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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파리, 5월
몇명의 여고생들도 한 반 친구의 관 앞에서 목이 메여 울고 있었다. 한 여고생이 "17살의 앳된 우리 친구(박금희)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고 절규하며 애국가를 불렀다. 당시 언론들은 광주시민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라고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내 기사에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흐느끼는 장면을 묘사했다. 시민들의 시위와 항거가 북한의 사주나 공산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질서를 지키려 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열망한다는 느낌을 취재 내내 받았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으로 기사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80년 5월 광주를 취재했던 독일 기자 게브하르트 힐셔-

온 천지가 생동감 있는 초록색으로 갈아입는 화사한 5월, 푸릇 푸릇 돋아나는 새싹 위로 5월의 눈 부신 햇살이 내려쪼인다. 5월의 햇살은 대서양 건너 파리의 뻬르 라세즈 공동묘지에도 태평양 건너 망월동에도 시카코 헤이마켓에도 어김없이 비출 것이다.

-5월 파리 꼬뮨-
나폴레옹 3세(나폴레옹의 조카)의 자유제국 치하에서 프랑스 자본주의는 크게 발전해 자유무역체제가 성립하고 식민지 쟁탈전에 끼어들어 세계 도처에 막대한 식민지를 차지했다. 그러나 1870년 9월 보불전쟁(프랑스-프러시아 전쟁)에서 패해 파리는 적군에 포위되고 정부는 베르사이유로 피신해 국방정부를 세웠다. 결사항전을 결의한 파리 주민들은 정부가 빠져나간 자리에 자치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포위한 프러시아군을 상대로 애국적 투쟁을 전개했다. 세계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계급이 세운 자치정부를 파리 꼬뮨이라 한다.

파리꼬뮨은 단명했다. 1871년 3월18일-5월28일 까지 고작 70일 존립했던 정부다. 베르사이유 정부군은 프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으며 꼬뮨을 진압했다. 마지막 꼬뮨 전사 147명은 뻬르 라세즈 공동묘지로 퇴각해 묘석을 엄폐물 삼아 최후의 항전을 벌였으나 총탄이 떨어져 항복했다. 정부군은 이들은 묘지 벽에 세워놓고 총살 후 미리 파 놓은 웅덩이에 묻었다. 이튿날 꼬뮨 최후의 보루 방데 요새가 함락되고 정부의 무자비한 보복이 자행되었다.

진압기간 중 약 3만명이 죽었는데 세계 최고의 문명도시 파리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에 전세계가 망연자실했다. 파리 꼬뮨은 대혁명이래 가두폭력에 의한 혁명으로 정권을 잡는 프랑스 구시대의 마지막 산물이라는 해석도 있고 사회주의 혁명에 의한 최초의 노동자 정권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파리꼬뮨을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는 가두폭력에 의한 정권 쟁취가 사라졌으니 구시대의 사망증서라는 해석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5월 광주항쟁-
김재규의 총성으로 유신시대는 끝났다. 이듬해 봄,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민주의 봄을 기다렸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 뽑는다고 말 해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이 오려나?” 라고 신문에 기고해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봄은 쉽게 오지 않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바로 그것이었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나라, 머리 길게 길러도 경범으로 잡혀가지 않는 나라, 술집에서 정부 시책 비판해도 괜찮은 나라, 금지곡 없이 듣고 싶은 노래 마음껏 들을 수 있는 나라, 군사독재가 아니라 삼권 분립으로 민주주의가 시행되는 나라, 헌법에 보장된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국민들은 원했으나 현실을 달랐다.

5월15일 신군부는 전국에 계엄령을 내리고 돋아나는 민주주의 싹을 잘랐다. 5월18일 비상계엄 철폐를 외치며 광주 전남대 교문에 100여명이 모여 시위를 했다. 7공수 33대대, 35대대는 시위대는 물론이고 일반 행인들에게도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사북사태, 부마항쟁 때 무력진압으로 효과를 보았던 공수부대는 이번에도 무력진압을 시도했다.

무차별 진압에 분노를 넘어 두려움을 느낀 광주시민들은 시위와는 무관하던 일반 시민들, 중. 고교생들까지 시위에 합세했다. 이렇게 시작된 항쟁은 27일 아침까지 이어져 끝까지 저항하던 시민군들은 대부분 사살되고 계엄군이 도청을 접수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광주항쟁에 대해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웬트워스 대학교 인문사회학과 교수)는 “하나의 사회운동은 여타 다른 사회운동과 상관관계 속에서 힘을 얻어 나타나게 된다. 지난 68년 베트남전 당시 체코, 불가리아, 멕시코, 미국 등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인 운동이 전개되었다. 명백하게 적국이었던 미국과 베트남에서 같은 내용의 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은 내셔널리즘을 초월한 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80년 광주항쟁은 87년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였고 87년 필리핀 민중항쟁, 88년 버마, 92년 태국, 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운동 등 아시아 여러나라 사회운동을 불러 일으킨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한 지역의 사회운동이 국제적 상관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실례이다.”라며 광주 항쟁을 높히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광주항쟁에 대해 “전두환은 대통령도 아니다. 이 비극을 국민들이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 인간으로서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국 국민을 그렇게 수백 명을 죽일 수 있나. 우리 역사에 길이길이 크게 기록돼야 한다."며 비판했다.

광주항쟁을 진압했던 신군부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했으나 6공화국부터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되었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문민정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로 규정하며 광주항쟁을 평가했다.

-시민군, 자치세력-
광주항쟁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민군이다. 시민군은 5월21일 편성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공장노동자, 목공, 구두닦이, 술집 종업원, 건설노동자, 일용근로자들이었다. 상황실장 박남선은 골재 채취 차량 운전사, 기동타격대장 윤석루는 자개공, 경비대장 김화성은 식당 종업원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했던 인물이 윤상원이었다. 윤상원은 시민군을 이끌고 최후의 전투를 벌이다 진압군 총탄에 희생되었다. 윤상원이 없었으면 광주항쟁은 부마항쟁이나 사북사태처럼 잊혀졌을 것이다. 윤상원을 비롯한 마지막 시민군은 개죽음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죽음으로 도청을 지켰다.

시민군이라고 하지만 정치적 이념이 투철하거나 강고한 의식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상황에 휩쓸려 무고한 이웃 사람들이 계엄군 총칼에 쓰러지고 무차별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 분연히 일어섰지만 그들은 무직자 부랑자에 불과했다. 시민군을 조직적으로 이끈 것은 윤상원이었다. 진압군이 도청에 진입했을 때 모두 도망 가고 아무도 없었다고 상상해보라. 그거야말로 불량배들이 난동 부리다 도망 간 것 아닌가?

윤상원은 마지막 외신기자회견에서 “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 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볼티모어 선의 브래들리 마틴 기자는 “그의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30년이 지났다-
아시아의 파리 꼬뮨이라는 광주항쟁이 30년 지났다. 30년이란 세월 속에는 무엇이 녹아 있을까?
역사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30년이란 긴 세월이 아니다. 30년 동안 우리는 광주의 죽음 앞에 분노하고 때로는 좌절했으나 자기성찰이 있었는지 반성이 있었는지 생각해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지난 2년간 세상은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다.
역사는 늘 그래 왔으니까. 역사적으로 공인 된 프랑스 혁명을 아직도 ‘사탄의 장난’으로 치부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독일에는 히틀러를 숭배하는 그룹도 있다. 역사라는 도도한 강물 앞에 장애물이 없을 수 없다. 때로는 돌아가야 하고 때로는 막히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흐르면서 진보해 결국 대해에 도달할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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