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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9>
 
9

그 시각 민경삼은 서울에 와 있었다. 사고를 낸 후 주유소에서 해고 당하고 쪽방에서도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민경삼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 왔다. 아이들을 생각해선 서울에 얼씬도 해선 안 되었지만 안선생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안선생이 써 준 전화번호와 주소 그리고 학교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초라하기만 몰골로 안선생을 찾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멀리서 한 번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어렵게 안선생이 근무하는 초등학교를 찾은 민경삼이 정문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안선생이 화단 쪽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자신을 알아볼까 민경삼은 황급히 교문 담벼락으로 몸을 숨겼다.

안선생은 화단으로 나와 물끄러미 아직 덜 떨어진 코스모스 꽃잎들을 바라보고 있다. 민경삼을 찾지 못 한 안타까운 마음에 담배라도 하나 피고 싶어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적이다가 이내 포기한다.

담벼락에 숨어서 안선생의 모습을 쳐다보던 민경삼이 잠시 미소를 짓는다. 그래 됐다. 친구의 얼굴을 보았으니 그걸로 되었다. 민경삼은 쓸쓸히 발길을 되돌렸다.


정처 없이 걷고 있다. 갈 곳이 없다. 민경삼은 오늘 당장 몸을 뉘일 곳 조차 없었다. 혹시나 싶어 몇 군데 주유소를 들러 일자리를 사정해 보았지만 왼손도 없고 병색이 완연한 늙은이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기침은 더 심해졌다. 추위에 덜덜 떨다가 바람이라도 피하고 싶어서 지하도로 내려갔다. 그래도 온기가 있어서 인지 몇몇 노숙자들이 박스와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민경삼도 누군가 버리고 간 박스와 신문지를 집어 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이곳에서라도 하룻밤을 지새야 할 것 같다. 박스를 깔고 신문지를 두르니 조금 덜 추운 것 같다. 그러나 이내 심한 기침을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죽을 듯 기침을 해 대던 민경삼이 겨우 기침을 멈추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눈물이 나왔다.

“안선생~ 난 자네 친구로는 너무 초라해!”




노부인은 꾸역 꾸역 모여 드는 노숙자들을 보며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무료 급식소에 자원 봉사 일손이 부족하다 해서 나왔는데 생각 보다 많은 노숙자들을 보며 음식이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었다.

“어여… 순서대로… 여기 밥통 먼저… 아니..아니… 국통이 마지막…”

얼추 배식대를 마련하곤 이마에 땀을 닦는 노부인인데 그녀의 눈에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민경삼의 모습이 보였다. 민경삼은 벌써 지하도에서 노숙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나서 얼굴은 시커멓게 때가 묻어 있고 헝클어진 머리에 그야말로 전형적인 노숙자가 다 되어 있었다.

민경삼이 줄 서서 배식을 받는데 국을 퍼 주던 노부인의 순서가 되자 노부인에게 고개 숙여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한다. 노부인이 그런 민경삼을 유심히 쳐다본다.

민경삼이 식판을 받아 들고 공원 한구석 보도 블록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려 밥을 입에 잘 넣지 못한다. 그것도 잠시 이내 매서운 기침이 찾아와 연신 기침을 한다. 주위의 노숙자들이 쌍 욕을 하며 민경삼을 피하고… 노부인이 그런 민경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안선생은 퇴근 후에도 인터넷을 뒤지며 민경삼이 갈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돋보기 안경을 쓰고 이 메일을 타이핑하고 있는 안선생…

“선암 노인 보호소 담당자님께…”

안선생이 한참 타이핑에 집중하고 있을 때 노부인이 들어온다.

“워디 갔다 이제오는겨?”

“애미한테 저녁 얘기 해 놓고 갔는데…
못 자셨수?”

“저녁 얘기 하는 게 아니잖여?”

“(웃옷을 벗으며) 왜요?
늘그막에 바람이라도 날까봐 그러우?”

“말하는 거 하고는…”

“오늘 자원 봉사하는 날이잖우!
근데 말이유. 왜 전에 시골 살 때, 당신 친구라던 사람 있잖우?”

안선생이 다시 돋보기를 쓰며 노트북 앞에 앉으려다 화들짝 놀라
급히 돌아 앉는다.

“그 사람이 왜? 봤어?”

“얼핏 봐선 비슷한데… 아니겠지요…
아, 서울에 자식들 있다구 자랑하던 사람이 그지 꼴에
무료 급식 먹으러 왔겠수? 잘못 본거지…
그래서… 밥은 챙겨 드신 겨 아직 인 겨?”

안선생이 노부인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웃옷을 챙겨들고 뛰쳐나간다.

“아, 영감! 어딜가요? 저 냥반이?”




지하도 안이다.
민경삼이 신문지를 몸에 두르고 오들오들 떨고 있다. 이젠 병세가 완연하다.
다시 예의 그 기침이 시작되어 몸서리치고 있는데 누군가의 절박한 외침이 들렸다.

“단속반이다!”

호르라기 소리가 나며 도망가며 자빠지고 지하도 안은 난장판이 된다.
민경삼도 도망가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계속 튀어나오는 기침 때문에 쓰러져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구청 단속반원이 민경삼을 부축해 일으키자 민경삼이 소리질렀다.

“안뒤어. 난 못가! 난 그런데 갈 수 없단 말이여!”

그러자 구청 단속반이 민경삼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이런 곳에서 지내시는 것 보단 낫잖아요. 일어나세요!”

“아녀… 그게 아녀… 난 거기 가면 안뒤어…
가면 안 된다니께… 난 못가!

하지만 구청 단속반에 의해 지상 계단으로 올라 대기해 놓은 버스에 올라 탄다.


한바탕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지하도 안…
단속반이 사라지자 여기 저기 도망쳐 숨어 있던 노숙자들이 다시 하나 둘 모여 든다.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노숙자들로 넘쳐나는 지하도 안이다.

이 때 안선생이 지하도를 뛰어내려 온다. 잠시 정황을 살피던 안선생이 한 노숙자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어보려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대신 조심스레 한 사람 한 사람 천천히 살펴보는 안선생이다.

지하도에서 민경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안선생은 곧바로 노부인이 봉사 활동 다닌다던 그 무료 급식소로 달려왔다. 하지만 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을씨년스런 밤의 적막만 가득하다. 급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다. 불길한 마음에 안선생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 등록일: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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