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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국치일에 생각나는 어두운 근대사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승만은 이완용 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완용은 있는 나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 팔아먹은 역적”이라고 맹 비판했다.
이승만은 권력욕과 명예욕이 심했던 사람이다. 그가 권력과 명예에 병적으로 집착한 것은 왕실에 대한 열등감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이승만은 알려진 대로 양녕대군의 5번째 서자 이흔의 15대 손이다. 양녕대군이 왕이 되었으면 비록 방계일망정 자신도 왕자가 되어 어쩌면 왕위 계승 후보에라도 올랐을 텐데 충녕대군이 왕이 되어 그 계열로 왕위가 계승되었으니 말이다.
이승만은 젊은 시절부터 왕실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고 대통령을 지낼 때 왕실 재산 국유화 한 일이나 왕손들 귀국을 막은 것도 그런 열등감의 발로라고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뉴라이트들은 이승만을 국부라고 숭배하지만 국부로 불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이 있다. 하와이 교포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해 번 돈으로 기부한 독립운동 자금을 부동산 구입에 쓰고 담보대출 상환도 떠넘겼다는 사실이 사료발굴가로버트 장에 의해 밝혀졌다.
신채호, 김창숙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이승만을 이완용보다 더 나쁜 역적이라고 비판한 것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미국에 위임통치 해달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1차대전이 끝나고 전승국들이 파리에서 모여 전쟁 수습을 했다. 이것을 파리강화회의 라고 한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나온 것도 이때다.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독립을 해야 하는데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패전국 식민지에 해당되는 것이지 전승국 식민지는 이 원칙과 상관이 없었다. 사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헛구호에 불과했고 심하게 말한다면 약소국가를 농락한 “국제 사기”였다.
윌슨의 말을 믿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린다고 맨주먹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이 3.1운동이다. 파리강화회의에 기대를 걸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실망 중에도 자주독립, 완전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일본이 전승국이므로 독립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미국과 비밀리에 접촉해 일본을 대신해 위임통치 해줄 것을 교섭했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망발이었다. 외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이국땅 중국에 와서 고생을 하는데 미국에게 위임통치 해달라니.
약 1주일전 한겨레 신문은 미 의회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신문검색 서비스(chroniclingamerica.loc.gov)를 이용해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찾아냈다. 말로만 떠돌던 이승만의 “고종 밀사설”의 실체다.
러일전쟁이 끝날 무렵 이승만과 윤병구는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들이 무슨 자격으로 루즈벨트를 면담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신문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친일단체 “일진회” 자격으로 면담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뉴욕 데일리트리뷴> 1905년 8월4일치 7면에 실린 ‘오이스터베이의 한국인들’이란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는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온 윤병구와 이승만이 “우리는 황제의 대표자가 아니라 ‘일진회’라는 단체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전달할 것을 위임받았다”고 말한 것을 인용·보도했다. 기사는 또 이들이 “황제는 한국인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천 명의 회원들로 이뤄진 일진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곧 국무를 장악하고 정부 구실을 할 것”(will take hold of affairs and conduct the government)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전했다.
일진회는 우리의 국권이 쇠약해지던 조선 말에 생긴 친일매국단체다. 1904년 8월 대표적 매국노 송병준이 일본을 배경으로 유신회를 조직했다 일진회로 단체명을 바꾸고 그 해 9월 조직된 동학잔존세력 이용구가 만든 진보회를 매수해 일진회에 통합 흡수하였다.
뉴라이트의 선배인 일진회는 일본정부와 군부에서 지원하는 자금으로 운영되었고 일본이 대륙경영의 일환으로 부설한 경의선 철도공사나 북송운송대의 군수품 운반에 회원들이 무보수로 일했다. 일진회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기 10일 전 일진회는 “일본의 보호, 지도를 받기 위해 내치, 외교권을 일본에 일임해야 한다”고 일진회 선언서를 발표해 친일매국단체임을 나타냈다.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어 군인들이 의병을 조직해 일제에 무장항쟁을 시작하자 일진회는 “자위단”을 조직해 의병 토벌에 앞장서 의병을 “폭도”라고 규정했다. 일진회는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하자 “사죄단”을 조직해 일본에 보내기도 했고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 8개월 전에는 “한민족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한, 일 양국은 합병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이런 친일매국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루즈벨트 대통령과 면담한 것이다. 이렇게 외세의존적인 이승만은 해방 후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에 되어 친일파를 기용해 민족정기를 흐리게 한 장본인이 되었다.
이승만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를 앞두고 평화선을 선포한 것은 그의 치적이지만 명예욕, 권력욕으로 평화선 선포보다 몇 배의 과오를 남긴 근, 현대사의 인물이다.

기사 등록일: 20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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