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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10>
 
10

“여보세요? 자넨가? 날세! (반색을 하며)
찾았나? 고맙네 고마워… 아, 그럼 한턱 단단히 내지.
이게 다 구청장 친구 둔 덕분이 아닌가! (인상이 굳어지며)
뭐? 부랑자 보호시설? (적는다) 그래. 그래. 아무튼 고마우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였다. 민경삼을 찾았다. 어렴풋이 예상을 했지만 부랑자 보호 시설에 있다고 했다. 안선생은 무작정 차를 몰았다.

GPS의 안내대로 구불구불 달리다 보니 이런 곳에 인가가 있나 싶을 정도의 외진 곳에 구청장 친구가 말한 부랑자 보호 시설이 있었다. 시립 시설이라 그런지 제법 규모가 커 보였다.

안선생이 정문에 잠시 이야기하고 통과를 하자 이내 환자복을 입은 수용 인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활기를 잃은, 마치 곰팡이처럼 벤치나 담에 붙어 있는 듯한 모습들이다.

현관 앞에 차를 주차한 안선생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 갔다. 자꾸 마음이 급해졌다. 안내 데스크가 어디 있는 거야?

“찾으시는 분이 이 분인가요?”

직원이 내미는 개인 신상 카드의 사진은 민경삼이 분명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 곳에 들어오셔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서요…
치매 환자로 분류해서 진료를 시작 중이었어요…
이름조차 말씀 안 하셔서… 보시다시피 무명인이라고 임시로 써 놓았어요”

“민경삼입니다. 이 사람 이름이…”

“그럼 이분 보호자 되시나요:

“예?”

“보호자 되시냐고요?”

“아…예… 제가…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네 잠시만요….”

직원이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동안 안선생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랑자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 그런지 여기 저기 큰소리도 나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순간 안선생의 눈에 복도 벽에 붙어서 힘없이 걸어오고 있는 민경삼의 모습이
보였다. 안선생은 자신의 눈이 의심스러워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데 민경삼이 맞다. 확실하다.

민경삼도 순간 안선생을 발견했다. 민경삼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안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곧바로 민경삼을 쫓아 갔다. 그러나 민경삼은 숨이 차서 얼마 못 가 벽에 기대 헐떡거리고 안선생이 달려가 민경삼의 두 어깨를 붙잡는다.

“여, 영감태기!”

그러나 민경삼은 안선생의 시선을 쳐다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그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슬픔 가득한 표정으로 민경삼을 쳐다보던 안선생이 표정이 이내 차갑게 굳어 진다.

“내, 이것들을‥”

안선생이 돌아서 사무실 쪽으로 달려간다. 민경삼은 힘없이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안선생이 성난 얼굴로 다짜고짜 사무실로 들어가자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안선생을 쳐다본다.

“전화 좀 씁시다”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안선생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 번호를 찾은 후 유선 전화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 소리.

“여보세요? 민경삼씨 댁입니까?”

상대방이 다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안선생은 신경질적으로 재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 질렀다.

“그래… 내 핸드폰으로 걸었으면 아예 받지도 않았겠지…
잘 들어! 난 초등학교 교장 선생이구,
내가 너희 놈들 망신시키는 거 식은죽 먹기야.
이 망할 놈들 같으니라구.
너희 아버지가 지금 어디 계시는 줄 알아? 잘 들어!
지금 당장 달려와서 모시고 가지 않으면 너희 나쁜 놈들
신문이고 방송이고 대문짝만하게 날 줄 알아!
내가 못 할 성싶어?”

이때 민경삼이 소리지르며 들어온다.

“안뒤어!”

달려와 안 선생이 들고 있던 수화기를 빼앗아 끊어버린다.

“(흥분해서) 안뒤어. 자네가 뭔데 그려!”

그러나 안선생의 성난 눈빛과 눈길이 마주치자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리며
읊조리듯 말한다.

“난 애비 자격이 없어!
이럴려면 어여 돌아가! 어여 돌아가란 말이여!”


반나절이 지나고서야 민경삼의 큰아들이 보호시설에 도착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민경삼을 발견하곤 한숨부터 쉬는 큰아들이다.

“전화 한 사람이 누구야?”

몇 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보고 그가 말한 첫마디였다.
민경삼이 주눅이 들어 아무 말 못하자 다그쳐 또 물었다.

“누구냐고 전화 한 사람…”

“내가 전화 했소”

안선생이 앞으로 나서자 큰아들은 안선생의 아래 위를 훑으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아 그러십니까? 감사합니다…“

안선생은 아버지가 지금 몸이 성치 않다는 것을 우선 말 해 주고 싶었다.

“아버님이 지금…”

그러나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안선생의 말을 잘라 버리며 말 했다.

“아버지 모시고 가도 되죠?”

“여기… 싸인 해 주시고… 모셔 가면 됩니다”

아들이 신경질적으로 휘갈기듯 장부에 싸인을 하곤 우악스럽게 민경삼을 끌고 나간다. 민경삼이 고개 돌려 안선생에게 인사하려 했지만 끌려 나가는 통에 끝마치지 못 했다. 안선생도 겨우 두어 번 손을 흔든 게 전부였다.

아들은 민경삼을 자신의 승용차 뒷자리에 구겨 넣듯 태우곤 서둘러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안선생이 얼른 현관을 나와 출발한 아들의 차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헤어지면 이제 정말 언제 볼 지 모르는 일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사라지려 하는 차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는데 무슨 일인지 정문을 나서자 마자 아들의 차가 서더니 씩씩대는 아들이 운전석에서 내려 민경삼을 잡아 끌 듯 정문 옆 한적한 곳으로 데려 갔다.

안선생은 그대로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화가 나 아들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들들이 민경삼을 제대로 모실 수 있는 지 그런 인성의 아들인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르게 뒤쫓아 간 안선생이 소화전 옆에 숨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아들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 다다르자 민경삼을 매몰차게 밀어 제끼며 속삭이듯 소리질렀다.

“그냥 나가 죽어 버리지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숨어서 듣고 있던 안선생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듣고 있는 이런 폐륜의 말이 환청이 아닌 진짜란 말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환청이 아니었다.
민경삼은 고개를 수그린 채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아들은 더 속이 타는 지 다시 한번 민경삼의 팔을 밀며 소리 질렀다.

“죽었다고…. 사망 신고하고… 생명 보험료도 5억이나 받았어…
시발… 이렇게 살아 돌아 댕기면… 5억 다 토해내야 한다고…
누구 시발 죽는 꼴 보고 싶어?”

그러자 민경삼이 기겁을 해 대답했다.

“그랴서.. 보호소에다 이름 얘기 안 했어… 아무 말도 안 해서 몰라..
괜찮여…”

“우리 집에 전화 한 아까 그 할아버지는 뭐야?”

“으… 응 그냥 노숙자들 도.. 도와 주시는 분이여… 괜찮여…”

“진짜야? 또 한 번 아까 그 할아버지한테 전화 오면…
그 땐…. 다 같이 죽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 야그 할께”

“잘 들어…앞으론 관공서 얼씬도 하지 말고 병원 가서 의료보험도 쓰면
안돼~ 알았어?”

“그려.. 그려… 그랄껴… 걱정하지 말어…”

숨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선생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도대체 사람의 인성이 어느 정도까지 망가질 수 있는 걸까?

그제서야 이상했던 의문들이 하나 둘씩 풀려 나갔다. 사전에 생명 보험을 들어 놓고 아버지를 내다 버리곤 전단지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넣어 찾는 시늉을 하고 결국엔 실종사 처리로 보험금을 받은 것이다.

자기 할 말은 다 했는지 아들은 인사 한마디 없이 돌아서 차를 타고 떠나 버렸다. 민경삼이 힘이 드는 지 조악하게 만들어진 화단 둔덕에 앉아 주책없이 맑게 내려 쬐는 햇빛을 찡그리며 쳐다본다. 안선생이 눈망울 가득 눈물이 고인 채로 민경삼 앞에 섰다. 그런 안선생을 보자 민경삼이 얼른 일어난다.

“내가 안 간다고 그랬어!
아, 내가 싫다고 해도 이렇게(돈을 내보이며)
용돈까지 주지 뭔가!”

안선생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영감태기…”

안선생이 잠시 말을 잇지 못 한다.

“가세! 우리 집으로 가!”

하지만 민경삼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수 없네. 그냥… 여기 보호소에 있고 싶어..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더 이상 아들놈에게 전화걸거나
그러지 말게. 내.. 이렇게 부탁 할께…”

민경삼이 애써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애비 될 자격이 없는거지,
그 애들은 아무 잘못도 없어.”

민경삼이 다시 밝게 미소 지어 보이곤 돌아서 보호소로 올라간다.
그런 민경삼을 안선생은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었다.

“영감태기!”

간절한 안선생의 목소리에 민경삼이 돌아본다. 그러자 안선생이 다가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민경삼 목에 둘러준다.

“우리… 아직도 친구 맞지?”

민경삼이 대답대신 미소를 짓는다. 그런 민경삼의 얼굴을 보며 안선생이 간곡하게 부탁한다.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쯤은…
연락해 줄 수 있겠나?”

민경삼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서 걸어간다.
그의 뒷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안선생이다.

민경삼이 지친 몸으로 보호시설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아까 그 여사무원이 민경삼을 제지했다.

“할아버지! 아드님이 모시고 가셨잖아요?”

“그렇게 됐어!”

민경삼이 들어 가려 하자 여사무원이 재차 민경삼을 제지한다.

“할아버지!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여긴 보호자가
있는 분은 계실 수 없어요. 할아버지도 지금까지 속이고 계셨잖아요.
고집 피우지 마시고 아드님 댁으로 가세요!”

민경삼이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하는 수 없이 돌아 서 밖으로 나간다.
그가 현관으로 나가자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기사 등록일: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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