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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 단상.. 청야 김민식 (캘거리)
 
캘거리 SW 헤리티지 공원을 끼고 도는 그렌모어 저수지 서쪽 편 산책로를 걷습니다.
나는 이 길을 지인들이 심히 걱정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이 걷습니다.
어제도 몇 일을 고생해서 정리한 지난해 소득신고 자료를 회계사에게 넘기기가 바쁘게 그곳을 또 걸었습니다.
시민권을 취득한 이후 25년 동안 거의 빠짐없이 참가한 투표 권리행사도 가게 일하는 시간에 쫓겨 놓쳤습니다. 가게일과 걷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UCP집권 여당이 NDP 야당을 제치고 재집권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자책감과 후회가 밀려옵니다.

오늘 아침도 약속한 이 원고를CN드림 편집부에 보내고 나면 또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침 때문에 세 번을 연속 불참한 한인합창단 오후 1시 정기 연습에 오늘 참가할 것입니다. 아무리 기침이 심해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걸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은 기침이 사라집니다. 맑은 공기가 가래를 삭혀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은 하루 종일 걷고 싶은 심정입니다

일주일에 6일은 걷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강풍이 부는 날에도, 영하 25도에도 걷습니다. 폭설이 내려도 상주하는 제설차가 연신 눈을 치우기 때문에 공원 산책로는 고향 길 같이 포근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늦겨울 어느 날, 걷는 어간의 바로 앞 포플러 나무 큰 가지가 우지직 부러졌습니다. 그렇게 정들은 나무가 부러지는 아픔에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바람에 밀리는 몸으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행진곡 박자를 맞추며 걸었습니다. 행진곡은 잔잔한 인정 따위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울리면 앞으로 전진해야만 합니다.
매일 걷는 시간이라야 고작 30분 내외입니다. 언덕길도 없는 호수 뚝방길입니다.
아스팔트 길을 걷다가 지루하면 길 따라 놓인 잔디밭을 걷기도 하고 호수 물이 철벅거리는 자드락 길을 내내 걷습니다. 걷는 사람들이 드문 시간에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걷습니다.

강풍에 쓰려졌던 나무들, 호수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비버 녀석들이 싹둑 싹둑 잘라놓은 밑 둥지 옆으로 새나무 가지들이 어느새 여기저기 삐쭉 거리며 한참을 자라고 있었습니다. 강풍에 쓰러진 나무들이 누운 채로 새 싹을 피워냅니다.
이 놀라운 치유의 생명력, 아카시아나무의 싱그러운 꽃 향기, 지난 가을 뚝뚝 소리 내며 팽그르 춤추듯 떨어진 낙엽이 눈 속에서 곱게 여물어 시나브로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낙엽이 품어내는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태평양 비릿한 바다 냄새를, 로키산 상록수에 절여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함께 말아낸 조물주의 신비한 정향제에 취해 있습니다. 이 순간은 춤추듯 걷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엉덩이를 흔들고 양팔을 좌우로 틀면서 마치 젊은 날의 트위스트 춤을 추듯 걷습니다.

그리고 맥도날드 카페로 돌아와 커피 한잔에 이북으로 책을 보다가 이 순간의 감격을 참지 못하고 존경하는 윤병옥 합기도 관장에게 눈물을 글썽거리며 카톡으로 장문을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것은 나를 찾는 명상의 시간이 아닙니다. 잠깐이라도 넋을 잃듯 내 자신을 자연에 던져서 맡기고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생각을 멈추고 사유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매일 홀로 걷지 않고는 노년을 지탱할 기운이 없습니다.

인생이 늙어간다는 것, 이것은 죽기 위한 과정을 넘어 새로움을 잉태하기 위한 창조의 과정일 뿐입니다. 당당하게 노년을 맞이하고 정의롭고 맑은 마음으로 성스러운 긍정의 세상을 바라봅니다. 내가 지향하는 노년의 역주행입니다.


기사 등록일: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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