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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형 노블리스오블리주의 최후(1)
사회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
로마는 병농일치 제도였다. 농업국가였으니까 대부분 농사를 짓다가 혹은 다른 생업에 종사하다 전쟁이 나면 군인으로 나가는데 병역의무 비용은 자비였다. 자비로 전투장비 구입을 하다 보니 돈 없는 사람은 경보병이나 후방의 비무장요원이 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좋은 장비를 구입해 중무장 보병이나 기병이 되었다.즉 부자일수록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병역의무에 돈이 많이 들어갔다.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로마 귀족들은 평민 노예보다 신분만 다른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 실천도 달랐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군은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를 침공했다. 16년 전쟁 기간 동안 로마군은 집정관 13명이 전사하는 악전고투 끝에 한니발군을 이겼다. 이런 로마정신이 노블리스오블리주의 주춧돌이 되었다.
기관지확장증 이라는 꾀병으로 병역 면제받은 실질적 병역 기피자 이명박을 ‘경제 살린다’는 한 마디에 대통령으로 뽑아준 한국사람들에게는 한니발과 전투에서 전사한 13명의 집정관 죽음이 개죽음으로 비출 것이다. 개죽음 할 게 아니라 “경제를 살려야지”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굳이 발음 하기도 힘든 프랑스 어로 ‘노블리스오블리주’라고 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잔타크가 활약하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100년 전쟁, 실제로는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 하며 116년 계속됨, 때 일이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 치열한 접전 끝에 칼데를 점령했다. 끝까지 항전하던 프랑스는 고립무원이 되자 항복했다. 항복 사절단에게 에드원드 3세는 “칼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누군가 항전에 책임을 져야 한다. 6명만 처형하겠다.” 누가 자청해서 처형을 당하겠는가?
칼데시 최고 부자였던 생 피에르가 처형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러자 시장도 나섰다. 그렇게 해서 6명의 귀족이 교수형을 당하기 위해 형장으로 향했다. 마침 임신을 하고 있던 왕비 필리파가 태어날 아기를 위해 6명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을 청원했다. 왕도 6명의 희생정신에 감동되어 처형을 취소했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노블리스오블리주라는 단어가 생겼다.
-토종 노블리스오블리주 경주 최부자-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존경할만한 노블리스오블리주에 걸 맞는 분이 없을까? 그런 분이 있다. 12대 400년을 만석꾼으로 내려온 경주 최부자집이 한국을 대표할만한 노블리스오블리주다.
속담에 3대 가는 부자 없다 했는데 경주 최부자는 12대 400년 넘는 세월을 만석꾼으로 살았다. 그 비결은 노블리스오블리주에 있다.
최부자집의 1대 부자, 부자로서의 기초를 닦은 인물은 최진립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군에 포위 당하자 “국왕을 구해야 한다”고 공주 좌영장(左營將) 최진립은 충청감사 정세규 우영장심일민, 별장 황박, 중군 이건, 참모관 이경선, 방량차사원 이상재, 군기차사원김홍익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출동해 용인 험천에서 적군과 조우, 치열한 전투 끝에 감사 정세규, 우영장심일민만 살아 남고 최진립 이하 나머지는 전사했으니 최진립이 68세였다.
1대 부자 최진립부터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최치원의 17대 손 최진립은 무인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서생포, 도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공이 인정되어 국가로부터 땅(공신전)을 받았다. 그 땅을 발판으로 재산을 일구었는데 무리하지 않고 소작과 반반씩 나누는 파격적 방법으로 인근 소작들은 앞 다투어 최진립의 소작이 되고자 했다.
-최부자집의 가훈-
최진립은 유언을 남겼는데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말 것”. 진사는 벼슬이 아니고 과거 합격증이다. 진사가 되어야 복시를 보거나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도 생기는 것이다. 즉 양반으로서 무식이나 겨우 면하고 재산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신분만 유지하라는 것이다.
경원부사로 있을 때 억울한 일로 귀양살이를 경험한 최진립으로서는 당연한 유언이었다. 유언을 성실하게 받든 후손들은 9대 진사라는 희귀한 기록을 세웠다.
3대 최국선은“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고 파장에는 물건을 사지 마라”“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을 남겼다. 흉년이 들면 가난한 사람, 없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지만 가진 사람들은 재산을 늘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당장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재산을 내놓기 때문이다. IMF를 겪어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심지어 ‘죽 빼기 논’이라 해서 죽 한 그릇에 논 한 마지기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래도 죽 한 그릇에 장자권 넘겨 받은 야곱 보다는 양심적이랄까?
삼남(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최국선은 재산을 늘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이 파할 때 상인들이 팔지 못한 물건을 싼 가격으로 내놓을 때 물건을 사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나가 정당한 가격을 주고 물건을 샀다.
재산을 늘릴 기회에 최국선을 반대로 했다. 아들을 시켜 장롱에 보관 중인 담보로 잡은 땅문서 집문서를 가져오게 했다. “빌려간 돈을 갚을 마음이 있는 사람이면 담보가 없어도 갚을 것이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면 담보가 있어도 못 갚으니 문서가 무슨 소용이랴.”최국선은 채무자들의 빚을 모두 탕감했다.
흉년이 들자 최국선을 곳간을 헐고 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끓여 인근에 굶은 사람을 먹였다. 모두 굶어 죽게 생겼는데 나 혼자 갖고 있어봐야 뭐 하겠냐는 마음에서였다. 혹독한 흉년에도 영남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은 최국선 덕택으로 영남 사람들 10%가 최국선 덕을 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4대 최의기는“재산을 만석 이상 늘리지 마라”“과객은 귀천을 가리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라”는 말을 남겼다. ‘돈이 돈을 번다’고 돈에는 가속성이 있어 어느 시점이 지나면 멈출 수가 없고 재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전쟁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자본가들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 자본이 늘어나고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자본 더 높은 생산량을 요구한다.”고 술회했는데 최의기는 만석에서 멈추는 자족을 선 보였다.
최의기는 만석을 유지하기 위해 소작료를 50% 이하로 내린다던가 이웃을 위해 재산을 내놓았다. 최부자집의 일년 양식 소비가 약 3,000석이라고 하는데 1,000석은 가족들 하인들 식량으로 1,000석은 지나는 과객들 식량으로, 1,000석은 가난한 이웃들 나눠 주는데 쓰였다고 한다.
6대 최종률은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으라”는 말을 남겼다. 시집 왔으니 검소하게 사는 것을 익히라는 말인데 양반집에서 곱게 자란 며느리들은 3년간 거친 밥, 거친 옷을 입으며 검소하게 사는 삶을 배웠다.
로마 천년 제국이 유지된 것은 노블리스오블리주로 상징되는 귀족, 상류층의 로마정신에 있었듯 최부자집의 12대 400년 만석꾼도 근검, 자족, 이웃과 함께 하는 삶에 있었다. 로마정신이 사치 퇴폐 방종으로 타락하면서 로마는 쇠퇴의 길을 걷다 게르만 용병 오토아게르에게 망했다. 최부자집의 최후는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마지막 최부자 12대 최준-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했다. 11대 부자 최현식은 아들 최준(당시 26세)에게 살림을 맡긴 후 매일 황제가 계신 곳을 향해 절을 하며 울었다. 부친이 은둔생활에 들어가자 최준이 안팎 살림을 맡았다. 최준은 비밀독립투쟁단체인 국권회복단 경주대표로 가입했다.
국권회복단은 독립군 지원을 위해 결성된 비밀단체로 경상북도 지식인, 유림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국권회복단은 1. 국권을 회복할 것 2. 매년 정월 15일 단군 위패 앞에서 목적 수행을 기도할 것 3. 마음대로 탈퇴하지 않는다 4.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5. 이를 어길 경우 신명의 주벌을 받는다 6. 결사대를 조직하여 무력항쟁을 한다 는 6개항을 서약하고 단원이 되었는데 최준은 국권회복단 경주대표로 가입했다.
국권회복단은 독립군 양성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고 파리강화회의에도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등 조국독립에 열성적이었다. 최준은 국권회복단에 든든한 자금 줄이었다. 그리고 친구인 백산 안희제와 함께 백산상회라는 무역회사를 만들어 대동상회, 상덕태상회와 함께 독립운동의 자금조성 역할을 했다.
상덕태상회의 박상진은 독립운동 자금을 거부한 반역자 장승원을 처단했는데 장승원의 아들이 장택상으로 해방된 조국에서 수도청장, 장관, 국무총리를 지냈던 친일파 장택상은 개인적 원한으로 독립군 출신에게 보복을 가했다. 또한 박정희 둘째 형 박무희는 장승원의 소작을 지냈다.
-최준과 백산 안희제-
최준과 안희제가 경영하는 백산상회는 늘 적자였다. 조선팔도에 백산상회 지점이 있고 만주 중국에도 지점이 있는 요즘 말로 국제종합무역상사인데 거래대금은 상해 임시정부 독립자금으로 들어갔다. 늘 적자를 면치 못하는 백산상회는 주주총회 할 때마다 이사들의 증자 결의로 자본금 잠식을 막았다.
의령 출신 위대한 독립운동가 안희제는 국내와 임시정부의 자금 전달책이었다. 안희제는 일경에 체포되어 9개월 동안 70회의 고문을 받다 죽었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일본경찰도 고문 하다 사람 죽였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안희제가 죽기 몇 시간 전에 병 보석으로 석방했는데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8명을 고문하다 사형 시킨 후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했으니 일본 경찰보다 더 악독하다 할 수 있다.
최준은 안희제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줄 때 “저 돈이 반이라도 임시정부에 전달되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방 후 최준이 김구선생을 만났을 때 그 동안 자금이 전달된 장부를 건네 받고 한 푼의 오차 없이 자금이 전달 된 것을 알고 최준은 통곡을 했다.
“백산 이놈아 네가 나를 두 번 죽이는 구나”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 자금 대느라 애간장 말려 죽이고 자금이 제대로 전달 될까 의심했는데 한 푼도 오차 없이 전달 되었으니 그 동안 오해했던 최준은 죽은 친구 안희제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최준과 식산은행 총재 아리가미츠도요(有駕光豊)-
백산상회는 결국 부도가 났다. 만석꾼 최준도 독립운동 자금 대는데 한계가 있었다. 130만원, 요즘 화폐가치로 천억에 가까운 액수였다. 대출을 해준 식산은행은 최준의 재산을 담보로 잡고 있었다. 사태수습을 위해 식산은행 총재를 만난 최준은 “회사를 살려야겠소. 내 담보로 충분할 테니 대출을 더 해 주시오.”
전국적으로 존경 받는 부자 최준을 식민통치 협력자로 끌어들이는데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식산은행 총재는 기존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70만원을 더 대출해 주었다. 수백억이 더 생긴 것이다.
본격적으로 최준에 대한 회유공작이 시작되었다. 며칠 후 중추원 참의를 맡아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의 대가로 주어지는 직책이었다. “장사꾼이 무슨 정치를 알겠소.” 최준은 사양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총독부 문교부장(교육부 장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겨우 면무식이나 했는데 교육에 대해서는 더욱 깜깜합니다.”
일제의 회유를 물리치며 최준은 “이렇게 해서 친일파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부채 탕감해주고 거금 70만원을 더 대출해준 식산은행 총재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아리가(有駕光豊)총재가 최준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정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가친척들은 일제의 제안을 거부하면 보복 당할 것을 알고 전전긍긍했다. 이러다 최씨 집안 망하게 생겼다고. 동생 최윤이 찾아왔다. “형님 누군가 옷에 때를 묻혀야 합니다. 형님이 나설 수는 없고 제가 옷에 때를 묻히겠습니다.” 동생 최윤이 대신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해방이 되자 분노한 민중들은 식민지 착취의 창구 식신은행을 그냥 두지 않았다. 총재 아리가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최준은 아리가를 경주 집으로 데려가 안전하게 보호하다 일본으로 귀국 시켜 아리가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독립운동가와 식민지 은행 총재라는 용납할 수 없는 사이지만 인간적 정마저 무시할 수 없었다. 최준은 독립운동을 위해 전재산을 바칠 강한 정신의 소유자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기사 등록일: 20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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