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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백만
며칠전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었던 그가 한마디 해명도 없이 그 다음 날 슬그머니 나타나기는 했지만, 실종 신고를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한다 야단법석을 떨며 한동안 나는 마음을 졸이며 지냈습니다.
이쯤은 그래도 약과입니다. 매달 한번씩은 꼭 신경전을 치루고 넘겨야 하는 그 일만큼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닙니다. 단짝이 되어 놀아나다가 그때만 되면 흥청망청하였던 지난 한 달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우린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습니다. 나는 그이고 그는 바로 나입니다. 나는 그와 함께 있으면 편하고 그는 나의 위상을 세워주는데 혼신을 다 하였습니다. 우리 둘의 불가분한 공존보완관계는 판단의 이성을 잃고 있습니다.
서로 끌고 끌리는 힘이 마치 막강한 자력과도 같습니다. 아니, 끊지 못할 지경에까지 다다른 중독상태가 이럴 것입니다. 분별없이 나는 그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배후의 교묘한 조종따위는 아는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문화인인척 착각하며 사는데 서슴이 없었습니다.
오래두고 나는 챕터스씨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그러자니 자연 이웃인 스타벅스와도 모른체 지낼 수 없는 일이고, 더 베이나 이튼 백화점등에도 자주 드나들며, 에디 바우어와도 친분을 텃습니다.
안정된 직장이 가져다 준 여유에 걸맞게 구색을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주장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 들였습니다. 지금의 사회가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혼자 고집부려 보아야 저만 불편할 따름이라는 시체 안일주의에 장단을 맞추어 갔습니다. 이렇게 우리 둘의 관계는 시작되었습니다.
무슨 운명론자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와야 할 것은 어느 때고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가령 고무줄을 계속 팽팽히 늘려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는 터져 끊기고 말듯 그를 더는 지탱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가 나를 몰아치는 그곳은 다시는 헤어 날 수 없는 심연처럼 사뭇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이 늦었지만 나는 조금씩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그와의 결별은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없이는 아무리 사회의 대접이 소홀하더라도 이제는 정신을 다듬어야 할 때입니다. 이건 정말 어려운 결심이었고 이 나의 결심의 시간은 마침 여러모로 어려운 연말 즈음 이었습니다.
벌써 상가에서는 성탄절 기분을 돋우고 있습니다. 이 때가 되면 돈 써야 할 핑계가 늘어납니다. 나중이야 어떻든 우선은 ‘미래가 먼저 일어나는 이 희망의 땅’에서 조차 미리 댕겨 쓰며 살 수 밖에 없는 일부 서민들을 조종하는 막강한 이 신용외상결제의 힘은 이 때만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나는 압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내 주인의 자리를 되찾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을!
난 용기를 내어 그의 현주소를 수소문해 찾아 나섰습니다. 요 몇 년 제맘대로 사람을 웃기고 울리던 내 지갑 속의 이 플라스틱 카드, 그의 현주소가 이렇게 거창한 줄 모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서 거두어 들인 푼돈은 결코 푼돈이 아니었습니다. 백만 천만의 푼돈이 쌓여 이렇게 어마어마하여 진다는 사실의 또 하나의 확인일 뿐이었습니다.
언제인가 백화점에서 목격한 일입니다. 물건값 계산대에서 내 앞 차례에 서 있는 어느 부인의 지갑에 줄줄이 끼어져 우쭐거리는 크레딧 카드들을 흘깃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줄잡아 서너개 이상은 실히 되지 않을까, 과연 그 부인의 체격만큼이나 듬직한 신용카드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카드를 가지고 다닙니다. 곳곳에서 상인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가라 손짓하고 있습니다. 신용외상은 사용자에 따라 편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절제력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쓰거나 자기 재력능력이상으로 과용할 수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크레딧 회사의 음모를 모른체하는데 문제의 발단이 있습니다.
나는 이 유혹을 멀리하고 살려고 힘을 다해 저항하였지만 결국 굴복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변명은, 좀 지나친 액수는 현금 소지가 만만치가 않은데다 요즈음은 개인수표의 신용도가 보잘 것 없어서 신분보증으로 제시해야하는 것으로 운전면허증 말고는 바로 이 신용카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크레딧 카드들 쓰는 편이 수월하다는 논리이고 사실 조심해서 쓰기만 하면 무슨 탈이 있겠냐는 자신감에서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허튼 자신감은 그들의 교묘한 음모에 어느새 무너져 버렸고, 내가 넣고 다니는 신용카드의 주인이 바로 나 인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정작 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나같은 사람들의 푼돈으로 살쪄서 으리으리한 조직 속에 은신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머뭇거리는 내개 은행계원은 짜증을 냈습니다. ‘네, 저....크레딧 카드를 취소도 하고, 또....부채 갚을 문제를 상의할 것도 있고 해서...’ 한 쪽 구석에서 쭈뼛거리며 눈치 살피는 나는 틀림없이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의 위태로운 꼴로 보여 매우 수상쩍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부산한 세모의 은행들이 한껏 날카로워 있는데..... 어느새 경비원 하나가 내 뒤에 바짝 다가서 있습니다.


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6년 12/8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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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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