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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 나서 시작한 골프니까 벌써 몇년되나 봅니다. 나야 남다른 소질을 타고 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나이 들어 배운 것이라 맘대로 되지 않아서 심술이 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내가 가상한지 가끔 가다가는 공이 날 놀래킬 적도 있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그건 내 실력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남이 '약'을 먹이면 곧잘 주눅이 드는 데다가 마음관리가 잘 되지가 않아 자칫 조심없어 몇 점 까먹기가 일수입니다. 골프장에서 성적이 부진한데에는 핑계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어떻게든 저만 먼저 치고서는 훌쩍 앞서 걸어나가는 친구, 공을 잘쳐 놓고는 장황한 자랑, 안 맞으면 또 그것대로 구구한 변명을 늘어 놓는 이, 남 치려는데 스윙은 이래야 한다는 둥 자청하여 가르치려는 녀석, 핀은 뺄 생각도 꼽아줄 마음도 전혀 없으면서도 제 차례에는 남이 알아서 살펴주기를 바라는 얌체, 하여간 속상하게 만들어 남 골프 망치는데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친구들과 짝이 되면 그날은 점수 잘 나기는 영 그른 날이라고 아예 맘을 접어 버립니다. 그러다가 내게 밉보인 녀석이 제이크입니다. 키가 6척이 넘는 거구를 구부정하니, 마음이 발걸음보다 앞서가듯 늘 바쁜 사람입니다. 그의 말씨로 보면 유럽계인 듯 세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어, 나는 녀석이 노르웨이의 어디쯤에서 온 촌놈이라고 속으로 작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의 골프래야 대수가 아닌데다가 저만 얼른 쳐 놓고는 공줍는 장대를 꺼내들고서 휘청휘청 앞서가는 꼴을 보고 있으려면 그날 골프는 다 친것으로 해둬야 합니다. 소문반 내 짐작 반이기는 하지만, 녀석은 70평생을 힘겹게 살다가 말년에 홀아비가 되어 연고자 하나없이, 그렇다고 넉넉히 모아둔 것 없이 노인관 같은 곳에서 그럭저럭 지내는 노인이라고 합니다. 우린 6.25때로나 거슬러가야 양말이나 바지 무릎 기워입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 북미주에서 헌 저고리 기워입고 다니는 사람은 난 또 처음 봅니다. 그나마 값싼 골프가 유일한 낙인듯 매일 골프장을 이곳저곳 돌며 지내는데, 사실 골프보다 공 줍는 일이 더 우선인 것 같아보입니다. 가끔은 골프를 하다 말고 허둥지둥 골프 구루마를 끌며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서두르는 폼이 저녁때를 맞추려는 듯, 좀 측은하다는 맘이 들긴 하지만 워낙 독한 그의 몸 냄새 때문에 차를 태워준다는 생각은 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저를 얼마나 이쁘게 여긴다고 글쎄, 하루는 집에 가려는 우릴 불러 세우는 그의 의중을 짐작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편의를 봐줬다가, 그 역한 냄새가 한 일년은 안빠지겠다는 아내의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골프보다 딴 재미에 더 맛들인 친구들 중에서 크래런스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를 처음보면 먼저 눈에 띠는 것이 있습니다. 후기 고딕에서 초기 르네상스로 넘어오는 시기의 이탈리안 화가 도메니코 기란다이오 그림속의 한 할아버지의 병들어 일그러진 코, 바로 그런코를 달고다니는 이가 크래런스입니다. 어지간히 마셔대고 있구나 했는데, 어느 짬에 읽어두었는지 자연환경보존 및 오염문제에 관한 그의 논조는 아주 깔끔하니 놀랄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버릇은 아무래도 환경오염에 대한 어떤 신념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렵고 깡통주어 팔아서 푼돈이나 쓰는 것이 분명합니다. 양쪽 부모의 화해임무로 방문한 중년여인이 된 딸 앞이라해서 그 버릇 어디 갈리가 없습니다. 핀잔을 들으면서 딸이 안보는 데서는 주은 깡통을 얼른 발로 밟아, 우그려 남은 음료가 질질 흐르는 체로 바지주머니에 쓸어넣던 그는 내눈과 마주치자 머쓱하니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대서양 연안의 어느 도시에 살고있는 부인과 화해하고 지금은 여기에 없습니다. 난 이런 크래런스를 제이크보다는 한점 점수를 더 주는 이유는 그의 말솜씨나 해박한 지식도 그렇지만 결정적인 것은 견디기 어려운 몸냄새가 없을 뿐더러 손으로 코를 푸는 일 따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점에 대해선 나의 짝인 앤디나 에밀리도 나와 뜻이 같습니다. 공줍기로 하면야 앤디도 제이크만 못지않은 것이, 어느날인가 제집 지하실에 제법 수백개는 줏어 구했다고 자랑을 하며 내게도 나누어 주겠다던 것이 한해를 다가고 있는데도 아무런 기별이 없는걸 보니 곧 얻어쓰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앤디, 에밀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넷이서는 제이크 따위 인간들을 놓고서, 누구던 골프를 즐길 권리를 말하기 전에 최소한 기본예의는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 처음이 저를 다듬는 것이라는데 만장일치로 가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흘깃흘깃 본인들도 모르게 제이크를 심판에 부쳐 몇번이고 유죄선고를 때리곤 하였습니다. 아이크 부부는 또 다른 나의 골프 친구들입니다. 아이크도 그렇지만 그의 부인인 뮤리얼은 천성이 여간 따뜻하지가 않습니다. 제이크의 몸냄새만은 못해도, '김치'숲은 서양사람들에게 얼마나 고약한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마주서서 애기 할 때면 숨을 죽여야만 하는 나를 껴안고 인사하는 이들의 친절에는 가식이 없습니다. 회계사였던 직업때문이랄까 조그만 것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이 빈틈없는 그가 냄새를 못 맡을리가 없을텐데...그런 그가 어느날 제이크의 얘기를 꺼내며 뜻밖에도 그를 옹호하고 나선 것입니다. '왕따'당해 머쓱하니 혼자인 제이크를 모른체할 뮤리얼이나 아이크가 아닙니다. 어떻게 제이크의 말문을 열을 수 있었는가는 모르지만 그들이 알아낸 제이크에 관한 사실은 아주 상상밖이었습니다. 내 짐작과는 다르게 90이 가까운 나이에 매일 골프를 할 수 있다는 정력도 그렇지만, 그는 젊은 시절에 인쇄사였고, 세계대전때는 통역사로도 활약하였다는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숲속산골의 무지막지한 촌놈과는 다른 엉뚱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무안하게 한 것은 공을 줍는 것이 푼돈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선 모금에 협조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있었습니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넉넉해 뵈는 한 부인이 활짝웃는 얼굴로 면담하는 것을 본일이 있습니다. 돈잘버는 남편만나 골프장옆에 집짓고 할일이라곤 끔직이도 없어 골프공이나 주어모아 좋은일에 쓰라며 희사한다고 제입으로 떠벌리는 것은, 제이크의 묵묵히 해온 몇 년 그것도 제자신은 새공 사서 쓸 형편도 못되는 주제에 먼저 남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부인의 것과는 격이 다른 것입니다. 리쳐드 칼슨의 '하챦은 일로 땀 뺄릴 없다'는 글은 뭐 대단한 지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아는 것들을 새삼일깨워 준다는데 그 힘이 있습니다. 좋은일 하나쯤 했다 하면, '방송'은 아니더라도, '자네한테만 말하는 건데, 내 자랑하자는 것은 아니고'' 어쩌고 하는 그 '보고'는 사실 저를 내세우는데 있는 것입니다. 난 60여년을 살며 많은 사람들을 경험하였고, 보는 눈 하나는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나의 그 지혜의 눈은 그 얄팍한 살갗을 꿰뚫고 보지 못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제이크는 오늘도 그 큰키를 우리들 보통사람에 맞추어 낮추려듯 구부정하니 예의 공 건지는 장대를 들고 나섭니다. 헐리웃의 잘 알려진 이들의 서명하나쯤 고사할 일 없는 것은 그것의 희소가치가 돈으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난 그 어느 누구의 허영과 자랑 쪼가리 보다야 제이크 같은 사람의 서명하나는 받아두고 널리 기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코 푼 손으로 악수나 청하면 어쩌나 하여 내가 대신 하는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편집자 주) 본 글은 CN드림 2003년 8/22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Copyright 2000-2004 CNDream. All rights Reserved

기사 등록일: 200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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