴 대학의 교수가 된 알미니우스는 엄격하게 예정론을 굳게 믿고 있는 그의 동료인 프란시스 고마루스와 충돌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원래 자기 자신을 칼빈의 충실한 추종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야코브스 알미니우스는 칼빈주의와 정반대 입장이 되었고, 그의 사상은 그의 이름을 따라 알미니안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다. 원래 고마루스와 알미니우스 사이의 논쟁의 초점은 '과연 예정(豫定, predestination)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아니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양자가 동의했다. 왜냐하면 이것에 관한 성경의 언급을 충분히 찾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정의 근거"에 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알미니우스에 의하면, 예정은 과연 누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가를 미리 알고 계신 하나님의 예지(豫知, foreknowledge)에 근거한다고 했다. 반면에 고마루스는 신앙 자체가 예정(豫定, predestination)의 결과이기 때문에, 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이전부터 누가 신앙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자체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알미니우스는 "예정"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중보자이자 구세주로서 결정한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정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도 인간의 반응에 의존하지 않는 주권적 명령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궁극적 운명에 관련된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아니라, 그의 '신적(神的) 예지(豫知)'에 기초한다고 했다. 신적 예지란 물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속의 기초에 대해 각 개인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미리 알았다는 의미이다. 그 밖의 모든 면에 있어서 알미니우스는 엄격한 칼빈주의자로서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그의 교회론과 성례론은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알미니우스는 1609년에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계속되었다. 라이덴에서 그의 교수직을 계승한 인물이 계속 그의 이론을 주장하여 고마루스와의 논쟁을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신학적 문제에 곧 정치적, 경제적인 원인들까지 첨가되었다. 비록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투쟁이 오래 되기는 하였지만 독립이 아직 보장된 것은 아니었으나, 네덜란드 내부에서는 스페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일부 도시에서 실권을 잡고 있었던 상인들로서 스페인과의 교역을 개선하여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직자 대부분은 이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그 이유는 스페인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네덜란드 교회의 교리적 순수성이 오염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스페인과의 교역을 통해 아무런 유익을 기대할 수 없었던 하층 계급도 상인들에 대하여 반대하였다. 그래서 상인들은 알미니우스 편을, 다른 계층들은 고마루스를 지지했다. 1610년 알미니우스파는 "항의서"(Remonstrance)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이들은 흔히 "항의자들"(Remonstrants)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성명서에는 당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문제들에 관한 5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1조항은 예정론을 모호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기초를 놓으시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알미니우스가 주장했던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믿을지 아셨으며 특별한 사람들을 예정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항의문'에는 예정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의 이유에 관한 불필요한 추론을 부정하는 모호함이 있었다. 그래서 양측은 오랫동안 서로 논쟁하게 되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13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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