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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면 _최우일 칼럼
밤새 무슨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가보니 그는 얼굴과 오른 쪽 옆구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혼자 서 있었습니다. 길가라고는 해도 바로 문밖이었고 가로등이 밝은 곳이었는데....
짐작가는데가 아주 없지만은 않습니다. 동네 심술궂은 몇 녀석이 배회하는 것을 나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내가 상처를 싸매줄 때도 그 참기어려운 모욕에 내색 하나 없던 그 였습니다. 그런 그가 신음소리를 지른 것은 핸썸과 내가 그에게 업혀 보우네스에서 돌아오던 어느날의 오르막 길에서 였습니다. 열에 들떠 헐덕거리는 그의 체온은 붉은 위험선을 넘어서 바늘이 멈추어 있었습니다.
중년을 훌쩍 넘겼다고는 해도 주행거리가 많지않아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난 우기고 있었지만, 솔직히 볼상도 사나웠고 노쇠한 것은 장거리를 뛰어보고 알았습니다. 안간힘을 쓰며 힘겨워하는 폼이 전 같지 않았었습니다.
이 자동차를 보노라면 난 나를 보는듯 합니다. 피부는 늘어지고 조금만 무리를 해도 진땀부터 흘리는 내 꼴이라니, 길가 한 모퉁이에 세워져 쓰일일 없이 처량했던 말년의 내 고물자동차처럼 나도 자꾸만 천대받는다는 고까운 마음이 되어갑니다.
한 때는 당당하던 걸음새가 꺼뜻하면 미끄러지며 뒤뚱거리기까지하고, 게다가 내 짧아진 남은 시간 무엇을 그리 멀리만 보고 살라는 것인지 정작 눈 앞의 것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부품 몇개 바꿔치기 쯤이야 요즈음에는 흔한 일이기는 하다지만, 필요한 새 부품이 어디 한 두군데라야지...차라리 맵씨나는 신형으로 뽑아낼 수는 없는 것인가? 고물의 시장가치가 뚝 떨어지는 것이라면 그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는 망상까지 합니다.
사람이 고물이 되어 몸의 조화와 균형이 깨어지면 질병이 든 것입니다. 자연사를 한다는 일은 없습니다. 단지 질병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아버릴 뿐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2000년 전에 비겨 두배는 더 평균 수명이 연장된 것에는 여러 까닭이 있다지만 무엇보다 질병의 연구가 가장 큰 공헌을 한 셈입니다.
노인인구가 이 추세로 늘어나면 머지않아 지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양로원이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어느 사람의 말에 참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국가운영차원에서보면 젊은층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니 부양문제가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숫자만이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두뇌 또한 사회가 같이 거들어 주어야 할 부분입니다. 모든 정보의 처리 저장은 두뇌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소재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성형해줍니다.' '마음 이식 전문의' 따위의 엉뚱한 광고를 볼 날도 있지 않을까? 그리되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식된 남의 머리입니까, 아니면 본래의 내 몸뚱이 입니까? 여기, 인간 존엄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윤리가 실질적이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라고 우기며 과학의 극단적 성취를 정당화 하려는 분들도 있기는 할것입니다만, 과학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도덕적으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식인들이 이런 따위의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지 않는 까닭은 윤리를 과제로 해야 할 교회당에는 가끔씩만 가는 곳이니까 국가에서 이 문제를 제도화하기만 하면 양심에 걸릴 일이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응용과학의 주요 사용자는 개인보다는 군조직이나 기업들입니다. 이들의 힘 자랑이나 돈 욕심, 이 둘이 도덕적 혼란의 주범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과학이 차려놓은 잔치에서 트집잡자는 것이 아닙니다. 망망한 바다에 표류하는 조각배에 방향타가 없어서는 않되겠다는 걱정일 뿐입니다. 1925년 스코프스의 재판에서 윌리엄 제이 브라이언 씨는 그의 최종변론을 이렇게 합니다. "과학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도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완벽한 기계를 만들어내면서도 기계의 오용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자제력인 도덕은 빠뜨리고 있다.
과학은 굉장한 지식이란 선박을 건조하고, 폭풍에 까불거리고 있는 배를 통제할 도덕이란 방향타를 건조하지는 않는다." 쥐새끼가 실험용이 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세상에서 첨단과학이 인간의 권리, 가치, 평등의 기회, 윤리와의 마찰을 무시한 채 사람을 놓고 시장바닥에서 흥정이 된다면 인간 존엄성에 대한 대단한 모독입니다. 존엄성이란 단어가 걸리면 체면이라 해 두겠습니다.
몸매(體)를 다듬고 얼굴(面)을 가꾸며 체면(體面)차리고 나서기에 급급한 지금부터, 기여코 이루어내고야 말 줄기세포 재생이식치료까지 과학의 길에는 차근히 할 것들이 있습니다. 질병의 치유에만 멈추지 않고 더욱 욕심을 부릴 때 인간개량종개발이라는 비윤리적문제는 어떻게 다룰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세대를 거듭나고 또 태어나도 사람이란 닮음을 잃지 않을 때라야만 사람인 것이라고 믿고 싶은 나 입니다. 길가에 밀려나있다가 상처를 입고 실려가 버려 체면구긴 나의 고물자동차는 응용과학의 산물입니다. 이 과학에 방향을 잡아주고 속도를 조정하여주는 '우리들'이 운전석에서 자리를 비우고 저 혼자 멋대로 달리도록 내 팽개쳐 둘 수는 없다는 당연한 얘기를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3/1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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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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