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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특별한 상 _이정순 (캘거리 문협 동화작가)
이정순 동화작가
해피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자식도 없고 무척 가난했습니다. 할머니는 눈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해피를 자식같이 여기며 사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산에서 약초도 캐왔습니다. 봄이면 산나물이며, 가을이면 산열매도 따왔습니다.
“할멈, 오늘은 산나리 꽃을 꺾어 왔구려. 지천에 야생화가 피었더이다. 할멈이 볼 수 있으면 참 좋아할 텐데.”
할머니 얼굴이 환해지며 행복해 보였습니다.
“영감, 전에도 양지바른 언덕에 산꽃이 지천으로 피었었지유?”
그것이 할머니가 볼 수 있는 마지막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산나리 꽂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얼굴에 비벼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얼굴이 주황색으로 물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운 듯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낼은 내가 할멈을 데려가리다.”
할아버지의 그 말에 할머니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할머니는 전에부터 앞이 안 보인 건 아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눈이 아프다고 하더니 차츰 앞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랍니다.
“해피야, 니가 잘 안 보인다. 어디 있노?”
해피는 할머니 품 안으로 들어가 낑낑거렸습니다.
“히히, 여기 있었네. 내가 찾았다.”
할머니는 가끔 일곱 살 아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할멈. 빨간색이 뭐지?”
“딸기가 익으면 빨간색이지.”
“아이고 잘했소. 할멈!”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칭찬했습니다.
“그럼 딸기 꽃은 무슨 색인가?”
“분홍색! 나 스웨터도 분홍색!”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기억을 더듬어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럼, 오늘 내가 꺾어 온 산 나리꽃은 무슨 색이지?"
“몰러!”
두 사람의 대화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해피도 덩달아 행복했습니다. 해피는 살포시 할머니 무릎에 올라앉았습니다. 할머니가 해피 등을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해피는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할머니 머리를 감겨 곱게 빗겨 비녀를 꽂아 주며 말했습니다.
“할멈, 할멈이 내게 시집올 때처럼 곱구려.”
할머니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장롱에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분홍색 스웨터를 꺼내 입혔습니다.
“할멈, 이건 할멈이 좋아하는 분홍색 스웨터라오.”
그 스웨터는 할머니 눈이 아직 보일 때 할아버지랑 시장에 가서 마지막으로 산 옷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스웨터를 입어보며 행복해했습니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할멈, 할멈이 내게 시집올 때처럼 곱구려.’
할머니는 그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예쁘게 단장시켰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손을 잡고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언덕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할멈이 좋아하는 그 언덕에 왔구려.”
할머니는 나비처럼 팔을 벌렸습니다.
“깔깔깔!”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조심 발을 떼었습니다.
“영감, 내가 꽃을 밟으면 꽃이 아파할 거유. 밟지 않게 내 손 잘 잡아요.”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조심스럽게 잔디 위에 앉히며 말했습니다.
“할멈, 여기 앉구려.”
할아버지는 네잎클로버 꽃으로 왕관을 만들어 할머니 머리에 씌어 주고, 꽃반지도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해맑게 웃었습니다. 해피도 덩달아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멍멍멍!”
“해피야, 이리 온!”
해피도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앉았습니다.
노을이 주황색으로 아름답게 물들 무렵,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할멈! 다리 아프지 않으우? 내 등에 업히구려.”
“히히, 좋다!”
할머니는 어느새 아기가 되어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림자도 주황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자장자장!”
할머니는 할아버지 등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와서 반찬도 만들고 밥도 지어 상에 가득 차려두었습니다. 그리고 피곤했던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해피야. 이리 온. 자자.”
할아버지는 해피에게도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간밤에 할아버지가 기침을 심하게 했습니다. 전에 앓던 천식이 도진 모양입니다.

“쿨럭쿨럭!”
미닫이 창호지문으로 해가 환하게 비췄습니다.
“해피야!”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할배가 왜 아직 안 일어나지? 니가 좀 깨워봐라.”
해피는 할아버지 얼굴을 핥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허허 해피야. 간지럽구나.’
하시며 내 배를 쓰다듬었을 텐데 오늘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피 심장에서 꿍!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낑낑,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상해요.’
마음으로 말하고 할머니를 돌아보았습니다. 할머니와 눈이 턱 하니 마주쳤습니다. 보이지도 않은 할머니 두 눈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눈물을 쭈르륵 흘렸습니다. 해피도 저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삼일장이 치러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언덕에 할아버지를 묻었습니다.

해피도 할머니도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이러다 할머니까지 굶어 돌아가실 것 같았습니다. 해피는 궁리 끝에 밥그릇을 물고 이웃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해피는 이웃집 마당에 밥그릇을 내려놓고 두 발을 뻗고 엎드려 기다렸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아주머니가 외출에서 돌아왔습니다.

“쯧쯧! 배가 고팠구나. 불쌍한 것!”
아주머니는 주인 잃은 개가 밥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픈가 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밥을 가지고 와서 해피 밥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해피는 아주머니께 꾸뻑 절을 하고, 밥그릇을 물고 마당을 나왔습니다.
“아니? 배가 고플 텐데 안 먹고 어딜 물고 가냐? 새끼가 있나?”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해피 등 뒤에서 말했습니다. 해피는 밥그릇을 물고 집으로 달려와 할머니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 소맷자락을 물고 밥그릇 앞으로 끌어당겼습니다. 할머니는 손으로 밥그릇을 더듬었습니다.

“해피야. 이밥이 어디서 났노?”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해피는 할머니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해피야, 니도 배고플 텐데 먹어라.”
할머니는 밥그릇을 밀어주었습니다. 해피는 할머니가 남겨 준 밥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영감은 밥 드셨어유?”
해피는 그 말에 입에 물고 있던 밥을 그릇에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할머니 눈에도 해피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다음 날도 해피는 밥그릇을 물고 아주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아고, 니가 사람보다 낫네.”
아주머니는 또 밥을 주었습니다. 해피는 밥그릇을 물고 마당을 나왔습니다.

“허 참, 밥그릇을 어디로 물고가지?”
아주머니는 해피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아주머니는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 날 아주머니는 깨끗한 그릇에 밥과 고기반찬을 좀 더 넉넉히 담아주며 말했습니다.
“세상에나. 못난 열 자식보다 낫네.”
그 소문이 읍내까지 자자하게 났습니다. 동사무소에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보내 해피와 할머니를 돌보아주었습니다.

어느 날 몇몇 사람이 와서 할머니와 해피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갔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 특별한 효자 상을 시상합니다.”
할머니와 해피 목에 꽃다발이 걸렸습니다. 목에는 ‘효자상’이라고 쓰인 메달도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두런거렸습니다.
“허허 참! 개가 사람보다 낫네.”

기사 등록일: 2024-08-23
kim530 | 2024-09-04 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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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작가님,
민초해외동포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국에서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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