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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럼) 법정스님의 입적
내 나이 20대 중반 시절에 좋아했던 어느 여자가 있었다. 불교를 믿는 여자였는데 만난 지 100일 되던 날 각자 선물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종로2가에 있던 종로서적에 가서 선물할 책을 골랐다. 나는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그녀는 법정의 ‘무소유’를 골라 서로 선물을 했다. ‘무소유’는 범우사에서 나온 문고판이었는데 책을 받으며 “이 분이 어느새 책을 다 쓰셨나” 라는 생각을 했다.

-독재에 항거했던 스님-
스님 이름을 처음 대한 것은 73년 말 ‘민주회복을 위한 유신헌법 개정요구 청원운동’에서였다. 72년 10월17일 계엄령 선포와 함께 시작된 유신헌법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헌법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청원운동을 시작한 분은 사상계 대표였던 장준하 선생이었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로서 만주에서 군복무 할 때 장준하는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장준하는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대통령 할 수 있으나 박정희만큼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장준하가 유신헌법 개정에 앞장 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3년 12월에 시작된 유신헌법 개정운동 100만명 서명운동은 1주일 만에 40만 명을 돌파해 이에 위협을 느낀 유신정권은 74년 1월 긴급조치를 발동해 헌법개정운동을 원천 봉쇄했다. 유신헌법 개정운동 발기인 30명 중에 법정스님이 있었다. 종교계 인사들로는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기독교(기장)의 김관석, 김재준, 문동환, 안병무 목사, 불교계는 법정스님 한 분이었다.

종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종교(宗敎)는 으뜸 되는 가르침, 즉 최고의 가르침이다. 수많은 종교가 있고 종교가 세속에 물들면 안되지만 세상을 위해, 인간구원을 위해 종교가 있는 만큼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세상과 인간의 모든 문제,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고 소외된 이들,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위해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20대 중반 청년들에게 법정스님이 개헌청원에 발기인이 되었다는 것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인혁당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을 접고 수행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독재정권은 대법원 상고가 기각되고 하루도 안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을 사형 시켰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죄 없는 그들을 우리가 죽인 거나 다름이 없다고 자책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독재자들에게 조작극이라고 가장 아픈 곳을 찌르자, 보란 듯이 서둘러 사형을 집행한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박해를 받으니까 증오심이 생기더군요. 내 마음에 독을 품는 게 증오심인데 그때 ‘이래선 수행에 도움이 안 되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이탈하는 게 괴롭고. 중노릇하는 내 본분이 뭐냐고 스스로 물었지요. 본래 자리로 돌아가자. 해서 산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지금도 세상일에 관심을 안 가질 수는 없지요.”

세상사에도 관심이 많던 법정스님은 이명박 정권 초기 대운하를 밀어붙이던 2008년 4월20일 길상사에서 행한 법회에서 "근래에 와서 이 땅의 생태계가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다. 주위를 보면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허물고 파헤쳐져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며 "그런 중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 사업으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이 땅의 무수한 생명체를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이라며 반드시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소유를 몸으로 실천한 구도자-
수행자, 구도자생활을 하면서도 법정스님은 1994년 봉사활동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조직해 수십 명의 학생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무상보시(남을 돕고 도왔다는 사실조차 잊어 버리는 경지)를 했다. 샘물이 고이면 퍼내듯 출판사에서 인세가 들어오면 무상보시를 하고 그러다 정작 스님은 병원비가 없어 길상사에서 빌려 병원비를 한적도 있었다 한다. 사찰 주지 한번 해본 적 없이 길상사 회주(법회나 모임을 이끄는 사람)를 잠시 맡았을 뿐 이었다.

수필집 ‘무소유’에서 법정스님은 난 키우던 이야기를 하면서 난에 쏟은 정성을 집착이라 표현했다. 어떤 스님이 보내준 난을 3년간 정성껏 키우며 “이런 정성을 부모에게 쏟았으면 진작 효자 소리 들었을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난 때문에 갈 곳도 못 가고 갔다가도 서둘러 돌아와야 하고 여름에는 서늘한 곳을 찾아 겨울에는 방안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난을 키우던 정성을 집착이라 하면서 친구에게 키우던 난을 주고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끼며 하루에 한가지씩 버려야겠다 결심했다고 피력했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이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이유는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처절하게 삶과 투쟁하고 고뇌하면서 올바른 삶의 길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은 종교간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데도 큰 역할을 해 길상사 창건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을 초청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특별강론을 하기도 했다. 또한 길상사 마당의 관음보살상을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서울대 최종태 교수에게 맡겨 화제가 되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스님은 55년 출가를 결심하고 안국동에서 효봉 스님을 만나 불문에 들었다. 4년 후 양산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1996년 길상사를 창건했다. 길상사는 청암장이라는 한식당으로 김영한씨가 51년 인수해 대원각이란 요정을 만들었다. 민주정치가 아닌 밀실정치가 한창이던 독재정권 때에는 대원각, 삼청각, 오진암, 대하등 요정이 정치의 주무대였다. 대원각 주인 김영한씨는 87년 L.A.에서 만난 법정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할 테니 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거절하는 법정스님을 김영한씨는 10년을 졸라 시가 1,000억 원의 요정이 1996년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로 변했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행동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다 실천할 수 없는 일이다. 무소유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으로 옮긴 법정스님은 중생들이 생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이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오충근 기자)

기사 등록일: 20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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