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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수필) 진정, 오늘만이 _ 灘川 이종학<소설가, 에드먼튼>
 
灘川 이종학 <소설가, 에드먼튼> 
한국에서는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병원과 세무서와 검찰청을 멀리 돌아가라고. 신상에 껄끄러운 기분이 드는 공공기관이기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라는 의중이 드러난다.

살아가는데 평상심을 자극하는 예민한 문제인 건강을 비롯한 세금과 사법에 연관되는 일을 다루는 곳이다.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불가근불가원이다.

지난 연말에 나는 병원 문턱을 넘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인류의 적이라고 불리는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폐에 침투하여 간에까지 전이된 매우 공격적인 악성 종양이다. 순간 나는 자신도 의아할 정도로 담담했다. 체념이다.

의사는 항암 치료를 받겠느냐고 묻는다. 지금 상태라면 지상에서 남은 시간은 3개월 이내이지만, 항암 결과에 따라서 1년 이상의 수명 연장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조용히 흔들었다.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다.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니 애써 병원 신세지면서 더 살기를 바라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병고에 부대끼는 고통과 자식들에 떠넘겨야 하는 온갖 병시중은 차마 못 할 짓이다. 미약한 바람에도 언제 꺼질지 모를 목숨 부지하겠다고 가족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가족이 반대하고 나섰다. 첨단 의학이 고도의 발전을 구가하는 현대에 살자면, 병이 났을 때 의사의 권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순리라는 주장이다.

수명은 하늘에 있어도 병을 다스려서 최선의 삶을 제공하는 의술과 사명은 전적으로 의사의 소관이다. 더구나 사회 보장제도가 잘 된 캐나다에서는 무상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국가도 국민의 건강을 맡아 염려하거늘 환자가 치유를 포기함은 자살 행위에 진배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해서 내 주장을 굽히고 항암에 임하기로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암에 경계심을 가졌었다. 내 누님과 남동생이 암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 터라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는 일찌감치 인슐린에 의존하는 당뇨 환자이기에 치명적인 병에 과민함을 당연했다.

그래서 걷기 운동은 오랜 습관이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어디든 가리지 않고 걸었다. 비나 눈이 방해하는 날은 쇼핑몰이나 아파트 파킹 장을 돌았다. 여행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나름대로 적당한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언젠가 한국에 갔다가 청국장 애호가들의 모임에서 암을 몰아내는 특효 비법을 배워서 지금껏 사용한다. 청국장 가루에다 찐 마늘가루, 계피가루 등을 섞어 즙을 만들어 아침 공복에 장복했다.

그러다가 하필이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암이 찾아오다니 못내 섭섭하기는 하다. 하긴 필연은 우연처럼 온다고 하니 순응하는 길이 최선이다.

항암제 주사 치료에 들어갔다. 3주 단위로 1회씩 4회에 걸친 정맥주사를 맞는다. 새로운 세포의 증식과 환자의 건강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 다음 주사 시술 전에 혈액검사와 X레이 촬영을 통해서 반응 정도를 진단한다.

나는 한 번 주사 치료를 해봐서 효과가 신통치 않으면 항암을 중단하고 싶다고 담당 의사에게 당부했다. 항암 주사는 1회에 약 3시간이 걸렸다. 의외로 편안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특이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열흘 후에 사단이 생겼다. 갑자기 혀가 굳어지면서 말이 헷갈리고 팔다리에 힘이 풀렸다. 앰뷸런스를 타고서야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고 언어 장애도 어느 정도 회복된 듯했다.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로구나.

병원에서는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생긴 이상이라면서 입원하라고 한다 꼼짝없이 10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식욕과 잠이 도망쳤다. 독서도 불가능하고 도무지 집중력이 엉망이었다. 바보천치가 따로 없다는 두려움에 모골이 소연했다. 내일 목숨이 다할지라도 책과 펜은 놓고 싶지 않았다.

어렵사리 퇴원하고 나서 나는 암센터를 찾았다. 내심 항암을 중단하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나 X레이 검사 결과를 먼저 일별한 담당 의사의 말은 의외였다. 간과 폐에 자리 잡았던 악성 종양의 위세가 많이 위축되었으니 예정한 항암을 계속하자고 한다.

의사인 자신도 신기할 정도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잔뜩 치켜세운다. 그 바람에 나도 은근히 요행을 바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렇게 해서 네 번의 항암제 주사를 끝냈다. 그밖에도 암의 재발에 대비한 10회에 걸친 뇌의 방사선 치료까지 마무리했다.

암의 재발은 뇌로 전이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3개월 후 담당 의사를 만나기로 예약한 상태이다. 그동안에도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 부족으로 수혈(輸血)과 그밖에 여러 가지 약물 주입을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에 대한 저서를 남겼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런 글들은 지금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쓰리라.

누구나 반복할 수 없는 한 번의 삶,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숙명으로 태어났기에 스스로 여러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출생과 사후까지도 궁금하다.

이 시점에서 ‘오늘’이 유난히 절실해진다.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똑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오늘 발을 담그고 있는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다.


기사 등록일: 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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