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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말이 동양인으로서는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게 하는 단어이자 세계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베리아 반도에 붙어 있는 크지 않은 나라 포르투갈은 사람들의 체구도 서양인답지 않게 크지 않아 토마토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15세기 말 이 나라에서 태어난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는 뛰어난 항해술로 인도항로를 개척해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인도항로 개척을 세계 역사상 2대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포르투갈의 인도항로 개척으로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은 앞 다투어 동양의 식민지 사냥에 뛰어들어 본격적인 서세동점이 시작되었다. 동양에서 생산되는 향신료가 이들의 주 목표로 항로개척으로 유럽과 동양간 직거래가 가능해져 향신료 중개무역으로 부를 거머쥔 오스만 터키제국의 몰락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식민지 사냥에 나선 유럽열강에 인도, 중국은 훌륭한 먹이였다.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차린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는 서로 각축을 벌이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패퇴, 영국과 프랑스의 각축장이 되었다.

17세기 중엽 영국은 동인도회사에 징병권, 사관임명권, 교전권을 부여하는 둥 국가적 지원을 한 끝에 프랑스 동인도회사를 누르고 우월적 지위를 차지했다. 그 후 영국은 동인도회사의 지위를 점진적으로 박탈해 국왕직할로 운영하다 세포이 반란 후 회사 기능을 정지 시키고 인도의 모든 통치기능을 빅토리아 여왕에 헌납했다.

지난 목요일 화물선을 타고 캐나다 해군기지 Equimalt에 입항해 조사를 받고 있는 490명의 타밀계 주민들도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이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통치할 때 인도라는 개념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이번에 입항한 490명의 타밀계 주민들은 스리랑카 국적으로 스리랑카는 인도 밑에 위치한 섬나라로 차 재배의 최적지로 여겨졌다. 1948년 실론(Ceylon)이란 이름으로 영국 자치국 지위로 독립했다. 1972년 원래 국명이던 스리랑카로 다시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통치 하면서 실론에서 생산되는 차(Tea)에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차가 고급기호품으로 차를 수입하는데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영국은 이를 위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싼값에 구입해 중국에 팔아 그 이익금으로 차를 수입했다.

이후 영국은 충분한 양의 차를 생산하기 위해 현지노동력을 이용했는데 스리랑카 주민들은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발해 차 생산에 비협조적이었다. 스리랑카는 싱할레족의 단일민족 국가였는데 영국은 식민통치에 반발하는 싱할레족을 포기하고 타밀족 이주정책을 펴 타밀족을 차 생산에 투입시켰다.

영국의 식민정책에 따라 스리랑카에 이주해온 타밀족은 전체 인구의 약 15%를 차지했다. 그래서 단일민족 국가였던 스리랑카는 본의 아니게 다인종국가가 되었다. 문제는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 식민지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이 아무 대책 없이 물러난 스리랑카에는 싱할레족과 타밀족과의 반목,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의 식민정책이 아니었으면 타밀족이 스리랑카에 이주할 이유도 없었고 두 종족이 갈등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유럽인들의 기호품 때문에 타밀족의 민족적 비극은 시작되었다.

인구의 약18%를 차지하는 타밀족은 싱할레족과 종교도 다르고(싱할레족은 불교, 타밀족은 힌두교) 문화도 달라 정치, 경제면에서 소수로 밀려나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되었다.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싱할레족은 법적, 제도적으로 타밀족을 차별하고 있다. 타밀족은 교육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그들이 독립된 나라를 이뤄 싱할레족의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전혀 탓할 일이 아니다.

타밀족이 분리독립운동을 시작한 것은 1965년이다. 그리고 무장투쟁으로 바꾼 것은 1983년부터다. 타밀족이 모여 사는 자프나 반도에서 정부군 몇 명이 살해되자 군, 경이 동원 되 1,000명 이상의 타밀족을 학살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무장투쟁이 27년을 이어오다 작년 5월29일 정부군에 항복하면서 기나긴 무장항쟁은 종지부를 찍었으나 내전의 원인은 한가지도 해결된 것이 없어 폭력 등 물리적 저항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던 갈등이 표출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타밀족 불행의 씨앗이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에 있었지만 그들의 불행을 악화시킨 것은 인도, 중국 등 신흥강국이었다. 인도는 스리랑카 내전을 이용해 자국영향력 증대를 꾀했고 중국, 파키스탄은 내전을 이용한 무기수출로 돈을 챙겼다.

내전으로 희생당한 인명피해가 10만 명에 이르고 난민이 25만 명에 이른다. 스리랑카는 적도부근에 위치한 열대지방이지만 1,000m 넘는 고산지대가 많아 차 재배에 천혜적 조건을 갖춘 죄로 유럽인들에게 차의 오묘한 맛을 안겨준 결과 그 후손들이 화물선에 실려 몇 달 항해 끝에 캐나다에 도착하는 결과가 되었다.

제3세계 분쟁의 원인은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관련이 있다. 6.25라는 내전을 겪었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를 받은 역사적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타밀계 난민의 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기사 등록일: 201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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