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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가족 코미디) “아가야 니빵 내가 먹었다” _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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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휴대폰 진동 소리에 연준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마자 그 심장이 뛸 때마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엄습해 와서 인상을 찡그려 본다. 맥주 한 잔도 못 마시는 연준이 어제 그 맥주 한잔으로 정신을 잃었다. 여긴 어디지? 주위를 둘러 보니 목욕탕 수면실이다. 그래도 목욕탕 담요지만 가지런히 자신에게 덮여 있던 담요…
“아 시파… 전화 좀 받아요~”
옆에서 잠 자던 손님이 신경질을 낸다. 그래 전화… 전화… 허둥지둥 겉옷 안 주머니에 들어 있던 전화기를 꺼내 통화 버튼을 제꼈다.
“여보세요?”
“네”
“조연준씨 되십니까?”
“예… 제가 조연준입니다만…”
“여기 도봉 경찰서인데요… 이규원씨 아시죠?”
이거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다. 대부분 경찰서에서 전화 오면 안 좋은 사건이 주인공에게 닥친 것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라곤 입양 기관 사무원들과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신부님들, 싸가지, 그리고… 동생인 줄 알았던 규원...
연준은 규원이란 이름을 그것도 경찰을 통해 듣자 겁이 덜컥 났다. 무슨 일 저지른 것 아닐까? 혹시… 나쁜 짓이라도 했으면… 거기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겠다고 해 불안감이 더욱 더 엄습해 왔다.
생전 처음 한국의 경찰서란 곳을 방문해 보는 연준이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경찰서는 가 보지 못 했을 정도로 연준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 이를 악문 모범생이었었다. 두리번 거리며 이 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연준이 끝내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 뭔갈 물어 보곤 연신 허리를 굽신 거린다.
미국에서 본 한국 영화에서는 경찰서 안이 대부분 난장판으로 묘사 되어 있었다. 시끄러운 사무실 안, 잡혀 와서 소리 지르는 깡패들, 그 사이에서 짜장면 먹고 있는 껄렁한 형사들… 하지만 연준이 본 실제 경찰서는 너무도 깨끗했고 조용했고 다르게 표현 하면 좀 엄숙했다.
“아… 네… 조연준씨!”
기다렸다는 듯 형사 하나가 연준을 맞았다.
“괜찮나요? 무사한가요? 이규원씨?”
그러자 형사의 얼굴이 생뚱 맞다는 듯 벙 찐다.
“예? 괜찮죠… 왜 안 괜찮겠어요? 경찰서 안인데…”
형사의 반응을 보니 나쁜 짓을 한 것 같지는 않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안내 해 주는 형사를 따라 긴 복도 하나를 지나 묵직한 철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용의자들을 임시 가둬두는 유치장의 모습이 보였다. 연준이 두리번거리며 규원을 찾는데 안 쪽 구석에서 규원이 쭈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규원씨?”
그러자 규원이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연준의 모습을 발견하곤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두 무릎 사이로 떨구고 만다.
“규원씨! 괜찮은 거에요?
이내 연준은 규원이 임신한 상태이고 그런 몸으로 차디찬 바닥에 앉아 방치 되어 있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What the Fuck! 이 봐요~ 이 규원씨는 임신한 사람이이에요… Pregnant~ 어떡해 임신한 사람을 차디찬 이런 곳에 가둬 둘 수 있어요? “
“이 보세요… 말을 해야 우리도 알죠… 경찰서 들어와서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저분!”
안내한 형사가 유치장 문을 열고 규원을 데리고 나오자 연준이 얼른 그녀를 부축해 준다. 그래도 규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선 형사와 연준은 규원을 사무실 소파로 옮겼다. 좀 더 밝은 곳으로 나오자 규원의 안색이 상당히 안 좋아 보였다. 그러나 형사는 아랑곳 않고 기회를 얻었다는 듯 잽싸게 한 마디 했다.
“몇 가지 물어 볼 게 있는데요…”
“잠깐만요… 규원씨… 뭐 좀 먹었어요? 잠시만요 형사님… 뭐 좀 먹고… 힘 좀 내고… 그 다음에 물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연준이 전복죽과 우유 그리고 담요를 사 들고 들어 온다. 우선 따듯한 우유를 컵에 따라 규원의 손에 쥐어 주고 전복죽 포장지를 열심히 벗기는 연준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규원…
“자~~ 숫가락… 알아요… 먹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먹어야 해요… 왠 준 잘 알죠 우리?”
규원이 아무 말 없이 일회용 수저를 들어 전복죽을 한 숟갈 입에 넣는다. 그러나 역시 입맛이 없는지 바로 수저를 내려 놓는다. 그러자 바로 연준이 그 숟가락을 들어 다시 전복죽을 떠 입에 넣어 준다.
“먹어요!”
다시 전복죽을 한입 입에 문 규원… 그리곤 눈망울이 살포지 젖어 든다.
“창피해요…”
“예?”
“지금 내 모습… 너무너무 창피해요”
연준은 규원이 다리 위에서 처음 봤을 때 보단 훨씬 정상적인 감정으로 돌아 온 것 같아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창피하다는 건 자존감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창피 할 땐… 고개 수그리고… 아무 말 없이… 전복죽을 먹는다… 왜냐면… 창피 하니까…”
규원이 피식 웃으며 연준 말대로 전복죽을 조금씩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데 형사 목소리가 연준의 이 작은 평온을 즐길 시간을 주지 않았다.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요…”
자그마한 회의실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연준과 형사 반장이 마주 앉았다.
“존속 폭행죄라서 말이지요?”
“예?”
“그게 반의사 불벌죄이긴 한데…”
“저…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설명 하나도 못 들으셨어요? 그러니까… 이 규원씨가 아버지 이 득규씨에게 폭행을 가해 전치 2주 상해 진단이 나왔단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자라서… “
“그러니까… 이 규원씨가 아버지를 때려서 여기 잡혀 왔다는 겁니다.”
“예? 아빠를 때려요?”
“예… 그걸 존속 폭행죄라고 하는데… 피해자 즉 아빠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빠가 합의를 원하고 있어요…”
“Hobby?”
“그게 아니라… 합의… 나 원 참… 아빠가요… 돈을 달라고 하고 있다고요… 딸에게…”
“예?”
“딸이 그냥 처벌 받겠다고 버티는데… 딸 핸드폰 뺏어서 단 하나 있는 전화 번호, 즉 조연준씨 본인에게 전화가 가게 된 거에요…”
연준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규원이 아빠를 왜 폭행 했으며 아빠라는 사람이 왜 딸에게 돈을 요구 했고 또 그 아빠라는 사람이 왜 연준을 보자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규원씨 아빠, 즉 이득규씨가 연준씨를 뵙고 싶다는데 만나 주시겠습니까?”
회의실로 들어서는 오 십대 후반의 껄렁해 보이는 사내를 보자 연준은 어렴풋이 돌아 가는 상황이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그 껄렁한 사내 즉 규원의 아빠라는 작자는 형사 반장이 앉아 있던 바로 그 의자에 마치 지가 형사인양 소리 내어 앉더니 무례한 눈빛으로 연준을 이리저리 견적 내듯 살펴 보았다. 그러다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이거… 이거…”
“아… 안녕하세요? 조… 조연준이라 합니다..”
“이거시… 남자 보는 눈은 더럽게 없어… 좀 늙다리를 골라야 돈이 된다고 그렇게 강의를 해 줬는데… 이건 뭐…”
“왜 저를 만나자고 하신 건지…”
“아 됐고… 어트케 할꺼야?”
“예?”
“내 딸 어트케 할꺼냐고?”
“무슨 말씀인지…”
“아 됐고… 새파란 게 시바… 큰 돈 쥐긴 글렀네… 야… 한 삼백 만원 있냐?
이번에도 경찰서 문을 나서면서 규원은 말이 없다. 덩달아 연준도 머리 속으로 할 말만 이리저리 생각할 뿐 내뱉진 못했다.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선 규원이 속삭이듯 말했다.
“첫 번째는…. 고맙습니다…”
“예?”
“두 번째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야 해요…
“그게..”
“동정해 주시는 거 알고… 고맙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좀 많이 창피하네요… 돈은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
“어떻게 된 거에요? 서류상의론 부모가 없는 걸로 되어 있었는데…”
“진짜 아빠 아니에요”
“Stepfather? 왜? 왜 그런 거에요? 무슨 일이에요? ”
가볍게 목례를 한 규원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걸어 가는데 연준은 뭐라 다시 물어 보지 못 했다. 꼭 뭔가 말 해야 할 것 같았는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어… 어디로 갈 거에요?”
규원이 잠시 멈추곤 돌아 섰다. 잠시 물끄러미 연준을 보더니 지금껏 보여 준 적 없는 따듯한 미소를 잠시 짓는다. 그리곤 다시 돌아 걸어 가는 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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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21-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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