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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가나안_3
왼쪽으로 공동 묘지가 있는 조금만한 고개도 하나 넘어야 했다. 찾아간 집 겉모양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가족을 가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집 가운데를 통로로 만들고 양쪽으로 칸칸이 방을 만들어서 독신자들에게 세를 놓고 있었다. 주인을 찾으니 양쪽에 있는 방문들이 열리면서 머리를 내미는데 마치 마약 중독자 같은 사람들이 머리는 엉크러지고 멍청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젠가 영화에서나 본 마약 환자 소굴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곳을 빨리 빠져나와야 겠다는 생각이 되어 대충 둘러보고 되돌아 나오면서 마치 누가 뒷덜미를 잡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빠른 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다음은 75불짜리 집을 찾아 가기로 했다. 이집을 찾기 위해서는 Macleod Tr.에서 17 Ave.까지 되돌아와서17Ave.에서 서쪽 방향으로 16st.까지 가서 21Ave.를 찾아야 하는데 길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16a st. 21Ave.에 가서 집 번호를 찾아서 노크를 하였다.
할머니가 나와서 누구를 찾냐고 물었다. 세들을 집을 찾는다고 했더니 이 집에는 내가 아직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을 리가 없다면서 친절하게도 들어와서 말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몇시간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걸어 다녔더니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픈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할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할머니는 간단히 점심을 먹던 중인듯 부엌 식탁 위에는 먹다남은 샌드위치와 스프가 놓여 있었고 식탁 중앙에는 황색의 바나나가 한 다발 놓여 있었다. 허기가 져 있는데 음식을 보니 참기가 어려웠다.
만일 할머니가 인사말이라도 바나나 하나 먹겠느냐고 했으면 염체 불구하고 달라고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이런 저런 말을 나에게 묻고나서 내가 찾는 집주소를 보자고 했다. 종이 쪽지에 적은 주소를 꺼내 보여주니 집 번호는 맞지만 16st에서 찾으라고 하였다. 여기는 16a st라고 하였다.
16 st에서 찾은집은 오래된 목조 2층집 이었다. Macdonald성을 가진 사람이 집 전체를 세를 얻어서 아래층은 자기 식구들이 살고2층을 방마다 세를 놓고 있었다. 2층에는 방이 세개있었는데 두방은 잠만 잘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세들은 방은 부엌이 딸려 있어서 음식을 해 먹게 되있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되었지만 다른 방에 세든 사람들은 독신자였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 되었다. 구식이지만 냉장고도 있고 전기 스토브도 있어서 한국에 있을때 19공탄 아궁이를 쓰던것에 비하면 좋다고 생각 되었다.
단지 Macdonald성이 마음에 약간 걸리기는 했지만 그대로 넘어갔다. 나는 이 집에 세들어 살기로 정했다.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한국에 있을때 들은 대로 Manpower라는 곳을 찾아가 상담을 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하였고 교량 설계에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 상담원은 나의 경력에 합당한 곳에서는 캐나다에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제 막 캐나다에 왔는데 어떻게 캐나다 경험이 있겠느냐, 일을 줘야 경험을 갖게 될 것 아니냐고 더듬거리는 말로 되물었다.
채용 하려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막일이라도 있으면 하겠다고 해서 몇군데 소개를 받고 찾아가 봤으나 막일도 경험자를 우대했고 나같은 엔지니어는 자기 직업을 찾으면 곧나가버리기 때문에 싫다고 했다.
집주인인 Macdonald씨는 충고 하기를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보라고 하였다. 나는 신문을 어디에서 사는지도 몰라 맥도날드 씨를 통해서 신문을 집으로 배달하게 하고 맥도날드씨에게 일주일 마다 그가 요구하는 신문대를 지불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맥도날드씨는 나에게서 신문값을 두배를 더 받았었다. 나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매일 같이 자필 이력서를 10여통씩 써서 각 회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한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내 이력서를 받은 회사에서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귀하가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갖고 이력서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은 귀하에게 합당한 자리가 없어 채용할 수 없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귀하의 이력서를 보관했다가 합당한 자리가 있게 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은 문장은 조금 틀려도 비슷한 내용의 답장들이었다. 우리 나라 기업체에 비하면 세련되고 친절한 답장이었지만 거절의 답장 이었다. Macdonald는 내가 직업을 구했나 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볼 때 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그의 관심은 내가 월세를 못 낼까봐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던지 직업을 못 구하자 맥도날드씨는 이번에는 전화 번호부 (옐로우 페이지)에서 내가 구하려고 하는 직업과 관련된 회사 주소를 적고 직접 회사를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라고 조언을 주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매일 아침 걸어서 각 회사를 찾아 다니며 노크를 했다. 한 2개월을 이렇게 걸어 다녔더니 한국을 떠날 때 새로 신고 온 구두가 구멍이 나 버렸다. 이제는 그야말로 유행가 가사처럼 돈도 떨어지고 신발도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가장으로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나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먹고 살 수 있도록 직업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던 중 기도의 효력이 나타났다. Southern Alberta Gas Co.란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여름 방학동안 학생을 채용하려고 하는데 학생이 하는 일도 하겠느냐고 했다. 나는 일을 준다는 데에 너무 좋아서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6월 1일은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여름 방학동안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보잘 것 없는 일시적인 일이지만 나에게는 대기업에 간부사원으로 취직 된 것보다 더 값진것으로 느껴졌다.
첫 날이라 신경을 써서 늦지않게 회사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날 따라 엘리베이터가 늦게 와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때 엘리베이터문이 열렸다. 이 때 기다리던 사람 중에는 그 회사 사장인 Robert Blair씨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사장님에게 먼저 타시라고 할 줄 았았다.
그런데 사장님을 포함해서 모든 남자들이 젊은 여사원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양보하는 것이었다. 여사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엘리베이터에 모든 남자들보다 먼저 몸을 실고 있었다. 37년이 지난 지금은 나도 그들과 같이 잘하고 있지만 남성 위주로 살던 나에게 처음 이러한 경험을 했을때 내가 한국 땅에 있지 않고 캐나다 땅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했다. 참고로 한국에 있을때 목격한 한 장면을 적어 비교해 보려고 한다.
(다음호에 마지막편이...)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2005년 10/28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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