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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캐나다의 젊은 영웅, 테리폭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언제 어디선지 모르게 불쑥 나타나 놀라게 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테리폭스에게도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년에게 느닷없이 찾아 온 반갑지 않은 손님, 첫번째 손님은 교통사고였다.
18세 되던 해 11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차는 못쓰게 되었으나 크게 다친 곳 없이 오른쪽 무릎이 쑤시는 정도였다. 북미의 겨울은 농구시즌이다. 테리는사이몬프레이저 대학 농구선수로서 겨울 시즌 경기에 열중했다. 가끔 다리에 통증이 찾아왔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교통사고 후유증이려니 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이듬해 3월 심해지는 통증에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악성골종양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반갑지 않은 두 번째 손님은 간단히 말해서 암이다.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무릎 위 15cm까지 잘라내는 수술, 그는 의족을 달았다. 승부욕이 강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강한 집념의 테리는 다리 절단 수술 후에도 장애인 농구대회에 나가 3회 우승을 차지했다.
승부욕이 강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는 테리는 암과의 싸움도 이길 것을 생각했다. 그는 투병 생활 중 스포츠 잡지에서 뉴욕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의족을 달고 완주한 딕트라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이거다, 바로 이거야.” 퇴원 후 그는 의족을 달고 마라톤 연습을 시작했다. 테리는 고등학교, 대학 시절 농구선수뿐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 활약해 마라톤이 낯선 경기가 아니었다.
79년 10월, 그는 캐나다 암 협회에 편지를 썼다. “나는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도전을 해보고 싶다. 내년 4월 캐나다 대륙횡단 마라톤으로 암 치료 연구 기금을 모으려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뛰어서 캐나다 대륙을 동, 서로 횡단 하겠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서 암 협회에서는 무모한 일이라 판단해 테리의 편지를 무시했다. 친구들도 가족들의 테리의 제안을 반대하거나 무시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한 사람도 할 수 없는 대륙 횡단 마라톤을 어찌 의족에 의지해 한다 말인가?
그러나 친구들도 가족들도 그의 생각을 꺾을 수 없었다. 80년 4월12일 그는 동부 뉴펀들랜드세인트죤스 바닷가에서 역사적 첫 걸음을 내딛었다. 암 치료 연구 기금 모금을 위한 마라톤이었다. 그의 마라톤 주법은 특이했다. 왼쪽 다리로 가볍게 두번 뛰고 의족을 한 오른쪽 다리를 한번 옮기는 식이었다. 몇달 간 연습을 했으나 적응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날은 몇 마일 달리지도 못했다. 의족은 생각과 달리 고장이 잦았다. 추위와 싸우는 것도 어려운 문제였다. 추위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은 주위의 무관심과 냉담이었다. 누구 한 명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었다. “캐나다 전 국민이 $1씩만 기부한다면”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마라톤 이지만 기부는커녕 관심 갖는 사람조차 없었다.
더구나 관심은 고사하고 경찰에서는 교통방해 한다고 잡아다 유치장에 넣기도 했다. 그러나 “져서는 안된다, 질 수 없다”고 생각한 테리는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 육신의 고통, 사회적 냉남과 무관심을 이겨내고 달렸다. 달리기에 익숙해지자 하루에 마라톤 풀 코스 정도를 달릴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하루 평균 37.6km를 달린 것으로 되어 있다. 마라톤 풀 코스가 42.195km니까 근접한 거리였다.
퀘백에서생각 치도 않았던 일이 생겼다. 시애틀의 한 라디오 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는데 방송국에서 그것을 내보냈다. 테리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내자 캐나다 T.V.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인터뷰를 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암이라는 절망적 병에서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 그것이 테리가 바라는 바였다.
외롭게 시작한 대륙 횡단 마라톤은 차츰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아침, 저녁 일기예보를 하듯 테리의 마라톤은 방송국에서 매일 보도하는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암세포는 그 순간에도 테리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매일 매일 쇠약해지는 몸을 갖고 그는 달리기를 계속했다. 암 연구 기금 100만불을 모으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온타리오 주에 도착했을 때 테리는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었다. 정치인, 사업가, 운동선수들이 공동 출연해 기금 모금을 도왔다. 그는 143일 동안 5,373km를 달렸다. 143일째 되는 날인 80년 9월1일 그는 온타리오선더베이 외곽지대에서 쓸어졌다. 구급차가 달려와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테리는 이듬 해인1981년 6월28일, 23년 전 그가 태어났던 날 세상을 떠났다. 대륙횡단 마라톤은 도중에 그만 두었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성공이었다. 100만불 기금 조성을 목표로 시작한 마라톤은 2,700만불의 기금이 모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캐나다는 조기를 달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테리를 애도했다. 피에르트루도 수상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테리폭스는 진정한 영웅”이라며 애석해 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올해가 30년이다. 그 동안 그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세인트토마스, 그가 쓸어져 마라톤을 그만둔 선더베이를 비롯해 캐나다 전역에는 그를 기리는 학교, 거리, 공원이 생겨났고 그의 유지를 담은 희망의 마라톤은 이어져 캐나다 전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희망의 마라톤 물결이 일었났다.
암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것이 테리폭스 개인에게는 불행이다. 운동 좋아하는17세 소년이 한쪽 다리를 잃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불행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노력과 집념으로 그 불행을 딛고 일어서 남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는 ‘희망의 전령’으로 승화 시켰다.
이것이테리폭스의 위대한 정신이고 남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그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 캐나다의 가치, 캐나다의 정신이 테리폭스를 젊은 영웅으로 만들어 해마다 9월이 되면 캐나다 5,000여 군데 학교, 전 세계 60개 국에서 희망의 마라톤을 열어 5억불의 암 연구 기금을 조성해 이 젊은 영웅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기사 등록일: 20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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