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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에서 온 편지
6.25가 휴전되고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남과 북의 사상전은 끊이지않고 있어 방첩요원의 기세가 아주 등등하던 시절에 나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당시의 캐나다는 한국의 정치적영향이 덜미치는 아주 먼곳이어서, 좀 느슨한 분위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몇몇사람이 이북의 고향집을 다녀온 파격적 '사건'을 빼고는, 많은 이들이 아직 속내를 홀가분이 서로 터놓지 못하고 조심하며 지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내게 공산당의 선전물이 든 소포가 하나 배달되었습니다. 생소하기만한 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도대체 누가 나를 어떻게 알고 '예비 빨갱이'로 점찍고 있는가? 우선은 겁도났고, 한편으로는 내게 이런 일도 일어나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주관이 분명할 수 없는 어릴때부터 주입교육된 반공사상은, 내가 지금 개인의 자유가 최대치로 보장 되는 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까먹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포를 끌러본 순간, 그 빨간책 속의 그'위대하신 김일성장군 동무'가 뛰쳐나와 나의 목을 조를듯하였습니다. 어느 한인회장집에 모인사람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누군가에 의해 사진찍혀간다는등 흉흉한 소문까지 나 돌지 않았던가, 나의 공포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말부터 6.25까지를 겪어온 우리들은 어쩌면 가장 불안한 시기를 산 사람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던 해 겨우 너덧살이었던 내게는, 하나로 이어지는 당시의 기억들이란 별로없고 대개가 토막들뿐입니다. 어린아이가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고 얼를만치 공포분위기나 참담한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누구나 할것없이 부족한 형편이던 때라서 그런가, 아니면 어렸을 때이어서 그런가, 내게는 설탕배급이 아직까지도 그중 또렸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겐 당장 입에만 달콤한 것이 아니고, '이젠 좀 잘 살 수 있겠지' 하는 절실한 기대이었습니다. 이 소망이 실현되기도 전에 남과북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치하면서 6.25라는 유례가 흔치않은 동일민족간의 싸움을 하게 됩니다. 남쪽의 멸공통일이나 북쪽의 사회개혁 통일이나, 어느 것이나간에 이 전쟁은 같은 민족간의 일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 사상이 점입된것은 1920년대 일입니다. 이 일본 식민기간에 한국인의 의식에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이 사회주의와 민족사상입니다. 남의 종살이하면서 자주독립을 바라고 그 사상적 근거를 세우려는 민족사상이야말로 자연스런 겨레의 요구였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자본이 밀려들어오면서 공장이 세워지고 새로 생겨난 공장노동층의 사회운동도 아주 당연한 필연이었습니다. 이들 무산대중이라는 새로운 힘은, 많이 가진 사람도 하나의 시민일 뿐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한 미군정의 지주옹호책에 심한 반발을 갖게 됩니다. 근본적 사회개혁없이 민주주의란 구호가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이조 수 백년의 고질이 동학을 치루고서도, 일본식민기간 수십년의 폐해가 해방을 맞고도 고쳐지질 않은 채 우린 엉뚱한 정치 '이념'다툼을 하게됩니다. 이념이란, 더는 쪼갤 수 없는 최소단위의 각개 개인의 생각에 열성을 넉넉히 섞어넣고서 그것을 사회라는 전체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때 생겨나는 체제의 막강한 힘입니다. 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의 '천점바구'나 '솥뚜껑'같은 수많은 빨지산들, 소위 '인민의 영웅'들이 목숨을 아끼지않고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영웅심은 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끓는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영웅은 언제나 옳을 수 밖에 없습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는 약간의 사실(史實)을 말하려고 길고 힘든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작업은 해방에서 민족분단의 비극 상쟁까지 우리나라 현대사의 중요한 기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일입니다. 결국 6.25는 분단된 이념의 한판 대결이었지만, 사실 그 이념이전에 있어야 할 것은 민족이며, 우리민족의 제일차적 요구는 사회개혁이라는 진실입니다. 따라서 사회개혁이란 공산주의만의 전용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민주이기 때문에 더욱 써야 할 말이며 또한 맘놓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할 단어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살던 당시의 우리나라'대통령 할아버지'와 그의 정부는 백성들에게 그리 너그럽지 못하였고, 개인의 속내까지도 속속들이 간섭하려 했습니다 천대받는 현실에서 공정한 세상을 그리던 백정이나 머슴, 소작인들에게 이념 사상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빨지산중에서도 그중 걸작인 '하대치'쯤 되는 인물이라면 사람냄새가 물씬거리는 그의 고향말씨로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잘 갤차질랑가 모르것소만 잉?...거 뭐시냐, 사람이 다 다릉건 알지라? 그랑께 생각(Idea)도 다 제각끔인게라. 근데, 쪼가리 따로따로는 아무 실짝도 없고 고걸 한데 묶개가지고 시상(Society)사는법 맹키로 쌈박허니 끓애야 허는거이 중헌 것이여. 무신소린가 하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죽어불란다허는 맴을 독허게묵고 용맹정진혀야헌당께. 근디말이시, 간이 에지간히 작아도, 가심에다가 열성(Passion)을 뜸북허니 뿌레부리먼 힘이생기는게라. 기게 바로 사상(Ideology)인게라. 알아 묵것소?' 이제, 자유세계에서는 정치적이념을 말하는 목소리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엠 아이 티의 노옴 춈스키 같은 이는 지식인들의 의식속에서 이념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전체체제는 언제까지나 이념으로 대중을 감금하고 조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한편, 인간의 가장 근본적 욕구이자 민주자본사회의 근간인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축적이 지나칠 때의 폐해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령 자유가 책임으로 각색되지 않으면 사회 전통과 질서의 파괴가 있고, 욕심이 정도를 넘어설 때 전체의 공평성의 균형이 깨져 불만을 일으키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정치적이념보다는 민족자주의식을 앞세우는 지금의 한국을 보고는 참 다행이라 여깁니다. 그 누구도 수 십년전의 우리들과 같이 왜곡되고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지 않은 것을 보면 통일은 멀리있는 것만은 아니란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리 겁에 질려서만 살았는지... 같은 형제끼리의 살륙도 불사했던 것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그랬는가, 공정한 세상에서 살아보자는 일차적인 소망은 도대체 어떻게하여 좌절되었는가? 남북은 서로 힘을 재며 때때로는 위기의식을 고취 국민을 조종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종전이 되고 반세기 지나 다시금 전쟁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독립이 아니었던 것은 우리의 땅에서 미쏘의 전쟁이 수행되었다는 사실때문이었는데, 또 한번 우리가 원하던 아니던 우리의 마당을 전쟁터로 빌려 주어야되는가. 통일의 염원이 고조되어가고 있는 지금, 한번 더 이 사실은 분명히 정리되어야 하는게 아닌가합니다.

기사 등록일: 200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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