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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덜다_탁 재덕(캐나다 한인여류문협)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앞집, 키 큰 나무가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으스스 느껴지는 유월의 한기를 덜어내고자 기지개를 켜 보는데 문득 지난 겨울의 추위가 떠오른다. 참 길고 지독한 추위였다. 그 겨울 끝에 만난 화사한 봄의 햇살에 감동하던 것처럼, 지나고 나면 이 빗줄기 역시 옳고 그름의 따짐 없이 거저 받는 축복임을 깨달을지도 모르지.

그 깨달음의 시작인가? 무언가 좋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져서 괜스레 바빠지는 마음이다. 돌아누우면 누구보다 가장 먼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촌수를 따질 수 없는 한 몸, 남편을 위해 팔을 걷어 붙인다. 겨우내 넘쳐나던 그의 속옷과 양말 등의 정리 정돈을 위해 내 서랍 한 층을 비우기로 결심하고는 이 순간이 지나면 불치병 같은 애착증에 발목을 잡힐까 봐 서둘러 움직인다.

목표물인 내 추억 서랍의 손잡이를 당기자 켜켜이 들어앉아 있던 소소한 추억들이 다투어 고개를 든다. 나이 들면 추억으로 산다기에 소중히 간직해 온 것들, 아이들의 어린 날이 엿보이는 작은 선물들하며 포장도 뜯지 않고 보관해 온 행사장이나 여행지의 기념품 등 소소한 행복을 품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있었다. 건넨 사람의 정성만큼 제대로 기뻐하지도,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쌓여만 가는 것들의 무게가 힘겹다고나 할까…… 그런 연유로 사람을 많이 접하는 직업을 가진 딸에게 나이 든 분에게는 소비해서 없앨 수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둔 선물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분들께 더 이상 보관의 부담을 얹지 말라는 뜻이다.

서랍 정리를 마치고 집안을 둘러보니 무언가 참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집안을 넓게 쓰려면 물건을 없애라는 말이 딱 맞네 싶다. 짧지 않은 세월, 내 공간에 들어와 나를 흡족하게 했던 것들이 이제 소임을 다 한 퇴물처럼 정리의 숙제를 남기고 나를 힘들게 한다. 나 가고 없을 때 아이들에게 정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기운이 남아있을 때 정리해야 할 것들에 대한 걱정이 쌓여만 간다. 내게 소중한 것들이 남들에게도 요긴할 거라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던 누군가의 조언도 떠오른다.

남에게 주기도 꺼려지고 그렇다고 쉽게 버리지도 못하면서 짐이 되어가는 내 추억의 편린들을 보고 있자니 그것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몰려든다. 귀하고 값진 것들이라면 자신만만하게 “너 가져”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큰 미련에 잡힐까? 가게를 접고 은퇴하게 되면 통틀어 가라지 세일이라도 해야 하나 싶으니 그것역시 생각만으로도 버거운 무게로 나를 누른다.

어쨌거나 오늘은 오늘만큼의 과제에 집중하며 과감하게 비워낸 추억의 서랍 속에 깔끔하게 입주(?)한 남편의 물품들이 보기 좋다. 그가 그것을 보면서 내가 추억을 덜어낸 자리만큼 아파한 보람이라도 있게 좋아해줄까? 살짝 기대해 본다.

기사 등록일: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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