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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캐나다의 정당(2)
총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며 각 당의 지지도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보수당이 선두를 고수하고 있고 NDP가 뒷힘을 발휘해 자유당을 앞질러 보수당을 쫓기 시작했다. 통산 집권 기간이 가장 긴 자유당이 3당으로 전락 했다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민심은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는 것이니 민심을 따르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선거 결과는 아무도 모르고 총선까지는 며칠 더 시간이 있어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지만 여론조사 결과 3당으로 전락한 자유당은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며 오늘날의 캐나다의 골격을 만들었다. 캐나다 라면 연상되는 것이 전국민에 공평하게 적용되는 의료보험, 복지 정책, 깨끗한 환경, 정치적 중립이다.

해외여행을 자주하는 분들은 느끼겠지만 호주, 캐나다 여권으로 여행을 하면 어느 국가를 가던 정치적 이유로 경원 당하거나 욕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캐나다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미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자유당은 경제적으로는 친미주의를 택하지만 정치, 외교적으로 독자노선을 걸으며 미국과 차별화에 노력했던 것이 레스터 피어슨 수상, 피에르 트루도 수상 재임 당시였다.

예를 든다면 월남전으로 죤슨 대통령 때 월남전 전투병력을 증강하며 캐나다에도 동참을 요구했으나 피어슨 수상은 백악관에서 멱살을 잡히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월남전 파병을 거부했다.
역사는 캐나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으나 그러기까지 너무 많은 생명이 피를 흘렸다.

쟝 크리스티엥 수상 재임시에도 미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파병에 동조하지 않았다. 다량 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캐나다의 판단이 옳았다.

196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기존 가치의 변화와 진보가 시대적 요구였다. 여권신장, 성차별,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 금지, 소수계층,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싹 트기 시작했다. 그런 시기에 자유당이 집권해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복지 프로그램이 가동하려면 재정이 필요하다. 경제 호황과 베이비 부머들이 성장해 사회에 진출하며 직업 수요가 늘어나고 이들의 납세로 국가재정이 건강해진 것도 자유당이 복지 프로그램 가동하는데 일조 했다.

흔히 파이를 키우는 게 중요하냐, 파이를 나누는 게 중요하냐는 문제로 보수와 진보가 갈라져 토론을 벌릴 때가 있다. 파이가 없으면 나눌 것도 없으니 우선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파이가 커도 공정하게 나눠지지 않고 힘있는 자,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고 나머지는 손가락만 빨고 있다면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사회 불안요소 사회 갈등요소가 되어 사회통합을 저해해 국가의 기본이 흔들리니 아무리 파이가 커도 그런 파이는 없느니만 못하다.

튼튼한 재정적 뒷받침으로 분배정책을 실시한 자유당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캐나다가 복지천국이 된 이면에는 자유당뿐 아니라 보수당도 큰 몫을 했다. 토미 더글러스가 사스캐추원 주 수상 당시 실시한 포괄적 공공의료 정책으로 토미 더글러스는 ‘캐나다 의료보험의 아버지’ ‘캐나다인들이 존경하는 정치인 1호’로 꼽히지만 공공 의료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보수당 수상 죤 디펜베이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죤 디펜베이커 수상 재임시 다른 주들도 공공 의료 정책을 도입하면 연방정부가 50%의 재정보조를 하는 안이 제시되었다. 연방정부 보조 50%가 확정돼 공공의료 보험이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을 때 그 과실은 자유당이 가져 갔지만 보수당과 죤 디펜베이커 수상은 “캐나다 의료제도는 개인의 부담능력에 의존해서는 안되며 모든 사람이 무상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자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수구적 발상과 기득권 유지, 부패와 도덕적 해이로 잘 치장된 한나라당 같은 정치집단만 보다 이민 온 한국사람들에게는 죤 디펜베이커 수상이 이끌던 보수당이 “보수의 탈을 쓴 빨갱이 정당”으로 보이겠지만 캐나다 보수당은 때에 따라서 자유당 보다 더 진보적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할 때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NDP를 지지하지만 때로는 보수당이 제시하는 진보보다 더 진보적인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켜야 할 캐나다 가치를 위해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 있는 보수당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

미국과 대외정책에서 독자노선을 추구했던 피어슨 수상은 캐나다를 위해 큰 일을 했으니 곧 국기 제정이다. 영국계 이민자가 사회주도 세력이고 1,2차 대전 한국전쟁 때 영국 깃발 아래서 싸웠던 캐나다는 영국기 유니언 잭을 자유의 상징, 캐나다의 상징으로 알고 있었다.

국민통합을 위한 국기제정은 어려운 일이었다. 국민들 대부분은 캐나다 국기에 어떤 형태가 되었던 유니언 잭이 들어가는 것을 원했으나 퀘벡은 국기에서 영국 흔적을 말끔히 없애기를 원했다. 우여곡절 끝에 새 국기 디자인이 선택돼 가장 완고한 극우단체인 캐나다 재향군인회에 새로운 국기가 선 보였다.

어느 퇴역군인이 외쳤다. “당신(피어슨 수상)은 캐나다를 프랑스 놈들(퀘벡)에게 팔아 먹은거요.” 하원은 국기 논쟁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국기 제정을 위해 여름 휴가도 취소하고 논쟁을 벌렸다. 국기를 둘러싼 길고 긴 논쟁은 그 해 12월에 끝났다. 논쟁을 끝내는데 보수당의 레온 벨커가 큰 역할을 했다.

1964년 12월15일 보수당은 지연전술을 써 표결을 연기하려 했으나 하원은 표결을 감행해 16일 새벽 2시 캐나다는 새로운 국기를 갖게 되었다.

맹자는 왕도정치를 주창하면서 하늘이 지도자를 낸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은 말하는 법이 없다. 하늘은 민심을 통해 지도자를 낸다”고 말했다. 맹자의 말대로 며칠 후에는 민심에 의해 캐나다 지도자가 결정된다.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우리는 93년 총선에서 실감했다. 196석의 거대여당이 하루 아침에 2석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표에 의한 심판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원리가 순조롭게 돌아가는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1950년대 집권했던 자유당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50년대 초 캐나다 국민들은 풍요롭고 평안하고 윤택한 생활에 신경을 썼다. 2차대전후 경제발전을 위해 눈을 돌린 천연자원 개발도 순조로웠다. 국민들의 사회 복지프로그램 요구도 60년대만큼 높지 않아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정부가 계획한대로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문자 그대로 태평성대가 온 것이다.

기사 등록일: 201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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