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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서(12번째): 재수 옴붙은 날 2006-9-13
 
1998년 11월

카나다에는 겨울이 길어서 날씨가 조금만 좋아지면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나타날 정도로 날씨에 민감하다. 그래서 11월에 어쩌다가 이상 기온에 의해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사람들은 Indian summer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춥고 찌부둥하던 날씨가 오래간만에 쨍하니 날씨가 개이고 기온이 올라가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야~ 오래간만에 날씨 한번 좋구나!”

날씨가 좋은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우리 가계에는 날씨가 좋이지면 골치거리가 한가지 있었다. 세탁소 주변에 사는 흑인 아이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서 크게 떠들고, 자동차에 음악을 있는대로 크게 틀어놔서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가계에 오는 손님들은 눈쌀을 찌프렸다. 어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흑인 아이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개인적으로 한 사람씩 있을 때는 착하고 순진하다가도 일단 여럿이 모이기만 하면 아주 난폭해지곤 했다. 우리 가계 앞에서 진을 치고 노는 아이들 가운데 Tony 라는 아이가 있었다. 키도 크고 생기기도 잘생긴 아이였다. 보기에 과히 나쁜 아이 같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아주 못된 것 같았다. 오늘 따라 녀석들이 가계를 들락거리면서 물건값을 물어보기도 하고 전화를 좀 쓰게해달라기도 하면서 신경을 건드렸다.

나는 옷수선은 앞에서 하지만 일단 수선을 하면 다리미가 작업실에 있어서 뒤에서 다리미질을 했다. 어떤 때는 다리미질에 신경을 쏟다보면 손님이 들어와도 잘 모를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안 보일 때는 손님들이 “Hello”하고 소리쳐서 나를 부르기도 했다.

작업실에서 고친 바지를 대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던 다리미질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보니 어떤 시커먼 물체가 밖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쫓아나가서 뛰는 녀석의 뒷통수를 보니 Tony 같았다. “Tony”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달아났다. Cash register를 들여다 보니 20불 짜리가 석장 있었는데, 그게 없어졌다.

“나쁜~ 놈!”
이상하게 가계를 들락거리더니 그게 모두 사전에 계획을 세웠던 작전인 것 같았다.
“별로 장사도 잘 안되는데 고걸 흘터가지고 가~! 나쁜 놈!”
잊어버려야지 하고 아무리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음 부터는 뒤에서 일할 때는 Cash register를 잠가 놓고 일하야겠네!’
날씨가 좋아서 문을 열어놓고 일을 한 것도 문제 중의 하나였다.
‘이게 모두 날씨 탓인가?’

계속 Tony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혼자 애를 태우고 있는데, 가끔 한번씩 헌옷을 가져와서 고쳐가는 손님이 바지를 가지고 와서 바짓단을 고쳐달라고 했다. 바지를 재고 표시를 했다. 이틀 후에 찾아가라고 했다.
‘에이~ 잊어버리고 일이나 하자!’
바지를 고치기 위해서 바짓단을 짤랐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바지를 다시 자세히 쳐다보는 순간 이게 웬일인가? 정신이 앗찔했다.

바짓단을 짜를 때는 바지 기장을 표시해 놓은 곳에서 3~4cm 밑을 다시 표시하고 가위로 짤라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바지 길이를 표시한 곳을 가위로 짜른 것이었다.
‘이게 모두 Tony 녀석 때문이야!’
계속 Tony 녀석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니 결국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 일을 어쩐다?’ 바지를 보니 새 바지는 아니었다. 오래 입은 헌 바지였다.
‘까짓꺼 물어주면 되지. 하여튼 오늘은 이래저래 재수 옴붙은 날이네!’
‘빨리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일을 다시 하다가는 또 실수를 할까봐서 모두 집어치우고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짤라놓은 바짓단을 이리 마추고 저리 마추면서 궁리를 했다. 어떻게 고칠 수가 없을까? 길게 짤라놓은 것은 다시 짜르면 되지만 짧게 짤라놓은 것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위질을 할 때는 두번 세번 확인을 하고 가위질을 했었는데…… 짤랐던 바짓단을 다시 재봉틀로 붙였다. 그리고 바짓단을 고쳤더니 원래 표시했던 것보다 0.5cm가 짧아졌을뿐 깜쪽같았다. 사실 0.5cm정도는 눈으로 보아서는 표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실수한 것은 실수한 것이기에 손님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바지를 입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니, 40~50불 정도 Credit을 줄려고 생각했다. 헌 바지였기에 다행이었다.

다음 날 저녁에 손님이 바지를 찾으려 왔다. 고쳐놓은 바지를 이리저리 보더니 “Very good!” 했다.
그 때 내 속에서는 두가지의 생각이 싸우고 있었다.
“손님이 Very good 했는데 그냥 넘어가자!”
“아냐~ 그래도 내 실수를 이야기해야 돼!”
“야~ 이야기하면 머리만 아파져! 그냥 넘어가자니까~!”
“아냐 그래도 안돼”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바지가 마음에 드세요?”
“네, 아주 잘 고쳤는데요”
“…… 저~ 사실은 ……”
“???”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바지를 펴보이면서 내가 어떻게 실수를 했고 어떻게 고쳤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는 잘 고쳤다고 좋아하던 손님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바지를 입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헌 옷이었기 때문에 한가지 제안을 했다.
“바지를 입으시는데는 아무 이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실수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
“옷수선료는 제가 받지 않고 Credit을 40불 드리면 어떨까요?”
잠간 생각을 하던 손님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도 변할 수가 있구나 하고 놀랬다.
“This is suit pants! (이 바지는 양복 바지란 말입니다)”
“네~ 그래요?”
“You ruined my pants! (당신이 내 바지를 망가트렸단 말이요!)”
“입으시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배상하세요!”
“… 그래서 제가 40불을 Credit으로 드린다고……”
“아니요! 전액을 배상하세요!”

“너무 하십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올려는 것을 꾹 참고
“그러면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 150불을 내세요!”
‘너무하다! 난 70~80불 정도를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150불은 너무 많고 100불이면 안될까요?”
“아니요! 150불을 내세요!” 얼굴이 점점 더 험상굳게 변하면서 막무가내였다.
헌 양복 바지를 고치려고 가져왔다면 그건 누구에게 거저 얻었거나 아니면 헌 옷을 파는 곳에서 아주 싸게 사왔을텐데…… 그러나 어쩌랴! 내가 실수를 한 것을! 더 말하기가 싫었다. 150불 짜리 수표를 써주었다.

양복값을 다 지불했으니, 손님이 보는 앞에서 바지를 쓰레기통에 콰~악 쑤셔넣을까 하다가, 그냥 손님에게 주었다. 똑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녀석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수표와 바지를 가지고 살아졌다.
“나쁜~놈!”
누군가가 내 속에서 소리지르고 있었다.
“내가 뭐랬니~? 그냥 넘어가라구 했지~? 등신 같은 년!”
갑자기 세탁소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를 Pick up 하기 위해서 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괜찮았어” 억지로 웃어보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그래~? 괜찮은데……”
‘남편이 들어봤자 하나도 도움이 안 될텐데, 그냥 나만 알고 있자!’
남편에게는 Tony 이야기도 바짓단 이야기도 안했다. 들어봤자 속만 아프지……

“나 옆 가계에 가서 내일 점심 쌀 것을 좀 살테니까, 당신이 문잠거~”
“알았어”
세탁소문을 나서는데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정신이 버쩍 들었다. 초겨울 바람이 시원했다.
“잊어버리자! 잊어버려!”
“그리고 활짝 웃자~ ㅎㅎㅎㅎㅎ”


로빈: 사람이 너무 착하면 오히려 이용 당합니다. 그럴때는 나는 그값을 무러줄수가 없다. 법으로 해결해라 하고 뻣대야 합니다. 저도 한번 그런경우가 있었는데 상대편이 어거지를 쓰길래 다음에 주겠다 하고 변호사 친구와 상의 해보니 증거를 제시하라고 하고 그렇치 못하면 법적으로 해결 하라고 하면 대부분 제안를 수락 한다고 합니다. 어디서나 너무 착하면 이용 당합니다. 한국이나 캐나다나....제가 생각해도 분하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항상 건강 하십시요.

어진이: 네~ 로빈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과정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Stress만 더 생기고…
싸울 작정을 하고 덤비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그리고 이번 경우는 어쨌거나 아내가 실수를 한 것이니까요.
매일매일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안 좋은 일은 빨리 끝내고 빨리 잊어버리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더라구요.
조언 감사합니다. 많이 참고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기사 등록일: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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