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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간의 미국서부 여행기_3
이는 CN드림 11호(1/24일)부터 16호(4/4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연재된 기행문이며 인터넷 CN드림에서는 총 3회로 나누어 싣고 있습니다.


작성 : 캘거리 교민 신금재.

태평양을 끼고 연결 된 1번 도로를 따라 가면서 바다와 파도를 눈이 시리도록 보았다. 이름도 예쁜 Santa Monica를 지나 Santa Barbara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절벽 아래로 미역, 홍합등이 보였고 우리는 날아가는 갈매기와 파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 막내 조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석은 너무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서 우리말을 잘 못하고 형과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곤 하는데 아마도 헤어짐을 직감적으로 느꼈나보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 둘 울고 끝내 어머니도 울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만남의 기쁨도 잠시 헤어짐의 아쉬움이 파도를 타고 일렁거렸다.
이제부터 아무런 동행 없이 우리만의 외로운 순례가 될 것이다. 지도를 보니 샌프란시스코가 태평양을 따라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San Luis Obispo를 지날 무렵에는 점심 때가 벌써 지나 있었다. 우리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웠다. 미국 주유소는 캐나다와는 달리 기름을 넣기 전에 돈을 지불해야한다. Free Pay라고 부르는데 미국에 도착하여 처음 기름을 넣을 때 그 삭막함이란...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는 두가족을 만나야한다. 한분은 남편과 함께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셨던 선배님이고 다른 가족은 나의 이산가족이었다. 우리는 Watsonville를 지나서 거의 Half Moon Bay에 이르고 있었을 때, 길을 물어보기 위해 선배님 댁에 전화를 드렸다. 그분들은 오크랜드 리버모어에 살고 계셨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크랜드는 많은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었고 우리는 San Mateo 다리를 건너 Hayward를 지나 리버모어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리는 할로윈대이에 볼 수 있었던 커다란 호박들이 밭에서 뒹구는 것을 보았다. 장미꽃도 많았고 수확을 끝낸 포도밭도 많이 보았다. 어느 덧 해는 지고 있었다. 다리가 얼마나 긴 지 가도가도 끝이 없었는데, 지도를 보니 13마일이라고 되어있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주유소 앞에 선배님이 나와계셨다. 처음 뵙는 분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고 참으로 반가웠다. 그 가족들도 우리를 편안하게 머물도록 여러가지로 배려해주셨다. 리버모어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를 주셨는데 맛도 맛이려니와 그 분의 정성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민 오신지 5년이 되었고 부부가 함께 햄버거 가게를 하신다고 하셨다. 특히 이번에 딸이 그 유명한 버클리대에 입학했다니... 또 한번 한국인의 긍지를 느껴본다. 우리는 저녁을 마친후 금문교를 보고 나의 이산가족인 고종사촌 언니를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는 캘거리로 출발을 해야 될 듯 싶다. 1월 2일 부터 출근을 해야 하니...
우리는 다리를 내려다보기 위해 산위로 올라갔다. 어렸을 때 달력에서 보던 거대한 그 다리가 거기에 있었고, 이름 그대로 다리는 불빛을 받아 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다리 구경을 할 때 그 옆에는 방송차량이 한대 와 있었다. FOX라고 하는 방송사였는데 지금은 뉴스시간이고 다리 위에서 날씨중계를 한다고 하였다. 방송사 조명 덕분에 우리는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더욱 잘 찍을 수 있었고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져 온 사진 속에는 다리 위의 불빛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산을 내려와 언니가 가르쳐 준 주소로 찾아갔다. 언니를 만나러 가기전 나는 차안에서 우리의 이산가족을 생각하였다. 친정아버지는 황해도 해주에서 1.4후퇴 때 피난을 오신 분이다. 아버지에게 누이동생이 한 분 계시는데 이승만 정권 이후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셨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고모님이 가끔 미국에서 나오셨고, 그럴 때마다 우리 얼마 안 되는 집안들은 모두 고모를 보기 위해 모였었다.
오늘 만나게 되는 언니는 그 고모의 외동 딸이다.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언니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지금 고모는 시카고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것과 언니도 이미 며느리를 본 할머니라는 것등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오크랜드에서 흑인들을 상대로 미용실을 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언니는 생각보다 젊어보이셨고 형부는 머리가 거의 백발이었지만 이야기 하시는 모습에서 젊은이 못지 않은 정열과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1957년도에 이 곳에 오셨고 직접 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일본과 하와이를 거쳐서 오셨단다. 1995년에는 북한 정부 초청으로 고향에도 다녀오셨단다. 단 가족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그분들이 보신 북한의 모습은 전기가 많이 부족한 듯 호텔 화장실이 너무 어두워서 거의 화장을 하실 수 없었다고 한다. 그와 반면에 평양의 도로들은 얼마나 잘 닦아 놓았던지... 고향 근처에서 흙을 가져 오시려고 보니 예전의 그 색깔이 아니라서 그냥 돌아오셨고,한마디로 그네들이 아주 무섭게 느껴지셨다고 한다. 어느 덧 이야기를 하다보니 밤 12시가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서로 손을 흔들었다.
샌프란시스코 선배님 댁에서 떠나던 날 아침에는 간간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햄버거 가게로 출근하시는 그 분을 따라 우리도 따라나섰다. 아들아이는 수퍼 햄버거를 두 개나 비우고 우리는 돌아갈 일정에 대하여 의논을 하면서, 밴쿠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그 곳에는 눈이 내렸고, 도로에는 눈이 녹았지만 아마 로키산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처음에 날씨 상황을 보아서 씨애틀로 올라가서 밴쿠버를 지나 로키를 넘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할 듯 싶었다.
리버모어에서 5번 도로를 타고 Sacramento로 갈 때까지는 그리 눈발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Reno로 향하는 80번 도로를 가면서 날씨는 아주 고약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거의 눈폭풍이라고 할만큼 강한 바람이 불면서 눈보라가 몰아치고 설상가상으로 차는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산을 벗어나야 할텐데... 주머니 속에 묵주를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주어지고 있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은총이 가득하신....
Auburn을 지나서 Donner Lake를 향하여 가고 있을 때였다. 멀지 않은 거리 앞에 눈길에 미끄러진 미니벤이 환자처럼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작은 승용차들이 한 쪽으로 피해 있었고 케네디언 남자가 차 옆에서 "스톱, 스톱"을 외치고 있었다. 순간, 남편은 차를 반대편 길가에 세웠다. 그와 동시에 뒤따라오던 차가 서있던 차들을 '꽝'하고 들이 받았다. 그게 전부였다.


뉴스에서 교통사고가 난 현장사진을 가끔 보았지만 교통사고를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얼떨결에 우리는 거기를 벗어나게 되었고 스노우체인을 팔고 있는 남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스노우 체인을 사는 가격은 50불이었고 설치까지 해주면 70불이란다.
남편과 아들은 내리는 눈을 펑펑 맞으며 체인을 설치하고 나는 아무 도움도 안되는 줄 알면서 그냥 함께 눈을 맞고 있었다. 길 옆에 "Snow Chain Requre"라는 사인이 허수아비처럼 서 있었고, 모두들 차를 세우고 체인을 끼는 모습은 마치 전쟁터의 피난행렬 같아 보였다.
Truckee를 지나 거의 Reno에 도착할 무렵 타이어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는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미니밴을 준비했는데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다니... 참으로 막막했고 후회가 되었다. 작은집 식구들이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에 많이 망설여하는 남편을 거의 "억지쓰는 사촌처럼" 그렇게 해서 출발했는데...
이것 저것 체크해 보던 남편이 아무래도 스노우체인 때문에 타이어에 무리가 간 것 같으니 체인을 벗겨야한다고 했다. 어느 덧 눈발도 점점 약해지고 우리는" Chain Off Area"로 들어갔다. Reno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카지노 간판이 눈에 띄었다. 마치 작은 라스베가스 같았다. 이제 네바다주 사막지역에 들어왔으니 눈발도 약해지고 도로 위의 눈도 녹아서 우리 차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남편은 오늘 밤 안으로 가능하다면 유타주에 도착하려고 하였다. 하루에 평균 1000Km 정도 달리는 것이 애당초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늘 뜻밖의 눈을 만나 거의 저녁 때가 되어가는데 절반도 못 왔다며 남편은 내심 불안해하였다. 유타까지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고 사막이 거의 끝나가는 Wells나 West wendover를 목표로 삼고 밤길을 정말로 무섭게 달렸다. 미리 호텔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빈 방이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Wells를 약 50 마일 앞두고 Elko라는 시골마을에서 쉬어가기로 하였다. 눈길에서 너무 신경을 쓴 탓인지 운전을 하지 않은 나도 점점 피로감이 몰려왔고 더더욱 남편은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우리는 길가 옆에 있는 "Vacancy" 안내판을 보고 모텔을 찾아들었다. 미국으로 내려올 때는 CAA에 가입한 숙소를 예약해서 10%정도 싸게 묵었지만 아무래도 좀 비싸겠다 싶었는데 비수요기라서인지 가격은 거의 40불 정도였다.
어머니께서 돌아올 때 싸주신 인스턴트 콩나물 국밥에 끓는 물만 부어서 먹으니 속이 한결 시원해졌다. 내일 날씨가 궁금해서 TV를 켰을 때 우리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화면에는 바로 우리가 지나온 Reno 의 산꼭대기가 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글짜로 "Snow Mobile Killing" 이라 써있고 여러 건의 교통사고를 방송하면서 'Snowstorm"을 예보하고 있었다. 남편이 '휴"하고 한숨을 쉬면서 좀더 가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갈 길이 걱정되는 우리는 아침 7시쯤 모두 기상하였다.
창 밖으로 조금씩 눈이 날리고 있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이제는 눈이 무서워졌고 그러면서 더 많은 눈이 오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우린 두번째의 시련을 만났다. 지난 번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Salt Lake City를 15마일 앞둔 Magna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 눈, 눈... 마치 눈의 모습을 한 악마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우리 차는 애벌레처럼 꿈툴거리며 기어서, 기어서 갔다. 아름다운 나비의 환생을 꿈꾸며 그렇게, 그렇게. 너무나 긴장을 하고 있었더니 어깨도 아프고 배도 아파왔다. Salt Lake에 들어오니 산 위로 몰몬교 본부인 웅장한 돔건물이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곳인데 ...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우리는 몰몬교 선교사들에게 영어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선교사 정신"에 우리는 감탄을 했었다. 아들아이보다 불과 서너살 많은 젊은이들의 온 몸과 마음이 선교사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커피, 담배등을 일체 하지 않았고 TV도 금지되어 있었다. 볼링을 즐겨서 하였는데 가끔 우리도 동행하면 철저히 "Dudch Pay"를 하곤 하였다.그들 종교의 정통성을 떠나서 인간적인 존경심이 우러날 정도였다. Ogden을 지나서 15번 도로로 올라오니 서서히 눈이 그쳐가고 있었다.
Malad City를 지나 Pocatello로 가는 길에, 보이는 산들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 같았다. 남편은 여러 날 운전에 지치고 짜증이 날 텐데도 그런 풍경이 나올 때마다 "야, 정말로 운치 있네. 얘들아, 그렇지 않니?" 하며 동조를 요구해왔다. 나는 그러는 남편이 고마워서 웃었고 ,아이들은 졸린 눈 비벼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아빠의 피로를 덜어주려 애썼다. 이제 아이다호주에 들어왔으니 몬타나 한주가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올 때 둘째 날 묵었던 딜론까지는 170 마일 정도가 남아있었다. 우리가 미국으로 내려오던 첫째날, 딜론에서 묵었던 것은 그 아래부터가 산길이기 때문에 해진 뒤에 내려오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Idaho Falls를 지나 Lima로 가는 길에 해는 넘어가는데 또 눈이 내렸다. 그러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제설차가 우리 옆으로 다가오더니 계속 눈을 치우면서 갔다. 덕분에 우리는 딜론까지 큰 어려움없이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딜론까지 오자 남편은 길만 괞찮으면 몬타나의 주도인 헬레나까지 갈 수 있다며 욕심을 부렸다. 우리는 다시 목표를 바꿔 길을 떠났다. 그런데 한국전쟁 기념관이 있었던 Butte에 들어오자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직 헬레나까지는 60여마일이 남아 있었고,
차는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온통 주위는 어둠뿐이었다. 가끔 차의 전조등을 위로 비추면 마치 눈송이들이 한꺼번에 우리를 삼키려는 거대한 상어의 입처럼 보였다. 헬레나는 주도답게 제법 규모가 컸다. 우리는 쉽게 CAA에 가입한 모텔을 찾을 수 있었고 아주 쾌적한 환경의 방에서 그 밤을 보냈다.
난 그날 밤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날은 2002년도의 마지막 날이었고 내일은 새해 새날이었다. 어딘지 장소는 분명치 않았고, 남편이 나에게 뭔가를 내밀어주는데 아주 중요한 서류인 듯 금박을 입힌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아주 조심스레 넘겨 받는 그런 꿈이었다. 정확한 해몽을 할 줄은 모르지만 뭔가 길몽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난 마음 속으로 새해에 남편이 하고자하는 모든 일들이 잘 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새해 새날이 화창하고 맑게 밝았고 드디어 캘거리로 출발했다. 내려올 때와 같은 길인데 무척 새롭게 보였다.

Great Falls를 지나 Sun River를 건너갈 때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무척 평화롭게 보였다. 아마 낚시를 하며 신년설계를 하는가보다. 어느덧 차는 Shelby를 통과하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오던 첫 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던 곳이네... 이제 국경이 잇는 Sweet Grass까지는 90여 마일이 남아있다. 점점 캐나다에 가까이 올 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히려 길이 많이 남았을 때는 담담하더니... 내려갈 때와는 달리 국경에서의 검색이 의외로 간단했다. 쇼핑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는 정도였다. 국경을 넘자 우리는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졌다.
LA에 있을 때, 날씨가 너무 좋다며 캘거리로 돌아가기 싫다던 아이들도 드디어 이제 집에 다왔네하며 좋아하였고, Welcome To Alberta 사인을 보자 남편도 환호성을 질렀다. Lethbridge에서 우리는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갔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미국과 캐나다가 다를까? 차를 주유기 옆에 세우자마자 주유소 직원이 뛰어나오면서 "Happy New year"로 인사하고 기름을 넣는 동안 앞차유리를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드디어 캘거리타워가 자그마하게 나타났다. 바람불고 눈이 와도 내 집이 있는 캘거리에 들어오니 행복했다. 아이들도 긴장이 풀리는지 그제서야 우리집은 잘 있나하면서 서로 농담을 하였다. 집에 도착하여보니, 가라지 앞에 눈이 깨끗하게 쓸어져 있었다.아마도 옆집 짐아저씨일거야. 떠날때 인사도 못하고 간단한 메모만 남겨놓았는데... 우리의 12일 동안의 미국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언제나 하느님은 우리 곁에서 지켜 주신다는 것과 내가 사는 캐나다가 역시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여행이었다.
(후기)
처음에 미국 지도를 받아들었을 때는 막 인쇄한 잉크 냄새가 솔솔 배어나오고 있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올 즈음, 지도는 전쟁터의 패잔병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너덜너덜 헤어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 위의 수많은 이름들은 아무런 의미없는 그냥 하나의 의미없는 글자이더니 우리가 그곳을 향해 달려가서 거기에 안길 때마다 그 이름들은 거대한 바다위의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일어나 우리를 맞이하곤 하였다.
우리가 불러줄 때 의미있게 다가오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부족한 여행기를 실어준 CN 드림과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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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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