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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와 달걀
우유와 달걀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야~ 참 복스럽게 먹는다~!” 라는 말을 자주했다. 어릴 때 나이드신 분들은 “밥을 복스럽게 먹어서 복받겠다!” 하셨다. 나의 형수님은 내가 “쩝쩝소리”를 내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삼촌은 정말 신사네!” 하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어서 음식을 해주는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래서 순진이는 신이나서 음식을 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음식솜씨가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나의 밥먹는 모습을 보면서 질색(?)을 하는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내가 가끔 찬밥을 우유에다 말아서 김치하고 먹는 것이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못 마땅한 것 같았다. 오만상을 찌프리곤 했다. “아빠~, 제발 밥을 우유에다 말지 말아요!” “왜~ 어때서~” “그게 뭐예요?” “야~ 너희들은 Cereal을 우유에다 타서 먹지?” “……” “난 밥을 우유에다 말아서 먹는데 다를게 뭐냐?” “Oh~ boy~!” “그리고 아빠는 너희들 처럼 우유를 꿀꺽꿀꺽 마시면 금방 설사를 해~” “……” “그래서 이렇게 밥을 말아서 꼭꼭 씹어 먹으면 침이 잘 섞여서 설사를 안한다구~!” “에~이구~~!” “좀 이상해 보여도 이해를 해줘!” “그럼 아빠 혼자서 있을 때만 하세요” “알았어~” 내가 어릴 때는 우유가 아주 귀했다. 나는 우유를 본적이 없었으니까. 6.25 동란 후에는 분유를 학교에서 도시락통에다 배급을 주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손으로 분유를 웅켜쥐고 입에 털어 넣으면 입주위는 온통 분유로 범벅이 되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변소에 드나들기 바빴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분유를 밥위에다 찌는 것이었다. 밥솥에서 쪄낸 분유를 과자처럼 깨물어 먹었다. 우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나는 대학을 축산대학에 다녔고 학교 목장에서 우유를 짜서 유가공장에서 가공을 했다. 그러나 우유를 마시는 것은 희망사항일뿐이었다. 기숙사에서 여유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돈을 받고 목장우유를 배달해 주었는데, 아침 식사시간에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부럽든지…… 우유를 마시고 난 다음엔 병을 꺼꾸로 들고서 한참을 기다리면 몇 방울 떨어지는 우유를 손등에다 받아서 두 손등을 마주 비볐다. 뭐~ 피부가 좋아진다니 어쩐다나…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없어서 못 먹던 우유가 살이 찐다! Cholesterol이 많다! 하면서, 그 좋은 Milk fat을 몽땅 제거한 Skim milk를 우리도 마시고 있으니…… 또 어떤 사람들은 피부에 좋다고 우유를 목욕통 속에 퍼붓고 목욕을 한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두번째는 순진이가 방금한 따끈따끈한 밥을 접시에 퍼주면, 난 의례이 냉장고에 가서 날달걀을 한개 꺼내 오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얼굴부터 찡그렸다. “아빠~ 또~?” “미안! 이 달걀에는 아빠의 어린 때 추억이 담겨있으니까 너희들이 이해해라!” 접시에 담긴 밥을 약간 옆으로 밀어내고 가운데 구멍을 만든 다음에 달걀을 깨서 구멍에 넣었다. 소금을 뿌린 다음, 옆에 밀어 놓았던 따끈따끈한 밥을 달걀위에 덮고 정성스럽게 비볐다. 그리고 나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나의 생각은 어느듯 50년 전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이들이 불평을 해도 이해를 바랄뿐 밥을 달걀에 비벼 먹는 나의 추억이 담긴 습관을 버릴 수 없었다. 먹는게 귀했던 시절에 달걀을 지져서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나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국물이 줄줄흐르는 김치였으니까! 얼마후에 누군가의 기발한 Idea에 의해서 구제품으로 나온 병에 든 음식(지금 생각해 보니 Baby food였던 것 같다)을 먹고 난 후에 병에다가 김치를 싸가지고 다녔었다. 간혹 뻐쓰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의 가방을 무릎에다 받아주었는데, 그때 잘못하면 김치 국물이 여학생의 치마에 흐르는 경우도 발생하곤 했었다. 너도 나도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오가는 인정은 있었던 시절이었다. 달걀은 일년 중에 생일 때나 아니면 죽도록 아플 때 한개 얻어 먹으면 다행이었다. 어쩌다가 달걀이 한개 생기면 동생들과 함께 밥을 모두 커다란 냄비에 넣고 그 귀중한 달걀을 깨서 넣었다. 비비고 또 비벼서 노란 색갈이 골고루 섞인 다음에 누가 더 많이 먹을세라, 한 숟갈씩 차례로 돌아가면서 퍼먹었다. 밥알에 노란 색갈만 묻어 있으면 천하일미였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동생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어머니는 따끈따끈한 달걀을 한개 내 손에 쥐어주시고 잠자리에 드셨다. 그게 무슨 대단한 영양식이라고…… 그러나 내 손에 쥐어주신 따뜻한 달걀은 음식이 아닌 보약(?)이었다! 아니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자식들은 모두 똑같았을텐데, 입시준비를 하는 나에게만 달걀을 주셔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우유에 밥을 말아먹고, 따끈따끈한 밥에 달걀을 비벼서 먹을 때, 나는 추억을 먹는것이다. “이 녀석들아~! 너희들이 아빠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기사 등록일: 200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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