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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형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최후(2)
해방, 교육사업에 전 재산 헌납
해방이 되며 식산은행에서 대출 받은 것은 원천무효가 되어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해방 전부터 백산상회 외에도 고려요업, 경성방직, 경남은행 대주주로 사업을 하던 최준은 농지개혁이 되며 농토를 다 내놓았다.
그러나 임야, 과수원 등은 제외되었는데 최준은 1947년 대구지역 지주들과 함께 토지, 현금을 출자해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최준은 남은 재산과 서적 7,200권을 대구대학 설립에 내 놓았다. 종손 최염씨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최준)가 전재산을 대학에 기증하려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시는데 “재산이 없어지는 게 섭섭하긴 했으나 할아버지 뜻에 따랐다”고 한다.
대구에는 계명대학(설립자 최해청)과 대구대학이 있었는데 5.16 군사 쿠데타는 두 대학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청구대학 설립자 최해청은 1947년 대구시보사 독립운동국장으로 있을 때 대중학술강연을 시작하며 대학 설립을 꿈꿨다. 독립운동국은 “해방 후 일제의 잔재가 다시 고개를 든다”고 최해청과 대구시보사 사장 장인환이 “독립운동의 생활화”를 위해 만든 기구다.
최해청은 1950년 청구대학을 설립해 처음에는 야간대학으로 출발해 개인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못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청구대학은 성장을 거듭하며 경북 지역의 대표 사학이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정권의 대학정비사업으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1966년 재단 경리직원 부정사건이 터졌다. 엎친 데 덮친다고 신축공사장에서 사고가 나 10명이 죽고 30명이 중경상 당하는 당시로서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청구대학 이사진은 사태 수습책으로 대학을 군사정권에 헌납하는 형식을 취했다. 박정희와 친하게 지내는 시조시인 노산 이은상이 청구대학 교수로 있었던 인연으로 이은상이 나서 박정희를 만났다. 이은상은 “내 고향 남쪽바다”로 시작되는 ‘가고파’를 작사했고 봄이 되면 누구나 한번씩 불러보는 봄처녀도 작사했고 민주공화당 창당할 때 창당선언문 초안도 작성했고 박정희 죽었을 때 추도시도 지었다.
이은상은 박정희에게 “대통령 백 년 할 것도 아니고 그만두면 뭘 하겠나? 회사 사장을 하기에도 우습고, 외국에서는 대개 대학 총장을 한다”고 박정희를 설득했다. 박정희가 생각하기에도 퇴임 후 대학총장 자리는 그럴 듯 했다. 공화당 의원 이동녕, 김성곤, 이후락이 청구대 이사로 등재되어 박정희 영향력 아래 들어 갔다.
뒤이어 대구대학도 ‘대학정비사업’을 피해가지 못했다. 문교부에서는 투자를 더하라고 하는데 최준은 더 이상 투자할 돈이 없었다. 정원감축을 하겠다는 문교부의 통보를 받고 최준은 이사로 있던 신현확에게 운영할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다. 신현확의 주선으로 삼성 이병철을 반도호텔에서 만났다.
최준이 물었다 “고려대학 설립자가 누군가?” “인촌(김성수)선생 아닙니까?” “아니야, 자네가 잘못 알고 있어. 이용익이야.” 이용익은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보성학원(고려대학교 전신)을 설립했다. 그후 이용익의 망명과 사망으로 천도교에서 인수해 손병희 선생이 관리하다 독립운동 때문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 학교에서 손을 떼고 인촌에게 넘겼다.
최준은 고려대학교의 예를 들면서 이병철에게 대구대학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세상에서 인촌이 고려대학 설립자인줄 알 듯 대구대학이 잘되면 자네 이름이 드러날 것 아닌가.”
대구대학 운영권은 이병철에게 넘어갔으나 이병철은 대학 운영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 이병철을 곤란하게 만든 사카린 밀수 사건이 나고 대구대학은 박정권에게 넘어갔다.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는 “어느 날 이후락이 찾아와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고 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카린 밀수로 차남 이창희가 구속되고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며 사카린 밀수 사건의 뒤처리를 하는데 넘기라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권력으로 대구대학을 빼앗아 갔다.
교육사업의 전재산을 투자해 최부자집에는 더 이상 재산이 없다. 장손 최염은 분당에서 산다. 독립유공자 연금으로 나오는 25만원이 조상들의 재산보다 더 값지다면서. 최준이 독립유공자로 알려진 것은 훗날의 일로 1983년으로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최염은 그 흔한 차 한 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면서도 경주 최부자집 종손이라면 사람들이 누구나 인정해 어딜가도 존경받으며 살아온 것이 재산보다 귀한 조상의 음덕이라며 재산은 빈털털이지만 마음은 만석꾼이라며 세상 달관한 듯이 말했다.
-독립운동가 재산과 박정희 박근혜 부녀-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강탈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두 대학을 합병해 영남대학교를 만들었다. 당시 재산 가치로 청구대학 20억, 대구대학 15억의 두 대학을 땡전 한푼 안 들이고 가져간 군사정권은 이후락 주도로 합동 이사회를 열고 박정희 최측근과 정권실세로 이사진을 채웠다.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은 이름만 이사로 올려놓고 몇 년 후 아무런 통보 없이 퇴임시켰다.
영남대 문제에 정통한 함종호씨는 “박정희 지시를 받은 이후락을 중심으로 군사정권 실세들이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양 대학 설립자를 배제한 채 학교를 빼앗아 박정희가 주인이 되는 영남대학을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희가 죽고 6개월 후인 1980년 4월 29세의 박근혜가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그 해 11월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이사직만 유지했다. 그러나 후임 이사장으로 육영재단 이사 류준이 등장해 영남대는 실제로 박근혜 통제하에 있었다.
1988년 11월2일 박근혜를 비롯한 전 이사진이 사퇴할 때까지 8년동안 영남학원은 판공비 불법처리, 장학금 비리, 부정입학, 영남투자금융 비리, 재단 부동산 처분 비리 등 각종 비리가 난무해 비리 백화점을 넘어 비리 종합상사로 승격했다.
영남학원이 비리의 종합상사가 된 것은 박근혜 측근이사인 조순제, 손윤호등 박근혜 그림자인 최태민 일가족 때문이었다. 조순제는 박근혜 비서로 최태민 부인의 전 남편 아들이고 손윤호는 조순제 외삼촌으로 최태민 일가친척들은 모두 동원 되었다.
그 외 박근혜 측근인 김정욱과 곽완석은 업무 분담으로 해 김은 교수채용, 직원 인사문제를 곽은 부정입학을 담당해 비리 종합상사로 발돋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박근혜가 이사로서 처음 한 일은 정통성 확보였다. 정관을 개정해 교주가 박정희라고 못 박았다. 정관 1조: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영남대에 땡전 한푼 내놓지 않은 박근혜는 박정희가 손에 넣은 장물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 죽은 박정희를 교주로 추증한 것이다. 박정희 박근혜 부녀가 영남대 재단에 땡전 한푼 내놓지 않았다는 것은 국정감사 기록에 남아 있다. 비리 종합상사 영남학원은 사립으로서는 최초로 국정감사를 받는 신기록을 세웠다.
통일민주당 김동영의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
조일문 재단이사장: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통일민주당 김동영의원: 다음에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씨가 재단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조일문 재단이사장: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
(1988년 10월 18일. 문화공보위원회 국정감사)
최준의 장손 최염은 최근에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박근혜가 8년동안 이사로 재직하면서 34건의 부동산을 처분하며 그 중 일부는 시세보다 헐값에 팔았다”면서 조부가 기증한 땅 10만평을 팔 때 평당 시가 50,000원 인 것을 7,600만원에 팔았다”고 밝혔다. 50억 가치 나가는 땅을 단돈 7,600만원에 팔아 치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박근혜는 최준이 기증한 땅을 마구 팔아치워 이젠 조상을 모신 산소도 이전해야할 입장이다. 장손 최염은 이번 음력 10월에도 경주에 내려가 10여군데 산소를 돌며 조상 제사를 지냈다. 산소 앞에는 묘를 이전해 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30년 이상된 묘소는 허락없이 함부로 이전할 수 없어 강제 이장은 불가능하다.
“후손된 입장에서 조상님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이런 곤욕을 치르게 한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언성을 높히는 최염, 9대 진사 12대 만석꾼 경주 최부자집이 이젠 조상 모실 묘자리 조차 없으니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빌어먹는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1988년 이사를 사퇴했던 박근혜는 2009년 다시 복귀한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한 박근혜가 이사로 복귀하면 학교발전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이사회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사 복귀는 사양하고 이사 4명을 추천했다. 7명의 이사 중 4명이 박근혜 사람이니 박근혜는 서류상 영남대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도 영남대 이사회를 장악한 것이다.
천하가 인정하는 독립운동가 최준이 마지막 재산을 출연해 세운 대구대학과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잔재를 없애고자 노력 했던 최해청이 세운 청구대학을 친일파 장교출신 박정희가 땡전 한 푼 안 쓰고 거저 먹어 딸에게 넘겨준 사실은 운명의 장난치고는 너무 심한 운명의 장난이다.
달관한 듯이 세상을 허허롭게 살아가는 최염도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국가 지도자가 된다 말이냐?”고 반문하며 “세상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박근혜를 반대하냐?”면서 대구대 청구대 강탈에 비하면 정수 장학회 강탈은 쬐그만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
최준과 최염, 그리고 박근혜 부녀 사이에 전생에 무슨 악연이 얽혔을까?


기사 등록일: 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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