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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해맞이 글 : 탁재덕 (캐나다 여류문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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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잠 깬 새벽, 종종 창가에 기대어 서서 해맞이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유난히 눈이 많고 춥다고 여겨진 겨울 탓에 식구들의 출근 길이 걱정 되어 날씨 변화를 살피곤 하던 것이 언제부턴가 갓 밝이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밝아오는 동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동쪽 정면으로 내 집 앞에 버티고 선 저 집이 없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엉뚱한 욕심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두고 온 고향 같은 곳, 내가 살던 산동네의 집이 그리워진다. 겨울이 고비 길을 넘어 가면서 해가 잰 걸음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어쩐지 도시의 아침은 더디 오는 것 같다. 환경이 주는 시각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탓인가. 겹겹이 늘어선 집들에 채이고 걸리듯 겨우겨우 담벼락을 기어 올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지붕마다 한 조각씩의 햇살을 걸쳐놓는 해를 보면서요즘 나는 날이면 날마다 특별한 해맞이를 할 수 있었던 축복의 새벽들이 눈물 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숲으로부터 검푸른 새벽 구름을 밀어 내며 번져오는, 심장이 쿵쾅 거리며 몸이 떨릴 만큼 웅장하고 강렬한 여명의 풍광을 아는가. 그 붉은 기운은 이제 막 치열한 전장에서 돌아와 갑옷 벗는 장군을 보는 것 같아서 무장해제 하듯 드러나는 실체에도 서려있는 그 의연한 기개 앞에 절로 숙연해진다. 상처 입은 산 짐승의 포효처럼 온 마을을 들쑤시듯 평원으로부터 불어오던 바람에 질려 아니 보던 그 숲의 일출이 산동네를 떠나온 이제야 보인다. 오늘도 나는 오늘 하루에 어울릴 만큼의 생동감이 솟구치기를 희망하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토크쇼의 여왕이라는 오프라 윈프리를 떠올린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성공은 아침 형 인간에게 주는 신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시기심의 발로인가. 어쩐지 그녀가 아침 해를 바라보며 잡았음직한 포즈를 취해보며 짐짓 성취감 이라는 것은 집 밖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작은 자긍심에 발동을 걸어본다. 아들의 와이셔츠를 다려 입히고 구두를 닦아주며, 딸의 간식거리를 신경 써 주고 커피를 내려 머그잔에 담아 준다. 남편이 좋아하는 숭늉까지 끓여서 도시락을 챙겨 그들을 배웅하며 밝아오는 하루를 시작 하는 게 어찌 커리어 우먼들의 아침보다 못한 거라고 누가 그러더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집안에서 살림 하는 여자의 당연한 몫인 것을 특별한 것인 양 포장하려 드는 이 심보가 스스로도 얄미운가 보다. 실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 멍하니 뜨락을 내려다 본다던가 내 작고 초라한 책상에 앉아 머리에 쥐 나도록 끙끙대다 보면 하루 해가 어떻게 저무는지 모를 때도 허다하니 나름대로의 핑계가 필요한 거겠지. 사회 생활에 좇기는 아이들이나 내 몫까지 더하여 돈 버는 일(?)에 스트레스 쌓이는 남편을 생각하다 보니 집 앞의 눈 치워 내는 일도 화단에 얹을 비료 흙을 사 나르는 일도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그래, 집에서 노는 내가 해야지.’ 하다가도 힘이부치면 남편의 돈 버는 유세에 화가 난다. 그럴 때면 엄마는 그냥 살림만 하라는 큰 아들의 진지한 지원을 등에 업고 ‘나도 돈 벌러 나간다. 돈 벌어서 나 쓰고 싶은 것 쓰러 다닌다. 그러면 집안 꼴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지?’ 하며 협박 성 고함을 쳐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물론 내가 집을 비우면 제일 곤란해 지는 게 자기 일 테니까 그렇겠지만 어찌되었건 집 밖에 나서는 일이 별로 달갑지 않은 나에게 큰 아들은 든든한 아군이다. 새벽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그를 태운 차가 떠날 때까지 지켜 보아 주어야 하는 일을 자립심 강한 딸은 스스로 하도록 내 버려두지 않는다고 못 마땅해 한다. 물론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하자는 모토를 가진 것처럼 엄마의 새벽 잠을 지켜주며 컵라면 하나에 밥 한 공기를 도시락 삼아 들고 새벽 길 따라 학교에 다니던 작은 아들이나 오히려 엄마를 챙기려 드는 의지로 혼자서 커버린 딸 아이가 무지하게 고맙고 미안하다. 하지만 내게 새벽하늘을 다시 보게 한 원인이 큰 아들인 것을, 그래서 때로 그 아이가 고마운 것도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어느 국문학자는 아내라는 말이 ‘안 해’ 에서 비롯 되었으며 안 해란 안에서 뜨는 해를 이름이라고 했다. 그만큼 아내의 위치가 중요하다는 그 의미가 너무나 좋아서 살림하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에 무게를 얹었는데 오늘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내 새벽을 열게 하는 가족, 그들이 바로 또 하나의 여명인 것을. 비록 그들을 향해 눈을 흘기고 언성을 높이게 되는 생활 이라는 것이 나를 잡고 흔들 때도 있겠지만 내 사는 날까지 애틋한 마음으로 나만의 특별한 해 맞이를 하듯이 그들을 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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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19-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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