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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_4> 글 : 이호성 (캘거리, 소설가)
 
4

런닝 바람으로 툇마루에 앉은 안선생이 연신 볼펜 꼭다리를 입에 물고 담배처럼 뻑뻑 빨아 대고 있다. 담배를 끊은 안선생이 정말로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하는 행위이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던 노부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추자분스럽게 그러고 싶으우?”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안선생의 귀에는 노부인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안선생은 지금 아침에 당했던 테러… 아니.. 테러라고 하기엔 거시기 하지만 암튼 아침에 겪었던 민경삼과의 일이 생각나 여전히 당혹스러웠다.

암만 그래도… 자신이 교장 선생님 아니던가? 지금까지 이 작은 마을에서 교장 선생님인 안선생에게 장난을 걸거나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아침에 민경삼이 했던 행동이 장난인 지 아님 다른 뜻이 있는 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국도에서 소리지르며 옆 차선으로 따라붙던 민경삼의 얼굴이 떠오르자 이내 안선생이 머리를 흔들더니 볼펜 꼭다리를 뻑뻑 빨아 댔다.

“뭔 일 있어유?”

노부인이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을 거다. 하물며 안선생은 노부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꾸가 없자, 노부인이 소리쳤다.

“여보~”

그제서야 잠에서, 아니 망상에서 깨어나는 안선생이다.

“으응? 뭐?”

“그래, 생각해 보니깐 역시 아들집이 백 번 낫지요?”

“아이… 그게 아니고…. 아 시끄러…
이런 젠장헐…”

궁금한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에이… 설마.. 별 일 있것어?
그래도 유비무환이라고 반절이 넘게 남은 휘발유 통이지만 안선생은 차를 몰아 주유소로 들어 갔다.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역시나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예리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그 사내를 찾으며 안선생이 짧게 외쳤다.

“만땅!!!”

헐.. 교장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지만 안선생은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엄습해 온다. 학교로 가는 국도로 진입하면서 연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폈다.

없다.. 휴.. 다행이 며칠 전 있었던 그 자리엔 아무 차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즐겁게 옛 가요 CD를 꺼내려던 그 때…
안선생의 룸미러에 ‘영광 주유소’가 선명히 새겨진 바로 그 1톤 트럭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런 젠장헐…
어느덧 나란히 따라붙어 창문을 열고 소리 지르는 민경삼이다. 화가 난다. 이 사람이 날 뭘로 보고?

오늘은 목례도 하지 않았다. 안선생의 표정이 굳어지자 민경삼은 안선생 차 앞으로 끼어 들었다가 나갔다, 전처럼 다시 장난을 친다.
안선생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총천연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 때 안선생의 머리 속에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트럭보단 승용차가 빠르지 않은가?’

안선생의 차가 이내 속력을 내자 민경삼의 낡은 트럭이 바로 뒤쳐진다. 예상대로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안선생 헛기침까지 하며 우쭐거렸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교통 경찰의 싸이렌 소리에 바로 똥 씹은 얼굴이 되어 버렸다.

경찰관이 다가와 경례를 했다.

“속도위반입니다. 신분증 좀‥ 어?
교장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런… 망신… 망신… 개망신…

“급한 일이 있으셨나보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경찰관이 짓궂은 미소를 머금곤 이야기했다.

“그냥 가시죠…. 학교 늦으시겠습니다.”

“아...아닙니다. 위반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끊어주십시오 딱지...”

안 들키려 속으로 웃는 게 더 얄미운 법이다. 그렇게 경찰관이 딱지를 떼고 완전 4K 급 총천연색이 되어 버리는 안선생의 얼굴이다.


안선생이 다시 런닝 바람으로 툇마루에 앉아 예의 그 볼펜 깍지를 연신 빨아대고 있다. 이번에는 같이 툇마루에 앉아 과일을 깎던 노부인이 또 한마디 했다.

“아~ 추저분스럽다니까… 피고 싶음 한 대 피던지”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안선생의 귀엔 노부인의 말이 들어오지 않는다. 히죽거리던 경찰관을 생각하면 오금이 다 저렸다. 이런 역사적 망신이 작금에 이르러 어디에 있었던가?

더 가관인 것은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뚜렷하게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위협 운전이라고 하기엔 교장 체면으로 그렇게 신고하긴 쭈글스런 일이다.
그렇다고 주유소에 이야기했다간 당장 그 사내가 직장에서 짤릴텐데… 또 그럴 순 없는 일이고…

아…
방법이 없다… 갑자기 이게 뭐지?
안선생이 다시 머리를 흔들며 볼펜 깍지를 뻑뻑 빨아댄다. 노부인의 레이더에 또 그 모습이 잡혔다.

“아니.. 이 냥반… 요즘 진짜 뭔 일 있어유?”

안선생은 다시 차 앞으로 끼어 들어서 급 브레이크를 밟던 광경이 생각이 나 속이 끓는다. 안선생이 못 알아듣자 노부인이 다시 소리 지른다.

“여보~”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오는 안선생이다.

“응? 뭐? 과일 먹으라고?”

그러자 최근 10년 안 밖으로는 들을 수 없었던 나긋나긋한 노부인의 목소리가 들려 안선생의 귀를 의심케 했다.

“그, 그게 말이유. 어때요? 생각이 좀 바뀌었수?
아, 오늘도 큰애 헌티 전화가 와서 설라무네….”

“아니 이 여편네가 정말!”

그러자 노부인의 입이 나무원반을 끼워 커다랗게 만든 아프리카 부족 입이라 할 만큼 튀어나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서류 봉투를 든 안선생이 차를 타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노부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 차 안타고 나가실라우?”

“놔둬! 차도 쉬는 날이 있어야지”

안선생이 밤새 생각해 낸 묘수였다. 뭐가 무서워서 피한다던가?
조금 불편하지만 며칠만 참으면 제풀에 죽어 안 나오겠지…
뭐 버스도 한 번 타면 학교 앞까지 바로 가는 것이 있어 그리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버스 안은 출근 시간이라 북적거렸다. 안선생이 뒤쪽으로 가 창문 가에 서자 앉아 있던 학생이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섰다.

“나 할아버지 아니야~ 아직 끄떡 없어요… 무시하지 마”

일어서려던 학생도 웃으며 자리에 앉고 학생의 마음이 고마워 따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안선생의 눈에 민경삼의 1톤 트럭이 보였다.

민경삼은 초조한 모습으로 연신 시계를 보며 안선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민경삼의 모습을 보자 안선생이 자기가 히딩크인 몬양 어퍼컷 세러머니를 했다.

“예쓰~~”

주위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안선생은 어퍼컷 한 주먹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라 창피스럽다. 멋쩍은 미소로 무마를 해 내곤 아주 잠시, 민경삼을 골탕먹인 즐거움을 다시 만끽하는데… 왠지 모르지만 끝이 조금 씁쓸해졌다.


기사 등록일: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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