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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에서(일곱번째)
빨래터에서(일곱번째) 1996년 12월 모든 사람들이 한껏 들떠있었다. 연말 경기가 괜찮은 모양이었다. 파티에 가려고 파티복을 세탁하는 사람들, 양복이나 드레스를 새로 사서 고치는 사람들, 세탁소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동물인가 보다!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개미들은 긴 겨울을 대비해서 여름내 열심히 일해서 양식을 저축한다. 기러기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남쪽을 향해서 긴긴 여행을 미리미리 떠난다. 개구리들은 땅속 깊이 들어가서 동면을 준비한다. 그런데 왜 유독 사람들만은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비를 하지 않는 것일까! 연말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한 두주 전에 세탁을 해 놓거나 수선을 부탁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꼭 하루나 이틀 전에 와서 해달라는 성화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낯익은 손님들이 부탁하는 것을 야멸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세탁물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물량이 평소보다는 두 배가 넘었다. 매상이 오르니 좋아해야 할 텐데, 손님들 마다 “Rush (급하게 세탁을 해달라는 것)”라고만 하니 야단이었다. 해준다고 할 수도 없고 안 해준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세탁 기계가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 놓겠지만, 우리 같은 Depot는 사정이 달랐다. 공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게다가 옷 수선 까지 밀려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연말 경기를 잘 잡아야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1월과 2월을 무난히 넘길 수 있으니, 죽자 사지자 일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부터 남편과 함께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 바쁘게 돌아갔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유~ 바빠 죽겠는데 누구야~?” “여보세요?”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뭐라구요~?” 남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쩔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 해주세요” “왜 그래~?” “일이 터졌어……” “뭔데~?” “공장에 세탁기계가 고장이 났데!” “어머 어머! 어떻게~! 오늘 꼭 나가야 하는 물건들이 많은데!” 파티에 입고 갈 옷들이 많았다. 울고 싶었다. 어쩐다~! 그러지 않아도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업친 데 겹친 격이 되었다. “왜 이렇게 일이 꼬일까!” “여보~ 넋잃고 있지 말고 빨리 오늘 꼭 나가야 하는 것만 적어서 공장에 알려줘야 돼!” “아유~ 난 몰라~” “신경 곤두세우다가 실수하지 말고 빨리 하자구!” “에이~” “다른 공장에 가서 급한 것만 빨아 가지고 와야한데…” 오늘 해주기로 약속했던 세탁물을 쪽지에 적어서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쪽지를 가지고 공장으로 갔다. “아유~ 잘돼야 할텐데……” 20분 후에 남편이 돌아왔다. “그 쪽 사정은 어때?” “그 쪽도 아우성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구!” 그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전화 받아 봐~ 난 전화 받기가 무섭다!” 전화를 받은 남편의 얼굴이 조금 전 보다 더 사색이 되었다. “무슨 일이야~?” 내 목소리에 날이 섰다. “……” “무슨 일이냐니까~?” “… 공항에 가야 하는 걸 잊어버렸어…!” “뭐라구~?” “오늘 어머니랑 막내가 LA에 가는 날이잖아” “아유~ 정말 미치겠다구~~~” 나는 나도 모르게 악을 썼다.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할꺼야~?” 남편은 부랴부랴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시동생네도 눈코 뜰새 없이 바빴고 거리도 어머님 댁에서 멀었다. 시형님 댁도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단다. 너무나 열이 바쳐서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침착해야 된다는 것은 생각뿐이었다. “택시타고 가면 안돼~?” 소리를 질렀다. “연말이라 택시도 부르기가 힘든가 봐” “난 몰라 가지마!” “여보~ 어떻게 안가니~” “그럼 난 어떻게 하구~~~” “여보~ 내가 얼른 다녀올께” “가지 말라구 했다~~~” “여보~ 정말 미안해. 조금만 참아! 내가 빨리 갔다 올께. 실수하지마!” 남편은 자동차 열쇠를 들고 뛰어 나갔다. “여보~~~ 정말 갈꺼야~~~” 남편의 뒷통수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악을 써서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하나님, 제발 무사하게 다녀오게 해주세요!” 내가 뭐라고 해도 남편은 갈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시댁 식구들에게 끔찍한(?) 것이 내게는 불만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저런 사람을 만났단 말인가! 내가 참으면서 살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어쩔 수 없으니 내가 삭이면서 살수 밖에 없다고 나 자신을 달래곤 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너무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머님이 LA에 안 가실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두 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인데, 세시간이 넘었는데도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사고가 난건 아니겠지…… 에고~ 소리를 지르지 말 껄…” 성급한 손님들은 오늘 해주기로 한 옷을 찾으러 왔다. 사정사정해서 5시 이후에 오라고 달래서 보냈다. 저녁 때까지 해주어야 하는 수선을 하면서 손님을 대하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 양반은 왜 안 오는거야~!” “제발 사고가 나지 않았어야 하는데……” 날은 어두어져 오는데, 눈발까지 휘날리고 있었다. 일이 바쁜 것도 걱정이고, 공장에서 세탁물이 제대로 올까? 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남편이 더 걱정이 됐다. 남편의 차가 주차장에 들어 오는 게 보였다! 여지껏 남편의 차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된 거야~?” “말도 마~! 연말이라 고속도로가 난리야 난리!” “……” “지금 오는 것도 다행인 줄 알아!” “아휴~ 당신이 무사히 와서 다행이다!” “걱정했어?” “그럼~” 눈을 흘겨 주었다. 눈을 흘겼지만 내 얼굴이 화난 얼굴이 아니었나 보다. 남편의 얼굴이 처음보다 많이 펴있었다. 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각오를 했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마음이 넓은 여자야! ㅎㅎㅎ’ “힘들었지?” “말이라고 해~? 어머님은 잘 가셨어?” “어~ 난 뭘할까?” “아직 물건이 안왔어. 전화해 볼까?” “기다려~ 그쪽에서도 속이 새까맣게 탈텐데…” 보통은 4시반에서 5시 사이에 물건이 왔었는데, 6시가 지나서야 물건이 왔다. 공장 주인도 사색이 되어 있었다. 세탁소 안에는 세탁물을 기다리는 사람이 대여섯명이 있었다. 재빨리 분류를 해서 손님들에게 주면서 “Happy New Year!”를 연발했다. ‘제발 사고 없이 오늘이 지나가라!’ 그런데 일이라는게 참 묘했다! 항상 안 와도 되는 물건들은 다 잘 오는데, 꼭 와야 하는 물건은 안 올때가 많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그런 것을 Murphy’s Law 라고 한다고 했다. 손님중의 한 사람이 연말파티에 입고 갈 옷이 오지 않은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손님이 신신당부했던 옷이었다. 손님의 얼굴이 하얘졌다. 공장에 전화해보니, 다행히 빨기는 했는데 다리미질을 못했다고 했다. 손님에게 집에 가있으면 배달해주겠노라고 했다. 남편은 손님에게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고 공장으로 떠났다. 가계에는 아직도 옷 수선을 기다리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마음은 바쁜데 손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시계는 7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애초에는 연말이라 5시에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실수하지 말자. 실수하면 끝이다!” “Thank you Lina. Thank you!” “Have a good time! Happy New Year!” “See you next year!” 마지막 손님이 떠난 시간은 문을 닫는 시간에서 40분이 지난 7시 40분이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꿈만 같았다. 우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서 한동안 멍~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여보~ 당신 너무 수고했어!” “…… 아휴~ 말도 못하겠어!” “힘들었지?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 여보 우리 기도하자” 우리는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일년을 무사히 지낸 것, 오늘같이 힘든 날 아무 사고 없이 손님들과 “Happy New Year!” 인사를 하면서 웃으며 한해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다. “여보 빨리 집에 가자 아이들이 배고프겠다” 세탁소 문을 나서는데 차가운 눈발이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꼬리글: 우리는 요즘도 가끔 그날을 이야기한다. 13년간 세탁소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하루 매상이 13년간 세탁소 매상중에 최고기록이였다. 다시 한번 그때 세운 기록을 경신해 보고 싶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였다. 점점 스몰비즈니스가 힘들어져 가고 있다. 동포들의 경제기반의 근간인 편의점과 세탁소가 어려움을 격어서 걱정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기사 등록일: 200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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