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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유감 _ 탁 재덕 (캐나다 여류문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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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 우"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이 안도의 숨소리. 거의 감격에 가깝다. 오늘도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듯 숨을 몰아 쉬며 화이트 머드 드라이브 웨이를 빠져나왔다. 불과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집과 가게의 거리지만, 화이트 머드 드라이브 웨이를 거쳐 야만 한다는 사실은 적어도 내게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출·퇴근 시간을 비켜서 오가는데도 왠 차량이 그리 많은지 그 길에 들어서기도 전에 내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민 생활 10년이 되었어도 내가 운전하여 다운타운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없고,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도록 운전기사 노릇 한번 못해주었으니 내가 다닐 수 있는도로 중에 가장 복잡한 곳이 화이트 머드 라고 여길 수밖에. 몇 년을 시골에 살면서 시골 길 운전에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겠다. 양쪽 옆으로 쌩쌩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합을 하듯 꼬리를 무는 차들이나 차선 바꾸기를 고무줄 넘기 놀이하듯 하는 도시 운전자들의 능숙함을 보고 있노라면,주눅이 들어서 차를 몰고 그들 속으로 끼어든다는 자체가 내게는 모험이 되고 만다. 시골에서 에드먼턴을 오 갈 때의 일이다. 왕복 5시간이 넘는 운전으로 피곤해 하는 남편 대신 잠시 운전대를 잡게 되면 남편은 이내 잠이 들곤 했는데,이 사실을 안 아이들은 그 상황을 기이하게 여겼었다. 운전이 서툰 엄마에게운전대를 맡겼는데 어떻게 아빠는 잠이 들 수가 있는가 하고. 이에 대한 남편의 변은 기가 막혀서 모두의 말문을 닫게 하는데 충분했었다. 너무나 불안해서 맨 정신으로는 있을 수가 없어 잠을 자는 거라나. 나는 앞차가 느리게 가면 그냥 천천히 뒤따라 간다. 앞차가 빨리 가도 제한속도를 넘기지 않는다. 일단 내 차선에 들어서면 거의 차선을 바꾸지 않는다.아무도 없는 신호 대기 에서도 노란불은 빨리 가라는 신호로 통한다는 작금의 운전 세태와는 무관하게 서행 후 정지를 고집한다. 아는 길로만 간다. 다른 사람들이 20분 걸리는 거리면 나는 30분 잡고 길을 나선다. 운전중에는 두손이 핸들 위에 있어야 함은 기본이고 휴대전화도 받지 않는다. 정신 집중을위해 음악이나 그 어떠한 것도 듣지 않는다. 내 운전습관이 이러니 간혹 내 뒤로 차들이 굴비 두름 엮이듯 줄을 서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나는 제한속도를 지켜 달린다지만 성질 급한 이들이나 시간에 쫓기는 이들 입장에서 보면 꽤 짜증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겠다. '누구야?' '뭐 하는 거야?' 툴툴거리며 내 뒤를 쫓아오다 갈림길에서 운전자가 나임을확인한 적이 있다던 이웃동네 부부는 다시 그런 상황을 겪게 되면 혹시 앞선차 운전자가 나일지 모른다며 웃는다고 했다. 이런 나를 두고 대단한 모범 운전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백에 가까운 나만의 이유를 들어보라. 특별히 인내심이 강하거나 유한 성격도 아니면서 차선 지키기를 고집하는 건 밀리는 차선을 피해 옆 차선에 들어섰다가 다시 내가 가야할 차선으로 들어서는 일이 쉽지 않을까 봐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아무리 사소한 접촉사고 일지라도 그에 따르는 수습 상황을 생각하면 일단안전 운전만이 보호책이라는 계산이 앞서니 내가 얼마나 소심한 자 인지를눈치챘으리라. 더구나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교통순경 아저씨와 대면하는 일은 절대 만들고 싶지 않다. 내게는 미리 계획하고 정리한 것 이외의상황에 처하는 자체가 혼란이며 고문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 속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는 남편은 틈만 나면 내 운전에 대한 어리석음에 대고 열변을 토한다. 시간과 돈을 거리에 쏟고 다니는 한심한 아줌마라고. 그럴 때마다 접촉 사고만 내도 뛰어오른다는 보험료나 수리비 등을 들먹이며 지금 내가 돈 벌어주고 있는 거라고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항변을 한다. 하지만, 내심 '소심한 자여 그대의 끝은 어디메뇨?' 자문하기를 거듭하면서도 극복할 용기가 서질 안는 건 아마도 나름 대로의 사연 때문일 거라고 가엾은 척 해본다. 이민 오기 전, 운전은 이민 생활의 필수라는 여건 때문에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연수를 받았었다. 처음으로 남편과 동네를 돌며운전 연습을 하던 날, 꺾어지는 골목길을 돌아들며 마주 오는 관광버스를 보고 질겁해서 옆에 얌전히 세워 놓은 차를 들이받은 아픈 경험이 있다. 앞에차가 오는 것을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차 운전자도 내 차를 보고 있다는남편의 서슬 퍼렜던 충고가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기러기 엄마가 속 상할 때는 웨스트 에드먼턴 백화점 주차장에 차 세워놓고 한참을 운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었단다. 운전이 서툴러 다른 곳에는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에게 들었었는데 그 엄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백화점 주차장, 그 복잡한 교통 속을 운전하고 갈 자신이 없어아무리 속이 상해도 가슴 앓으며 집에서 삭여야 하는 나 같은 아줌마들도 더러는 있을 거라고 하면 그 엄마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될까? 나는 줄곧 내 아이들에게 이르는 말이 있다. 운전중에 앞차 때문에 답답한 일이 생기면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이해할 것이며 차선을 바꾸어야 하는데 쉽게 바꾸지 못하고 절절매는 차가 있으면 우리 엄마도 저렇겠지생각하고 양보해 주라고. 조금씩 흩뿌려진 눈이 내려앉은 기온에 실려 도로가 살짝 얼음으로 덮였던어느 날 밤. 미사를 끝내고 성당을 나서려는데 누구에게 들으셨는지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 보신 적이 없는 신부님께서 나를 부르시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셨다. "자매님이 우리 본당 최고의 안전 운전자 라면서요?" 특별히 조심한다고 하니 안전 운전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겠단다. 이제는 신부님께 우리 본당 최고의 안전 운전자라는 호칭을 얻은 자답게 긍지를 가져도 되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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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19-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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