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순 작가
Mirror Lake
Fletcher Falls 떨어지는 물의 양이 엄청났다.
연애시절 흉내 내며 꽃반지를 엉성하게 만들어 끼워 주며 ‘사랑해!’
와이너리 가든 레스토랑. 노란 파라솔이 예뻐 여기서 피자를 먹었다.
여태까지의 여행은 찍고 턴하는 여행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느릿느릿 생각하는 여행으로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행은 돌아 올 보금자리가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랑이다.’ 하는 말에는 언제나 동의한다. 여행 4일째, 우리는 Ainsworth Mirror lake에서 카약을 타기로 했다, 작년부터 남편은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사들이는데 열중이었다. 하도 주문한 물건이 많이 배달되어 잔소리를 했더니, 작년에 카약을 몰래 사서 숨겨 두었다가 Mirror lake에 와서야 스프라이즈로 차 트렁크에서 꺼냈다. 그때 친구 부부와 카약을 타면서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다른 건 몰라도 이 카약은 잘 샀네.” 하고 칭찬했더니 해맑게 웃는 남편의 모습에 모두 덩달아 행복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선수를 교체해가며 카약 주브에 바람을 주입하는 모습이 익살스러워 동영상을 찍었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카약을 차 지붕위에 실고 다니는 것보다 주브 카약은 훨씬 간편해서 좋다. 모든 장비(카약, 노, 세이프티 자켓, 앉는 의자, 바람 주입기) 까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갔다. 주브에 바람을 넣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카약은 2인용이니까 노를 젓는 것도 호흡이 맞아야했다. 즉 두 사람이 마음이 딱딱 맞아야 카약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고 속력이 나는 것이었다. 내가 워낙 호흡을 맞추지 못하자, 남편은 “이렇게 마음이 딱딱 안 맞아서 어떻게 강산이 몇 번씩이나 바뀌도록 살았지.” 하며 농담이라고 던진 말에 안 그래도 무서워 오금이 저리는데. “그럼, 지금이라도 물러?” 부부생활도 그렇다.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 늘 삐그덕 소리를 내는 일이 많다. 소리만 나면 다행인데 요즈음 세대들은 그 소리로 인하여 서로 맞추려고 애쓰거나 배려하는 마음 없이 즉각 결혼을 물리는 수가 허다하다. 농담으로 던진 남편의 그 말에 여태 맞추지 못한 호흡을 맞추려고 애썼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호흡이 딱딱 맞기 시작했다. 숙련된 노동자처럼. “하하, 이제 안 물러도 되겠네.” 두어 시간 그 넓은 호수 물살을 가르며, 호수를 가로 지르는 그 짜릿함은 우리가 신혼시절로 세월을 소환한 것 같았다. 만약 찍고 턴하는 여행이었다면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
주변 명소를 서치해서 찾아낸 곳이 Fletcher Falls다. Fletcher Falls까지는 12km. 약 10분 거리에 있었다. 다음 날 31번 하이웨이 호수 길을 따라 Fletcher Falls를 찾아 나섰다. 길은 좋았다. Cody Cave 가는 길 같았다면 한 시간은 족히 더 걸릴 거리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혼쭐이 난 우리는 포장된 길을 칭찬하며 세금을 더 많이 내야 될 것 같다는 애국자적인 생각도 기특하게 하며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즐겼다. 낮 기온 31도. 웬만해서는 더위를 타지 않는데 덥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나무그늘을 찾아 주차하고 완만한 트레일을 따라 내려갔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폭포 물은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오싹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가웠다. 물줄기의 높이는 족히 5~6m 는 될 것 같았다. 물의 나라 캐나다다웠다. 쿠트니 미러 레이크로 흘러들어가는 물은 정말 장관이었다.
폭포에서 내려와 호숫가 벤치에 앉았다. 지천에 널린 풀꽃은 우리의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데이지 몇 송이를 꺾어왔다. 풀꽃을 뜯어 추억을 더듬으며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어 주었다. 오랜만에 둘만의 오붓한 여행이 가슴 설레게 했다. 전에는 여행하면, 비행기를 타고 근사한 호텔에서 우아하게 하는 게 여행인 줄만 알았다. 국내 여행일지라도 까다로운 내 성격에 맞추느라 남편은 여행목적지에서는 제일 나은 호텔을 잡으려고 애썼다. “좋은 호텔 예약했어요?”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여자가 모처럼 가는 여행인데 호텔은 좋은데 잡아야지.” 하며 내가 한 말을 흉내로 대신했다. 나는 근사하거나 괜찮은 호텔에서 묵지 않으면 여행이 아닌 줄 아는 바보였다. 작년에 친구 덕분에 트레일러로 여행을 하고 난 후 여행의 생각이 바뀌었다. 친구는 “여행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여행의 정석을 가르쳐 준 셈이다. 그래서 트레일러도 장만하고 둘만의 첫 경험을 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마르쉘 푸르스트의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사 여행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누군가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NO!’ 라는 답이 바로 나올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내 아이들을 다시 키운다면 지금처럼 훌륭히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Ainsworth Woodbury 캠프장에서 알찬 3박 4일을 보내고 와이너리를 구경하기 위해 캘로나 쪽으로 이동했다. 캘로나 모든 캠프장은 예약이 차서 할 수 없이 Summerland Peach Ochard 캠프장에 예약을 해서 여장을 풀었다. Summerland는 내륙 오카나간 호수를 끼고 와이너리를 연결하는 Bottleneck drive로 유명하다. 북쪽으로 약 50km 지점이 캘로나. 캘로나 보다 캠프 사이트가 저렴하고 걸어서 오카나간 호수에 갈 수 있는 거리라 나쁘지 않았다. Bottleneck drive를 따라 와이너리 구경을 나섰다. 술을 먹지 않는 남편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곳은 와이너리 투어가 아니라 와인 숍에서 운영하는 소규모라 그리 신기함은 발견하지 못했다. 나 또한 외이너리는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술을 먹지 못하니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알고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다음에 올 기회가 되면 와인 공부도 좀 하고 오는 게 좋을 듯했다. 와이너리는 기대에 못 미쳤다. 하지만, 그런대로 풍광을 즐기는 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주변 들판은 온통 체리 농장이고 포도농장이었다. 그 규모는 어마어마해 입이 딱 벌어졌다. 날씨가 너무 더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남편은 아내를 위해 따라 다니는 것 또한 고역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걸어서 오카나간 호수에 갔다. 오카나간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혔다. 그 큰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내가 이 캐나다 전체 호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 같은 짜릿함. 전율이 일었다. 여행이 아니었으면 캐나다 25년을 살면서 과연 이런 맛을 느낄 수 있었을까? 비행기를 타고 하는 여행이라면 과연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을까? 트레일러 여행은 장점이 많았다.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나는 캐나다의 풍광을 즐기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여행비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집에서처럼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장점과 까다로운 잠자리로 낯가림하는 나에게 딱 안성맞춤이었다. 더군다나 식사는 남편이 알아서 준비하니 이 또한 여왕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아한 여행임을 왜 여태 몰랐을까? 여행의 묘미를 일깨워준 친구가 고맙기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U Pick’ 체리 농장체험을 했다. 주변에 지천에 체리 농장이다. 1lb에 4불, 한 바스켓이 10lb. 각자 한 바스켓을 따기로 하고 사다리에 올라갔다. 평소에 고소공포증이 있다. 체리가 공짜가 아닌데도 공짜인 것처럼 달려드니 고소공포증은 감쪽같이 바람처럼 사라지고 그 높은 곳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잠깐, 무공해 인줄 알고 손이 닿는 대로 따먹었다. 얼마나 달콤한지. 따 먹는 거는 공짜니까. 농약까지도. 만약 체리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물을 꼭 챙겨가길 바란다.
이번 여행은 제목 그대로 생각하고 체험하는 여행이었다. 8박 9일이라는 짧지 않은 여행을 하며, 정신건강과 육체의 건강을 살찌우는 여행을 했다. 이번 여행의 재충전으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남은 삶의 한 조각을 수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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