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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기너머 고개밑에 그들은 살아있을까 3/5_김덕선(캘거리 교민)
1989년 4월, 처음 북한 방문시 어머니에게 인사드림. 
천내역에서 진선이가 내게 인사한다.  
1989년 일차 이북 방문시 평양비행장에서 문선이와 포옹.  
최근 김덕선 장로가 펴낸 본 책의 머릿말을 5회에 걸쳐 연재함을 알려드립니다. _편집부

(지난 호에이어 계속)
보통 한 달 봉급이 1~2 달라 밖에 되질 않는 북한사회에서는 외화를 가진 가족들의 생활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풍족할 수 있을지는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평등과 무계급을 주장하는 공산국가에서도 돈의 힘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을 거듭 보게 되었다.
1999년 문이 열린 후 우리의 재정원조로 이북의 식구들은 계속되는 기근 속에서도 별로 근심 없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감사했다.
1950년 눈 내리던 겨울 아침에 가족과 헤어지고 나서의 지난 61년을 회고해 보면,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행운아인가 다시 깨달아진다.
캐나다에 정착하여 아쉬움 없는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자식들도 다 잘 자라주어 각자 자기분야에서 성공하여 일하고 있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는 큰 병 없이 세계여행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여러 가지로 많은 축복을 받은 나의 삶을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날 아침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마지막 순간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나는 벌써 고통과 박해 속에서 죽은지 오래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뒤에 남은 가족들은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을 것이다. 또 우리가 떠남으로써 박해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마지막까지 괴로워 하셨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남한에 내려왔기 때문에 동생들이 가장 고생을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목숨까지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저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책을 펴내는 나의 마음이다.
원래 아버지의 일기는 전쟁 중에 학생들이 쓰는 얇은 공책 위에 필기체로 쓰였는데, 한문을 많이 쓰신 데다 그 한문을 알아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고 또 잉크도 흐려지고 해서 지명과 인명들이 분명치 않은 것이 많았다. 이 책이 인쇄의 단계까지 가는 데는 수 차례의 교정과 타자를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되어 그 고마운 마음은 말로도 또 글로서도 다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문이 가득했던 원본을 옥편을 찾아가며 몇 개월간 수고하셔서 초고를 만들어 주신 김창영 박사님에게는 무엇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일생 잊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초고를 한글로 컴퓨터 에 저장해서 인쇄할 수 있게 만들고 이 책자를 편집 , 인쇄, 발간 등 많이 도와주신 유재신 목사님 사모님 김인 시인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또 영어판으로 번역, 타이프, 교정, 편집 등을 전적으로 도와 준 크리스티나 강(Christina Kang)에게도 고마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영문 번역과 표지 디자인을 하는데 적극 도와주고 이 책자를 만드는데 시종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의 막내 준일(Christopher)의 공도 매우 컸다. 또 우리 딸 수경이와 맏아들 동일이도 여러 가지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 고맙게 생각한다.
마지막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은 아버지 생전 어려운 가운데서도 언제나 맏며느리 노릇 하느라 정성껏 모시고 이북 동생들을 과거 22년 간 다섯 번이나 나와 같이 동행해서 동생들을 친형제처럼 돌보아 주고 사랑해서 아버지 없이 자라며 이북에서 고생했던 그들에게 누나와 언니가 되어준 나의 아내 명선이다. 그녀의 사랑과 따뜻한 마음씨가 철의 장막을 가로 놓고 39년간 헤어졌던 우리 가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어 준 다리가 된 것이다.
2011년 7월에 이 글을 끝으로 책을 내려 했지만 원고 정리를 하는 동안 또 한 차례의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여기 그때의 북한 방문기를 덧붙인다.
앞에 계획한대로 이북의 6차 방문을 위해 희선이네 부부와 함께 9월 25일 캘거리를 떠났다. 아내가 몇 달 동안 분주하게 준비한 의류, 기러기 털 이불 3채, 여러 가지 약, 여러 곳에서 수집한 중고 안경과 희선이의 아내 승연이가 가져온 의류, 생필품 등을 큰 이민가방 여섯개에 채우니 모두 200kg이 되었다.
베이징 에 도착하니 수경이(나의 큰 딸)가 대사관 승합차를 가지고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경이는 2002년 서울에서 당시 한국 주재 폴란드 대사를 만나 2년간 교제 끝에 2004년 8월 폴란드 왈쏘에서 결혼을 했고 2009년에는 사위가 중국 주재 대사로 임명되어 과거 2년간 베이징 에서 살아왔다. 수경이의 큰 딸 알렉스는 토론토 대학 2년 과정을 마치고 이번 학년은 베이징 국제대학에서 공부를 하게 되어 이번에 수경이와 알렉스가 우리와 동행하여 이북을 가게 된 것이다.
평양으로 가는 고려민간항공사 소속 항공기가 2007년 갔던 때와는 달리 크고 새로워져 비행시간이 단축되고 자리도 편했다.
평양에 도착하니 비행장의 건물은 전과 같았으나 입국 수속하는 곳은 많이 변했고 수속 절차도 간단해졌다.
세관 통과 중에 수경이가 가져온 MP3 플레이어가 문제가 됐다. 삼촌들이 고전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것을 알고 밤을 새워가며 약 40시간 분량의 음악을 메모리 칩에 다운로드 해서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도록 하기 위해 4개를 가지고 왔는데, 메모리 칩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면서도 MP3플레이어가 라디오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통관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로 통관시켜 주지 않아 수경이는 밤새 애쓴 보람이 없어진 것을 안타깝게 느껴 눈물을 흘렸다.
안내원이 가져온 승합차에 짐을 꽉 차게 싣고 평양시에 들어서니 벌써 밤이 됐다. 언제나 이북에 오면 거리는 캄캄하고 인적을 보기 힘들었지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었으니 가끔 교통 신호등이 있는 것을 보며 이곳도 자동차들이 그 전보다 많아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첫날 밤은 해방산 호텔에 묵었으나 위생시설이 너무 누추해 다음날 고려호텔로 옮겼다. 해방산 호텔 방값은 한방에 74유로(약 100달라), 고려호텔은 108유로(145달라)로 방값에는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경제 시스템은 너무 이상하고 혼돈되었다. 모든 호텔이나 상점이나 매장의 정가를 북한의 화폐인 원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물론 표시된 원화 가격으로는 물건을 살 수 없었고(실제 원화의 시장가격으로 계산하면 계시된 값이 약 30배 더 되어야 함) 결국 우리가 물건을 살려면 그 정가를 외환(달라, 유로, 엔, 중국 돈)으로 계산해서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이 환율에 따라 거의 매일 변한다는 것이었다.
유로시세가 떨어져 첫날에 내던 방값이 108유로였는데 마지막 날에는 109유로로 올랐다. 또 실제 물건 값을 계산하는 환율도 시장시세와는 관계없는 다른 숫자를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3일 동안 평양에 있으면서 우리는 북한사회(특히 평양)의 문이 조금 열린 것을 보았다. 자동차 수도 많이 늘었고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도 상당히 있었다. 시골(함흥, 황해도은파, 강원도 천내)에 있는 우리 동생들도 전화를 가지게 되었다.
호텔 TV에 중국 CCTV와 영국의 BBC 채널이 나왔다. 시내 곳곳에는 식당이 생겼고 길거리에서는 군고구마, 밤, 음료수를 파는 스탠드가 있는 것을 보았다. 평양 거리는 곳곳에서 건설공사가 한참인데 이것은 내년 김일성의 생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국 행사 준비 프로젝트라고 했다. 그래서 많은 기념관이나 관광지역에 교통이 차단되어 관광이 제한이 돼서 처음 온 희선이네나 수경이는 실망을 했다. 허나 잊을 수 없는 관람은‘아리랑’이었다.
10만 명의 중학생(어떤 장면의 어린이들은 너무 어려 보여 유치원생 같았다)의 단체 경기(Mass Game)였는데 정말 10만 명이 완전히 일동일치가 되어 시계같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경의와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그 어린것들의 눈물 나는 훈련과 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짜릿해서 감정이 착잡했다.
특히 제일 어린 아이들이 나와 공연할 때 옆에 앉아있던 알렉스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오열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 부족함 없이 자유롭게 자랐고 마음이 착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알렉스에게는 그 어린이들이 고된 훈련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에 닿아서 감정이 북받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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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 구입을 희망하는 분은 CN드림 편집부로 연락 바랍니다. 권당 $12불.
☎ 403-875-7911

기사 등록일: 2013-11-15
운영팀 | 2022-06-01 1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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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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