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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소월 김 정식 _ 이유식 컬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 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 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상기 소월의 시는 초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읽었으리라. 실로 오랫만에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니 그것은 지난 6월 문협 정기 모임에서 죽천 안 세현 문우가 지그시 눈을 감고 옛날을 회상하며 읊은 작품이다, 이날 문협 정기 모임은 부부 동반이었고 부부가 돌아가면서 노래를 했었는데 안 세현 문우는 노래 대신 소월의 초혼을 암송 했던 것 이다. 그날 이후 나는 소월이 32살에 요절을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은 작품을 우리 문단에 남겼을까 하는 비통한 마음속에 이 작품을 다시 뇌이고 뇌여 보곤 했다. 상기에 내가 기록한 것은 지면상 초혼의 5연에 이르는 전문의 작품을 3연만 기록 했는데 이 작품은 비탄을 노래한 걸작으로 소월시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원한과 비애와 그리움이 몸서리 치도록 독자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작품이란 생각을 했다. 소월의 짧은 생애를 더듬어 보면, 소월은 1902년 8월 6일 평북 정주군 곽산면 남산동에서 금광업을 하는 조부 김 성조에 의 하여 7살때까지 한학을 공부, 명심보감, 소학사서를 수학하는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성장 했는데, 그의 아버지 김 성도는 요즈음으로 말하면, 지랄병이란 병에 걸려 매일 술을 안 마시면 잠시도 못 견디는 입장이 여서 그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손(孫)이 귀한 가계이기에 그의 조부는 아들 김 성도가 병환으로 고생하고 있어 손자인 소월 에게 가문의 온갖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때 풍습으로 장손에게 붙여 주는 "갓놈"으로 유년기의 이름이 불러 졌는데 갓놈이란 뜻은 건강히 훌륭하게 성장, 가계를 융성케 하라는 애칭이라 했다. 소월이 이렇듯 한학에 정진하고 있을 때 같은 동래의 먼 친척 안서 김 억이 소월의 주부 김 상 조에게 오산 중학이 설립되었으니, 신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건의케 되고 이에 동의를 얻은 소월은 오산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6학년 졸업을 못 하고 일제의 압박에 의하여 오산 중학은 폐교가 된다. 소월은 4학년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게 되며 그때 오산 학교 교장은 민족 독립의 선구자 조 만식 선생님이셨다. 소월이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조 만식 선생님이여서 소월의 시에 J M S란 약칭이 많이 나왔다. 오산학교 재학중 전교에서 일등을 한 소월은 교장 선생님인 조 만식으로 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다. 그때가 1920년 9월로 1919년 3.1독립운동으로 일제는 민족 말살을 위하여 한층 강도 높은 발악을 하게 된다. 이에 소월은 조국을 잃은 서러움으로 진달래, 못잊어, 님의 노래 등은 유적 풍자로 나라 잃은 서러움을 시로 토해 낸다. 소월이 오산 중학을 다닐 때, 조부 김 성조는 가계를 이을 손을 얻고자 중매 결혼을 시키게 되는 데 내 생각으로 이 결혼이 소월의 인생행로를 바꾸어 놓게 되었다고 본다. 조부의 명에 의하여 결혼을 하게 된 소월은 부부간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같은 마을의 부자집의 딸 원옥이 소월에 대한 구애가 애절 하지만 조부의 뜻에 따른 소월은 불행한 나날로 결혼 생활을 영위케 된다. 이때 오산 중학의 그의 스승 안서 김 억이 다시 그의 조부에게 앙청 배재 중학 5학년에 편입게 된 소월은 졸업 후 시를 더이상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경대학 상과에 입학한다. 그의 조부는 상과를 졸업해 기울어진 가문을 다시 이르켜 세우라고 온갓 기대 속에 소월의 뒷바라지를 한다. 그러나, 소월은 상과를 공부하면서도 시 쓰는 것은 잊지 않았고 그때 원옥이 소월 앞에 나타난다. 원옥은 신의주 여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서 피아노 전공을 하는 학생이였고 이때 두 사람의 재회는 사랑의 꽃을 피게 한다. 그때 발표한 작품이 애모, 자나 깨나, 여자의 냄새 등이 였다. 그때 조부의 금광은 일본인 손에 빼앗기게 되고 학자금 마련이 어려운 소월은 학교를 중퇴를 하고 조국으로 돌아 온다. 소월이 대학을 그만두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원옥과의 불륜에 대한 양심적 가책이 원옥과 절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소월은 원옥에게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한 사 람이란 고백을 하며 초혼, 먼 후일 등의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동경에서 50여편의 작품은 나도향에 의 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는데 안서 기 억의 소개로 만나게 된 나도향은 그 당시 최고의 인기 소설가로 동아일보에 환희, 여의사, 물레방아 등 연재 소설을 발표하고 있었다. 이 두사람은 만난 그 날부터 절친한 친구가 되고 소월의 아버지가 죽게 되자 잠시 머물던 경성의 생활도 정리하고 귀향하게 되는데 이때 교류하던 춘원 이광수, 나도향 등과도 끝장을 보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소월은 나도향의 도움으로 구성 동아일보 지국을 경영하게 되나 그때 동아일보가 총 5천부를 발간했으니 소월의 구성 지국이 잘 운영될수 없음은 당연했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나라 잃은 서러움, 강직한 선비 정신의 성격, 타협을 모르며 창작에 열중하던 소월은 1934년 12월 24일 32살의 일기로 비상을 먹고 한 많은 그의 생을 마감 하게 된다. 소월이 유년기에 그의 숙모 계시영 여사는 6.25때 남하 소월 선집 접동새를 출판하게 되는데 소월을 조국의 최대 시인으로 만든 분 중에 빼 놓을수 없는 분이였슴을 밝히면서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소월의 진달래나 초혼을 읽고 감격하면서도 소월의 일대기를 좀더 깊이 있게 알고 읽으면 소월 시에 대한 즐감도가 더 높으리라는 생각에서 였다. 여기에 소월이 원옥을 그리며 이루지 못할 사랑에 몸 부림 쳤다면 나 민초의 시 "너를 보내고"는 어떤 작품일까를 생각하며 여기에 한수 발표코자 한다. 물론 시대 상황이나 사랑의 순수성, 깊이 등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랑의 정념을 노래함은 같지 않을까. 꽃 잎으로 떨어지는 너를 보면서 사막의 오아시스 그늘에서 너를 만나고 싶었다 숨죽인 바람 소리 너의 화사한 모습 달빛에 뿌리고 미로의 뒤안길을 걷고 싶었다 빗물도 망초꽃 아지랑이성 파도를 안고 허접스리 살아 왔던 마른 풀잎들 사랑의 신음을 어찌 알까 너를 보낸 아슴한 길 위에 내 눈물 이 잠 드누나 ( 배부처 모국 국제 문예 캐나다 중앙 일보)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8/4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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