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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8>
 
8

“어그 어그 우리 강아지… 어이구 이쁜 거…“

노부인이 두 살 배기 막내 손주를 안고 어르며 즐거워하고 있다. 아직 짐 정리가
덜 되었는지 좀 어수선한 방 안 모습이다. 그래도 노부인은 연신 아이를 안고 뽀뽀하고 난리도 아니다. 이 때 퇴근한 안선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 왔어…”

그러나 손주에게 마음을 뺏긴 노부인은 대답도 하지 않는다. 웃옷을 벗다 말고 심술이 난 안선생이 소리 친다.

“아 밥 안 줄껴?”

노부인은 이번에도 들은 척도 안 하며 안선생 들으라는 듯 한 소리 했다.

“어그어그, 우리 새끼!
하마터면 니 할아버지 땜에 요 달걀 같은 우리 손주
얼굴도 못보고 죽을 뻔 했어요. 어그어그 깍꿍!”


급기야 안선생이 다가가 손주를 빼앗아 안는다.

“아, 임자만 할미여? 야~ 고놈 근사하게 생겼다.
장군감이로고. 어구어구 얼랠래?”

“이리 줘요!”

“못 줘!”

“이리 주고 옷이나 벗으라니까요!”

“우리우리 까꿍!”


안선생과 노부인에겐 행복한 나날이었다. 큰 아들이 아파트를 답답해 하는 안선생을 위해 교외에 위치한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해서 조그만 텃밭도 만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손주녀석들 재롱에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안선생이 떠난 후 민경삼의 생활은 달랐다. 안선생이 만들어 놓은 든 자리와 난 자리가 이전과 다른 외로움으로 변해 그를 더 삭막하게 만들었다.

이제 민경삼은 전과 같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초라한 늙은이로 돌아 갔다.
기침이 심해 계산하러 카운터로 가는 도중 벽에 기대 가뿐 숨을 민경삼이 더 초라해 보였다.

안선생은 전 보다 더 정열적인 모습으로 일을 했다. 열정적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교사 연수 프리젠테이션을 점검하고 운동회에선 아이들과 줄다리기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민경삼은 냄비에 라면을 넣으며 추워진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오늘도 민경삼은 일과가 끝나고 트럭을 몰고 나와 안선생이 서울로 떠난 그 먼산을 바라보고 있다.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더불어 집 앞 공원의 꽃 길을 걷고 있는 안선생은 민경삼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무심한 시간이 흘러 가는 동안에 안선생의 마음 속의 민경삼도 그렇게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아무쪼록 이번 연수가 순조로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특히 김선생!
호주머니에 팩소주 넣어 가는 거 안됩니다!”

“하하하”

안선생은 대규모로 진행되는 상반기 교원 연수를 준비하는 중이다. 날짜와 일정, 그리고 프로그램을 맞추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었다. 이제 얼추 마무리 지었나 싶어 심호흡을 해 보며 책상의 자료들을 추스르고 있을 때 역시 영어 담당 김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 선생님 전화 왔습니다.”

“내 전화는 꼭 김선생이 받더라?”

웃고 있는 김선생에게 다가가 책상 위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아 예… 예… 예?”

안선생의 얼굴이 이내 창백해졌다.

“예‥ 예
압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곧 찾아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달리는 고속 버스 안의 안선생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였다.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남쪽 지방의 작달막한 산들이 그의 시선을 잡아 보려 하지만 안선생의 눈빛엔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영감태기‥ 내가 그만 자네를 잊어버렸었네.
용서해줄 수 있겠나?


안선생이 떨리는 마음으로 지구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골 지구대라 그런지 한가한 분위기였다.

“저… 황병권 경장님 좀 뵙고 싶은데요?”

“아 교장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안 쪽에 마련된 작은 응접실에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 앉았다. 황경장이 다방 커피를 제조하는 동안 그 간의 짧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연세도 지긋하신 데다가 몸도 안 좋으신 것 같아
일단 귀가 조치를 했습니다.”

안선생은 우선 민경삼의 안위 확인이 시급했다.

“다치진 않았습니까?”

“가벼운 접촉사고였습니다. 문제는 무면허 운전이라서요.
사안이 사안인지라 달리 연락할 곳도 없어서 교장 선생님께
연락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 친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 그게… 귀가 조치 후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교장 선생님을 찾아 간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아니요… 전혀 연락이 없었습니다.”

사고를 내고 사라지다니… 민경삼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닌지… 아님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누군가에게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온갖 잡생각이 안선생을 괴롭혔다.

우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민경삼이 기거하고 있던 주유소를 찾아 가 보기로 했다. 평소와 같이 분주한 주유소 풍경인데 모두 바쁘게 움직여 누굴 잡고 물어 봐야 하나 난감하던 차에 계산대 아줌마가 마침 나오길래 말을 걸었다.

“벌써 며칠 됐구먼유.
사장님 성격이 워낙 불 같아가지구유.
사무실트럭을 망쳐놨으니 오죽 했것시유.”

민경삼의 이야기를 물어보자 한숨부터 쉬는 아줌마였다.

“혹시 아들집으로 간 게 아닐까요?
서울에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흥분하며) 아들이유? 말두 마서유. 개망나니 같은 것도
아들이라고… 내 참말로..
그 할배가 뭣 땀시 여 꺼정 와서 혼자 살것시유!
따지구 보면유. 불쌍한 노인이구먼유.
그래두 주유소 일에 재미 붙여가지구 그럭저럭
사나부다 했는데유.
사고나기 며칠 전부턴 통 말도 없고 먼 산만 쳐다보고…
내 먼일 날 줄 알았구먼유.”

역시, 지난번 민경삼이 입원했을 때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다.

“예,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다.
안선생이 퇴근시간이 벌써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도 교장실에 남아 생각에 잠겨 있다. 안선생은 민경삼의 일이 자기 탓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 불쌍한 친구를 떨어뜨려 놓고 서울로 올라와서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못 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안선생 자신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소홀히 생각 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몸도 아픈 친구가 잠 잘 곳도 없을 텐데 어디서 어찌 지낼까 생각하니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이미 지난번 시골마을에 내려 갔을 때 민경삼이 갈만 한 곳은 모두 찾아 갔었다. 워낙 마을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없고 그가 다니던 동선도 단순해서 마을 회관과 공판장 그리고 병원 정도가 그나마 찾아봐야 할 장소의 전부였다.

여기까지 생각했던 안선생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병원… 그래 병원 기록을 찾아보면 된다.

“맞다… 그 때…
원무과 수납이 밀려서 자동 수납기로 병원비를 냈었는데…”

자동 수납기로 병원비를 수납 할 시에는 환자의 주민번호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시 영수증 뒷면에 주민 번호를 적어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영수증… 그 때 영수증… 어디다 뒀더라?”


아직도 정리가 덜 된 이사 상자를 들쑤신다고 노부인의 우레와 같은 잔소리 폭풍을 이겨 내고 안선생은 민경삼의 병원 영수증 찾아 냈다.


“이분은 사망 하셔서 사망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이신데요?”

월차를 내고 부리나케 시청청사로 달려 온 안선생에게 민원실 직원은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망이요? 뭐… 뭔가 잘 못 된 거 아닙니까?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사망이라뇨?”

“사정은 모르겠지만 서류상으론 사망하신 게 맞습니다”

“저기… 한 달 전 쯤에 병원에서 의료보험도 썼던 사람입니다.”

“의료보험료가 연체 되었을 시에 일부러 공단에 사망 신고를 안 하는 경우
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사망이라니… 무언가 잘 못 된 것이 틀림없다. 가명을 쓰고 있었던 걸까? 아님 자식들과 헤어 진지 너무 오래 되어 사망 신고를 한 것일까? 온갖 생각들이 뒤죽박죽 한 안선생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안선생이 힘없이 뒤돌아서는데 민원실 직원이 모니터 상에서 뭔가를 발견하곤 안선생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실종 후 사망 처리라고 되어 있는데요…
잠시만요… 실종 후 이 분을 찾는 전단지가 등록되어 있는데요…”

안선생은 연신 고개 수그리며 감사 인사를 하며 시청을 빠져나왔다. 시청 계단을 내려오면서 안선생은 민원실 직원이 프린트 해 준 전단지를 쳐다 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 들었다. 혹시 민경삼이 자식들과 사이가 안 좋아 집을 나왔고 자식들이 아버지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끝내 사망 신고를 한 것인가?

지금으로선 이 추론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렇지만 지난 번 민경삼의 쪽방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그 사람은 누구인가? 경찰에도 아무 말 하지 않는 민경삼의 모습을 보고 안선생은 필시 민경삼의 아들이나 인척 관계의 사람이 한 소행이라 추측하지 않았던가?

안선생은 다시 교장실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에 책상 위 스탠드 하나 켜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어 있다. 그의 손에 쥐어 진 전단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낮엔 전단지의 사진을 유심히 보지 않아 몰랐는데 지금 이 전화 번호로 전화를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면서 사진을 자세히 쳐다보니 흐리고 상태가 좋지 않은 사진이었지만 그 사진은 분명 민경삼의 사진이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의 노인의 사진이었다.

아버지를 찾는 전단지에 아버지의 사진이 아닌 남의 사진을 넣었다? 그것을 실수라 할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닌 동명이인인가? 하지만 주민등록번호는 맞지 않았던가?

하는 수 없다. 전화를 해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안선생은 자신이 전화를 거는 것이 주제 넘는 일이 아닌지 고심했는데 이대로 그냥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아 무거운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긴 신호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고 이윽고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민경삼씨라구요…”

그러자 상대방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당황한 표정의 안선생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핸드폰 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네 전화가 끊겼네요.
저, 민경삼씨라고….”

그러자 야멸찬 목소리의 여자의 목소리가 안선생의 말을 사정없이 잘라 버렸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예?”

“전화 잘 못 거셨다고요… 끊습니다”

전화는 끊어져 버렸고 황당한 표정의 안선생은 멍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지 못 하고 있다. 잠시 후 떨어뜨리듯 수화기를 내려 놓는 안선생…. 아마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 한 것 같다.



기사 등록일: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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