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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왕 즉위 60년으로 본 영국 왕실

순조실록 1832년 7월21일 기록을 보면 충청감사 홍희근이 순조에게 장계(보고서)를 올린 것이 있다. 이양선(외국선박)이 나타나 올린 장계인데 장계에 보면 “이 선박은 영길리국(英吉利國 혹은 대영국(大英國) 소속으로 그 나라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이며……”라고 한 대목이 있다.
1832년 영국왕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하노버 왕가의 윌리엄4세(1830-1837)다. 그래서 국왕의 성을 위씨라고 쓴 모양이다. 영국의 왕조는 왕가가 바뀌더라도 국가는 그대로 유지된다. 우리처럼 왕이 왕씨에서 이씨로 바뀐다고 나라 이름까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서 많은 왕조가 바뀌면서 나라가 유지되었다.
청교도 혁명 때 클롬웰에게 처형당한 챨스1세는 스튜어트 가문이다. 부왕 헨리8세가 시작한 영국국교 성공회 주교들과 개신교도들을 대량 학살해 블러드 메리(Blood Mary)로 불리는 메리1세는 튜더 가문이다. 영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여왕으로 우리들에게 5월 세 번째 월요일 하루 쉬게 해주는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의 하노버 가문이다.
영국왕은 영어 못하는 외국인도 될 수 있는데 하노버 가문 출신으로 영국왕이 된 죠지1세는 독일인으로 영어를 못 하지만 13년 동안 왕 노릇을 했으니 이민 와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부인 메리와 영국을 공동 통치한 윌리엄3세는 네덜란드 공화국 통령이기도 했다.
외국인도 왕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럽 왕족들이 결혼으로, 대부분 정략결혼이지만 결혼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같은 게르만 혈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로트렉도엘리자베스 2세와 먼 친척이 된다. 프랑스인과 영국인이 먼 친척이라는 것이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지만.
하노버 가문의 뒤를 이은 것이 윈저 가문으로 죠지 5세부터 4대 째 내려오는 왕가다. 이번에 2월6일로 즉위 60년, Diamond Jubilee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도 윈저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죠지6세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았다.
죠지6세는 왕위에 관심도 없고 평범하고 조용히 살고자 했으나 뜻밖에 일로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랐다. 형 에드워드8세가 미국 국적의 평민, -더구나 그 평민 여자는 유부녀였는데-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내놓고 하야해서 왕위를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죠지6세는 겨우 3주 대권 교육 받고 왕위에 올랐다. 왕이 직접 통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죠지6세는 대공황의 여파와 2차 대전 등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국왕이었다. 3대 세습을 위해 몇 년씩 대권 교육을 받는다거나 아버지 때부터 대권 교육 받았다며 대통령 하겠다는 노처녀도 있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가방 끈 길다고 공부 잘하는 게’ 아니다.
에드워드 8세가 유부녀 심슨 부인과 결혼하려 왕위를 포기한 것은 ‘세기의 사랑’이라 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왕위를 물려준 에드워드 8세는 윈저공으로 신분이 바뀌어 여생을 프랑스에서 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살려고 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무산되었다.
‘세기의 사랑’은 무수한 화제를 뿌렸고 윌리엄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오드리햅번)와 신문 기자 죠(그레고리펙)의 유쾌하면서 애틋한 이야기에 암시 되기도 했다.
현재 국왕인 엘리자베스2세의 아버지인 죠지6세는 영화 ‘왕의 연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왕이기도 하다. 2011년 아카데미 상 7개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올라 4개 부문의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죠지 6세가 말 더듬는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영화가 제작 될 당시 여왕은 이 영화의 제작을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이유는 어릴 때 아버지의 말 더듬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의 연설’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죠지6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부인 엘리자베스보우스-라이언은 Queen Mother(왕대비)로 영국인들의 존경과 사랑 속에 살다 2002년 101세로 세상을 떠났다. 왕대비는 전형적인 영국 여자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국민들과 친근하게 지내려 애를 써 남편 죠지6세와 함께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부부가 함께 우방국을 순방하며 참전을 독려하고 독일군의 공습이 심해도 런던을 떠나지 않는 둥 불굴의 정신으로 국민들 독려해 히틀러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로 지목했다.
왕대비는 손위 동서인 심슨 부인과 사이가 나빴다. 에드워드 8세는 퇴위 후 윈저공 신분으로 ‘전하’라는 호칭으로 불렀지만 심슨 부인은 아무런 칭호도 없었다. 그 이유는 왕대비 때문 이라고 한다. 왕대비는 심슨 부인을 그 여자(that woman)이라고 불렀고 심슨 부인 역시 왕대비가 통통하고 음식을 즐겨 해 ‘쿠키’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 나이에 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공주라는 신분에도 수송, 탄약관리의 업무를 맡아 평민들과 똑 같이 훈련 받고 근무했다. 이것을 노블리스오브리제라고 하는데 병역 기피성면제자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한국인들은 당분간 노블리스오브리제를 입에 올리기 곤란할 것이다.
여왕의 남편은 필립공이다. 그는 그리스 왕위 계승권자였고 덴마크 왕실의 일원이었다. 그는 여왕과 결혼을 위해 그리스 왕위를 포기했다. 왕대비는 필립공과의 결혼을 몹시 반대해 필립공을 ‘훈족(흉노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60년 전 2월6일 즉위한 엘리자베스2세는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국왕이고 가장 오래 재위한 왕으로 영국, 캐나다, 오스트렐리아를 비롯해 영연방 16개국의 국왕이자 영국 국교인 성공회 수장이고 그외 다양한 직위를 갖고 있다.
재위 64년을 기록한 빅토리아 여왕 이 후 즉위 60년 기념식은 영국 왕실 115년만의 경사로 기념행사는 10월까지 진행된다. 날씨 좋은 여름에 행사가 집중 되는데 특히 7월에 열리는 30회 런던 올림픽과 기념행사가 겹쳐 영국인들은 기대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국의 불문율대로 여왕은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포틀랜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아들 앤드류가 참전하는 만큼 어머니로서 걱정이 된다”는 말로 전쟁 반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필자는 왕정보다는 공화정을 선호하지만 제도의 문제보다 사람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공화정이 좋다지만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다 국립호텔 예약해 놓은 못된 대통령 보다는 국민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왕이 있다면 그런 국왕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2015년 9월이면 여왕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 기록을 뛰어넘어 신기록을 세운다. 여왕이 만수무강 하기를, 신이여 여왕을 보호 하소서. God Save the Queen.

기사 등록일: 201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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