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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에서 부치는 편지 _ 김대식 기자
나무가 나무를 부릅니다. 나무 두 그루가 나무를 부릅니다. 나무는 셋이서 숲(森)을 이룹니다. 노르웨이에는 우는 숲이 있습니다. 지금쯤 그 숲에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주겠지요. 나뭇가지들은 더 이상 말 없이 윙윙대고 있을 것입니다. 숲으로 가는 길에서 안개를 맞았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을 찾아 내기 위해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손가락이 시려 옵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셋씩 몰려 다닙니다. 사랑하고 상처 받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맨 정신으로 살아내기 힘겨워 보이는 세상을 들여다 봅니다.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인 ‘나’ 는 늘 꼭지점이 되어 방황 합니다. 그것은 인식일 수도 있고 본능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한 현실은 세뇌되지 않아 속이 들여다 보이는 순진한 사람들을 견디기 힘들게 합니다.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에 남아 능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경계를 넘나 들며 부질없음에 자아를 잃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남아서 진실된 제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은 이상한 모습으로 세상 모퉁이에 끼워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대처럼 사랑하고 섹스 하고 또 헤어집니다. 또 자주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거기에 노르웨이의 숲이 있습니다. 하루키는 그 숲에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를 들었습니다.
숲은 세상으로부터 멀지 않습니다. 울창하게 나무로 구획된 섬처럼 떠 있습니다. 상처 받은 영혼들은 위로 받기 위해 숲을 찾고, 그렇게 숲 속 뻐꾸기 둥지에서는 그들만의 세상을 이야기 합니다. 숲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가 정신과 의사가 되기도 합니다. 숲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나무들은 소리 나는 대로 말하고 들리는 대로 받아 적습니다. 숲 밖에서는 여전히 미치광이를 감별해 내고 축출 합니다. 어느 쪽이 미친 세상인지요, 새들은 자유로이 공간 이동을 합니다. 어디나 세상 입니다.

그들의 시린 사랑은 언젠가 아주 오래 전 그대가 두고 온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축은 크게 두 푸른 나래를 달고 있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유일한 친구, 그 친구의 급작스런 자살로 혼돈에 빠진 친구의 애인 나오코와의 못 이룬 사랑, 헤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나오코와 또 세상에 남아 제 목소리로 자신에게 충실한 미도리와의 사랑, 색종이로 접은 두 개의 삼각형 날개를 달고 새처럼 숲 속을 날아 다닙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친절한 섹스를 합니다. 빨간 마후라처럼 또 가을동화처럼 그렇게 합니다. 아름답게 꾸미려 모닥불을 피우지도 않고 음악을 틀어 놓지도 않습니다. 신음소리를 감출 일은 없습니다.
연애소설이라 치부해도 괜찮습니다. 시대배경이 된 60년대, 히피정신은 사라지고 히피들만 남았던 것처럼 세상 한 켠에서는 섹스만을 얘기할는지도 모르겠군요. 시간을 아끼고 싶다면 첫 신이 시작 되는 62, 74쪽부터 읽어도 무관하다고 일러 주십시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의 정치 사회적 회의와 시대적 실존에 대한 허무, 숲 속에서 따로 또 같이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마다 방패연처럼 널려 있던 상실감, 이를 치유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 후로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스스로 신경 한 줄기를 마비시킨 사람들은 또 외로운 빌딩을 지어 올리고 있습니다.
숲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도심에는 누군가 뿌린 전단지가 구호처럼 먼지처럼 날리고 있습니다. 또 많은 나비들이 포르말린 처리되고 등 한 가운데 압핀을 꽂은 채 죽을 때까지 침묵 합니다.

추운 북구의 나라 노르웨이에 관한 소식이 광석 라디오에서 들리는 파열음 마냥 낯설기만 합니다. 이 숲을 마저 벗어나기 전에 그대를 위해 낭독합니다. 앨버타가 노르웨이를 닮아야 한다는 솔깃한 이야기 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일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래기금을 비축한 노르웨이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 입니다.
또 노르웨이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평가도 보입니다. 복지국가로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점차 퇴색하고 있다는 불평이 들리지 않는다 해도 역시 덧없어 보입니다. 제 재주로는 한 장 그림엽서 안에 담을 수 있는 정경들은 아닌 듯 합니다.지금은 멀리 숲에 있기 때문 입니다.

며칠째 어둔 구름에 덮이며 도시전체가 하얀 눈꽃을 피웠습니다. 지금 캘거리에도 나무가 나무를 불러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겨울 나무들이 하나 둘씩 모여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대가 이 편지를 읽는 다음 날이 될 18일, 캘거리 동물원 한 켠에서는 자살자 유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떠난 뒤에 황량하게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 준비 됩니다. 회비는 없습니다. 생과 사가 서로 간섭하는 숲이 환하게 일어납니다.
캘거리 하늘 위로 길 잃은 반딧불 들이 철 없이 날아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얼어붙기 시작한 강물 위로 나무가 나무를 부르는 소리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숲에서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옷을 걸치고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순수한 삶과 죽음 만이 어색하지 않게 만납니다. 그저 반갑게 숲이 되면 될 것입니다.
캘거리 보우강변 한 귀퉁이가 숲이 되고 이어도가 되고, 율도국이 되고, 이윤택이 가던 제네바가, 또 황석영이 걷던 삼포 가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이 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이승의 것이 아니라 해도 섬 같은 숲, 숲 같은 섬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나무가 되고 뗏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람이 되고 물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이 되어 주십시오. 행여 그대가 외로움에 지쳐 어질어질 멀미를 앓더라도 미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 그대 곁에서 “괜찮아요, 저도 가끔 그런 기분을 느끼니까요” 하고 화들짝 웃으며 말해 줄 수 있길 바랍니다. 아무리 스치듯 건성으로 한 말일지라도 그대는 그 말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아련하고 소박한 존 레넌의 에메랄드 빛 노래가 되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내게 그녀의 방을 구경시켜 줬어, 멋지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그녀는 내게 머물다 가길 원했고 어디 좀 앉으라고 했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의자 하나 없었어.…눈을 떴을 때 난 혼자였어. 새는 날아가 버린 거야”,
소설의 모티브라는 이 노래를 하루키도 수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세상은 담대(膽大) 하고 감성은 심소(心小) 합니다. 저도 이제 그만 빛나는 숲을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숲에는 별도의 출입구가 없습니다. 다만 그대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먼저 내 보냅니다. 마지막이 될지라도 기다림으로 너무 많이 아파하지는 마십시오. 날이 춥습니다. 그나 저나, 대체 우리는 지금 어디 있는 건지요?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1/17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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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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