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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정녕 악령의 후예들일까? _마이클의 음악산책
게 살았던 50,60년대, 가진 건 몸 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운동이었다. 그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체육관에서 샌드백을 두드렸다. 그런 헝그리정신으로 우리나라는 한때 프로권투 세계 챔피언이 4명이나 있었다. 헝그리 정신은 프로권투에만 있는 건 아니다. 문학, 음악, 미술 등 창작의 세계, 예술의 세계에도 헝그리정신은 존재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부자로 태어나 안락하게 살았으면 화가로 대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과 고독이 그의 창작열, 예술혼을 불태웠고 비록 살았을 때는 인정을 못 받았지만 죽은 후에나마 세계적인 화가 가 되었다. 춥고 배고픈 건 비참한 일이지만 창작에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공업도시 버밍험 출신의 헤비 메탈 Black Sabbath도 같은 경우다. 헤비 메탈의 상징적 인물 오지 오스본 과 Black Sabbath 멤버들은 버밍험의 소외계층,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났다. 우리나라 경우라면 구로공단 주변 닭장집에서 공돌이 공순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오지 오스본은 중학교 중퇴하고 좀도둑이 직업이었다. 직업특성상 그는 형무소도 다녀왔다. 그러나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날 길은 음악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Black Sabbath 가 탄생되었다. 오리지널 멤버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빌 워드(Bill Ward), 지저 버틀러(Geezer Butler),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 처음에는 그룹 이름을 Earth라고 했는데 같은 이름의 밴드가 있는걸 알고 지저 버틀러가 공포영화 Black Sabbath의 이름을 따 Black Sabbath로 개명했다. 자신들의 출신성분에 걸맞은 어둡고 음산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어울리는 적합한 이름이었다. 그때가 1969년, 진보 자유 혁명의 물결이 넘실거리던 60년대 끝자락이었다. 자유,평화,반전을 외치며 통기타 한 개 달랑 들고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죠안 바이즈, 밥 딜런의 시대는 가고 대중음악은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런 시대적 변화요구 가 우연하게도 Black Sabbath의 탄생과 일치되었다. 그들은 이듬해 2월13일, 금요일에 첫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출발부터가 반 기독교적이었다. Black Sabbath라는 이름이 주는 음산한 분위기, 첫 앨범 발표가 서양에서 금기로 여기는 금요일에 13일. 그뿐 아니라 그룹의 상징인 오스 오스본의 망자의 혼을 부르는 영매를 연상케 하는 섬찟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 우울하고 비장하고 염세적인 분위기는 어둠의 세력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성된 같은 버밍험 출신의 Judas Priest 와 Black Sabbath는 보수 기독교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스승 예수를 팔아먹은 배은망덕한 금기의 인물 유다의 이름을 따서 그룹을 만든 Judas Priest, 사탄의 세력을 연상케 하는 Black Sabbath 는 기독교를 농락하고 신을 모독했다는 괘심 죄를 벗어 날 수 없었다. 헤비메탈 뿐이 아니었다. 헤비메탈은 록(Rock)에 기반을 둔 록의 하위 장르이고 록은 부르스(blues)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70년대 들어서면서 Rock에 기반을 둔 음악들뿐 아니라 뉴 에이지, 랩, 심지어는 일부 C.CM. (contemporary Christian music)도 보수 기독교로부터 반 기독교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C.C.M.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세속적이라는 것이다. 헤비메탈이 유행할 때는 헤비메탈 크리스쳔 음악이, 랩이 세상에 유행 할 때는 크리스쳔 랩을 부를 수 있는데 세속에 기준을 두고 세속을 따라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가치중립적이다. 칼이 가정주부 손에 들려 부엌에서 쓰여질 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로 쓰이지만 강도 손에 칼이 들려지면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흉기로 변하듯 음악도 마찬가지다. 반 기독교적 음악들이 폭력, 마약, 섹스, 자살 등의 소재를 쓰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음악을 듣고 소화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의식에 달려있다. 내게는 딸이 있다. 지금 Gr.7인데 2년 전 GR.5일 때 오지 오스본이 에드먼톤에서 공연을 한적이 있다. 그 때 딸 하고 이야기 하다 오지 오스본 이야기가 나왔는데 오지 오스본 노래를 좋아한다 해서 놀란 적이 있었다. 동요를 들어야 할 나이에 헤비메탈을 듣다니. 10살짜리 여자아이가 오지 오스본 노래를 들어 좋을 게 뭐란 말인가. 그러나 무작정 듣지 말라 할 수는 없고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고 우선 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런걸 유식한 말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고 한다. 20년 전 보수 기독교 목사들에게 항변을 하던 내가 딸을 상대로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다니. 힘들게 설명하는 나와는 달리 딸의 대답은 간단했다. I know it, dad. He might be a Satanist but… I bet he is a good singer. 내가 좋아하는 여류시인 J. 백기완 선생께서 대통령선거에 출마 하셨을 때 자원봉사로 선생을 도왔다는 그녀는 나와 같은 이상을 갖고 있어 20 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지만 서로 동지라고 부른다. 오지 오스본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가 정말 사탄의 빠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데요, 동지님. 그만한 목소리 가진 가수 흔치 않지요? 그리고 그만한 음악성을 가진 사람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요.” Suicide solution을 듣고 자녀들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고소해 오지 오스본은 법정에 서야 했다. 그는 말했다. “나도 애가 셋이나 있고 아내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요.” * 공돌이, 공순이 표현은 소외된 노동자 계층을 표현하려 쓴 단어이지 노동자들은 비하하는 의도로 단어가 아니니까 오해 없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2/1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6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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